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여름생활...여름 더위에는 생맥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아~ 너무 더워요. 걸어오는데 숨이 턱까지 차서 죽을 뻔 했어요."

"요즘 들어와서 숨이 더 차고 몸에 맥이 없고 입맛도 없어. 등이 아파서 약을 일주일이나 먹었는데도 전혀 낫질 않아."

일찍 찾아온 더위 탓에 건강이 나빠지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더위에 적당히 노출되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견딜 수 없는 노약자와 환자는 단지 힘들어질 뿐입니다. 여기에 수개월간 지속되는 전염병이 주는 불안감, 축소된 생활반경과 소원해진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줄어든 호흡과 답답함까지, 올 여름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동물로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불리할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은 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내경>은 슬기롭게 여름을 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햇빛을 싫어하지 말고 마음에는 성냄이 없어야 한다. 또한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외부의 기운과 잘 소통해야 한다."

태양을 피하고 싶고, 누가 건드리면 곧 폭발할 것 같은데, 꽃처럼 피어나는 마음을 가지라니! 선인들의 지혜는 때론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이야기 말고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습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제를 편하게 해결하길 원했으니까요. 그 중 제일 선호하는 것이 먹어서 해결하는 법입니다.

<동의보감>은 더운 여름에 마땅히 기운을 보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대표처방으로 생맥산生脈散을 소개합니다. 맥문동과 인삼, 오미자가 2:1:1의 비율로 구성된 처방이지요. 세 가지 약재를 물에 끓여서 여름에 숭늉대신 마시라고 했습니다.

생맥산은 간단해 보이지만 더위에 노출되었을 때 우리 몸이 부대끼는 것을 잘 배려한 처방입니다. 여름날의 몸의 반응을 생각해 보세요.

'땀이 난다. 찬 물을 자꾸 마시고 싶어진다. 늘어지고 처진다. 피곤하고 의욕도 없고 밥맛도 없다. 짜증이 자꾸 나고 열이 난다.' 정도일 겁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주된 장부는 심장과 폐, 그리고 비위입니다. 더워지면 몸을 단단하게 결속해주는 결합조직들이 조금씩 늘어지게 됩니다. 여름에는 혈압도 조금 떨어지지요. 땀으로 인한 체액손실도 증가합니다. 이렇게 되면 순환과 호흡을 담당하는 심장과 폐는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연로한 환자들이 쉽게 숨이 차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드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덥다고 찬 것을 즐겨 먹고 마시거나, 귀찮아서 부실하게 먹게 되면 비장과 위장의 기능이 떨어져서 몸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마저 부족해지는 곤란한 상황이 됩니다.

생맥산의 맥문동은 더위에 부족해진 체액을 보충해주면서 폐의 기능을 돕고, 새콤한 맛의 오미자는 늘어진 몸을 수축시켜 심장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여기에 인삼이 더해져 소화기능을 돕고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이런 작용들을 통해 우리 몸이 더위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실제 생맥산의 효능에 관한 연구에서도 "고온에 의해 유도되는 열사병 증상을 개선하였으며, 방사선에 의한 손상에 대한 보호 효과가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운동능력 향상 및 피로 회복 효과가 관찰되었으면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및 그 리셉터 조절 효능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과학적 근거의 표준한약처방 418페이지, 한국한의학 연구원).

<동의보감>의 생맥산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황기와 감초를 더하고 황백을 더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황기와 감초를 더하는 것은 아마도 체액손실이 더 심하고 이로 인해 몸이 더 힘들어진 상황의 처방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초는 소변량을 감소시켜 체액의 손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황기는 땀을 통한 체액의 손실을 막고 말단까지 순환이 잘 되도록 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백은 불필요한 열을 식혀주는데, 냉각수가 부족할 때 자동차 엔진이 과열되는 것을 막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생맥산이란 냉각수를 부어주고 황백을 조금 더해 열이 효과적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글에 담아 놓은 선인들의 생각도 보이고 그 분들의 삶도 보입니다. 웹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즘의 정보와는 또 다른 맛이 있지요.

생맥산이 무더위를 이겨내는데 효과적이고 대표적인 처방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몸과 마음의 상태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지병이 있어서 치료 중인 환자라면 주치의와 상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연한 농도로 하루 2~3잔 차처럼 마신다면 더운 여름을 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맥산의 메인 약인 맥문동은 가슴에 달아오르는 열을 내리고 좋은 수면에도 효과가 있으니, 자꾸 짜증이 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 계절에 제격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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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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