코로나19 시대, 조금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한 걸음 옆으로

코로나19 시대, 딸아이의 등교 일정에 따라 아침 루틴이 변했습니다. 등교 일에는 학교에 보낸 후 출근해서 명상과 참장을 합니다. 그 후 한의원 문을 열고 진료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다릅니다. 아이는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느리게 아침을 먹습니다. 그러다 보면 출근 시간이 늦어지지요. 그래서 집에서 참장을 하고 출근해서 명상하는 식으로 바꿨습니다.

잘 지내나 싶었지만,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제 방에서 뭔가에 열중하다 잠든 아이는 아침에 유난히 늦게 일어났고, 매사 늑장을 부렸습니다. 오가는 말들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고, 결국은 냉전에 돌입한 채로 평소보다 20여분 늦게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아침 루틴은 깨졌고, 기분도 엉망이었지요.

그런데 자동차 시동을 걸고 평소 듣던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자 진행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왔을 그 코너의 이야기는 마침 딱 저를 보고 충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별 것도 아닌 알량한 계획이 틀어졌다고 그런 날선 말을 했단 말인가, 내 수준이 딱 이 정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전화를 하고, 라디오를 들으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길이지만 시간이 달라지면서 변화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건물과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도 다르고, 상가 앞에 세워진 배달 트럭의 모습들로 다릅니다. 사람들의 걷는 속도와 방향, 그리고 나이대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내 경험은 참으로 작고 순간적인 것들이었구나. 한 걸음만 옆으로 옮기면 전혀 다른 세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딸아이의 늦잠과 늑장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단편적인 조각들을 모아 놓은 바구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 년도 생, 몇 학번, 어디 출신, 어느 대학. 이런 것들을 누군가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렇게라도 해서 동질감을 찾으려고 애쓰는 인간은 얼마나 불안하고 안쓰러운 존재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작가는 가장 혐오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사람을 만나서 "몇 학번이냐"고 묻는 것이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머리로 이해했지만, 몇 년이 지난 오늘에야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한의원에 도착해서 문을 열어 환기하고,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전등을 켜고 환자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의 여름.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고, 어딘가를 가지 못하고, 늘 하던 운동을 못해서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늘 걷던 그 길에서 한 발자국, 아니 반 발자국만 옆으로 걸으면, 그곳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한번쯤 떠올리길 바랍니다.

이번 사태는 늘 하던 대로, 늘 생각했던 대로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런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요.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단지 건강한 생존을 위해 과거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답은 어디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늘 반복되는 일상의 길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거나 높은 산봉우리에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내 손과 발이 닿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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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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