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죽고싶다'는 환자, 이젠 재활 의지에 불타 오르다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의료일지]

안녕하세요.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저는 지금 진료실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아픈 분들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와 왕진을 하고 있습니다. (☞ :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방문 진료나 왕진 시 장애인들을 대할 때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 편견을 갖고 접근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 당사자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대상화하지 말자'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제 안의 편견이나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요.

저에게 당사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40대부터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는데, 50대에 뇌경색이 재발하였고 이후로는 우측 팔과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게 되어 지금까지 장애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원래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긍정적인 분이라 비록 거동은 불편해도 전동휠체어로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각종 장애인 모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 기울어진 길에서 전동휠체어가 뒤집혀 넘어지면서 우측 발가락 3개가 골절된 후부터 이분의 진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측 발가락이 골절되자 거동이 완전히 불편해져서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몇 개월간 했었는데, 그때 본인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요양병원에서는 거동이 불편하니 낙상 위험이 있다며 침대에서 화장실로 혼자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저귀에 볼일을 보도록 했답니다. 그런데 대변을 보고 나서 사람을 불러도 오지 않아 한 시간 가까이 대변을 본 상태로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 엉덩이가 짓무르고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을 많이 마시면 소변을 많이 봐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야 한다며 물도 충분히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양병원에서 목욕과 식사 문제도 이분을 괴롭혔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니 화장실에 씻으러 가지 못해 씻겨 달라고 하면 물수건을 주고는 닦으라고 했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새벽에 깨워 환자를 앉혀놓고는 몇 시간 뒤에야 밥을 주고, 이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니 왜 아줌마 생각만 하냐고, 다른 사람들이랑 맞춰야지 않겠냐고 했다네요.

사실 이분이 순순한 성격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민원도 많이 넣고 큰소리도 많이 냈었고 결국 쫓기듯 퇴원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들레 의료사협으로 방문 진료 요청이 온 것이죠.

ⓒ박지영

"혼자 집에서 지내더라도 다시는 입원하고 싶지 않아요. 죽어도 집에서 죽을 거예요."

첫 번째 목소리입니다. 죽어도 집에서 죽고 싶다. 사실 제가 판단하기에 이분은 집에서 혼자 지내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바닥에서 엉덩이로 밀고 다니시는데,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것이 힘들어서 소변을 실수한 것이 몇 번이나 되었고, 넘어져 다치시고, 이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우울감으로 자살 생각을 수도 없이 하셨답니다.

"기본적인 소변, 대변 처리가 안 되니까 죽고 싶어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밖에도 못 나가고, 소변보러 가다가 몇 번이나 바닥에 봐서 집안이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일 울어요. 소변줄이라도 하면 화장실 가는 걸 줄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거라도 해 주세요."

두 번째 목소리입니다. 소변줄을 해달라. 의사인 제가 보기에는 방광 기능도 좋고 소변줄을 끼워서 얻을 수 있는 의학적인 이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골절된 발가락에 통증이 심하고, 발이 발바닥 쪽으로 굽은 상태인데다 근육이 말라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무릎관절도 펴지지 않고요. 소변 때문에 짓무른 엉덩이로 바닥을 밀고 다니니 욕창도 생겨있습니다. 전체를 보고 나니 내가 이런 상황이라도 소변줄을 해달라고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소변이나 대변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 몰라요. 집에 손님이 오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저귀를 치워달라고 하거나 소변을 요강에 비우고 요강을 화장실에 비워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에요. 소변 주머니 비우는 때를 놓치는 바람에 주머니가 터져 온 방에 소변 홍수가 난 적도 있어요."

세 번째 목소리입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활달하고 목소리도 크던 분이 소변과 대변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무너져버린 것이죠.

결국 이 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에서 지속적으로 도와줄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거동하는 데 따르는 낙상 위험을 줄이고, 이분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소변 처리도 부끄러움을 무릅쓰지 않아도 당연히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려면 돌봄서비스가 필요한데, 이분의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이분이 장애인이라도 이전에 노인요양돌봄 서비스를 받았기에 더이상 장애인 활동 보조서비스를 받으실 수가 없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지만 발가락 골절이라는 급성기 질환이 있어서 당장 노인요양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인요양돌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의사 소견서가 필요한데, 적어도 6개월 정도 기능이 계속 떨어진 상태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니, 어차피 이분은 뇌병변 장애로 원래 거동이 불편한 분인데도요! 제도와 시스템의 사각이 이런 곳에서 드러납니다. 당사자의 필요가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박지영
ⓒ박지영

이분을 민들레 지역사회의료센터의 집중관리 대상자로 정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팀원들과 논의하니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지역의 장애인 재활팀, 지역 케어회의에서 같이 논의를 하여, 최대한 빨리 노인요양 돌봄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 의사소견서를 작성하여 바로 등급판정회의에 올렸고, 지역사회의 협조로 생각보다 빨리 노인요양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 장애인 재활팀에서는 사회복지기금과 연계하여 도배와 미끄럼 방지매트, 휠체어에 오르고 내릴 때 필요한 손잡이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박지영

얼마 전 다시 방문하여 어떻게 지내시는지 보니 얼굴이 정말 밝습니다. 매일 3시간씩 요양보호사가 나와서 이분을 도와주고 있고, 매일 죽고 싶다 하셨던 분이 재활 의지를 불태우고 계십니다. 제가 욕창을 확인한 후 옷 입는 것을 도와드리려 하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생님, 제가 혼자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버릇 해야 해요. 도와주시면 자꾸 의지하게 돼서 안 돼요."

네 번째 목소리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게 해달라. 그러면서 나중에 다른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다고도 하십니다.

ⓒ박지영

강하고 긍정적인 분이신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런 분이 요양병원에 갇혀 지내면 까다로운 환자, 불만 많은 환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겠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건강 문제 해결의 시작임을 알게 된 지금은 방문 진료를 나가면 꼭 이렇게 여쭤보려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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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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