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롬니-파월, 공화당 내 '안티 트럼프' 확장...재선 '빨간 불'?

[2020 미 대선 읽기] '알트 라이트'에 기댄 트럼프 vs 등 돌리는 온건 보수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7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도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부시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은 지난 2일 그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인 인종주의를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상처받고 비통에 잠긴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그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하는 이들은 미국의 의미를, 미국이 어떻게 더 나은 곳이 되는지를 모르는 것"이라는 성명을 낼 때부터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달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 폭력으로 흑인인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의 시위를 "테러"라고까지 규정하며 군대 동원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해왔다.

트럼프의 초강경 대응, 핵심 지지세력인 '알트 라이트'를 겨냥한 행보

이는 자신의 핵심 지지세력인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치적 노림수였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인종주의'를 자극해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는 기존 공화당 주류와 달리 '알트-라이트'(alt-right, 대안우파)가 정치적 뿌리다. 17세기부터 활동한 백인 우월주의단체인 큐클럭스클랜(KKK)이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새롭게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알트 라이트'들은 인종주의, 백인우월주의, 반이민 등을 중요한 정치 어젠다로 제시하고 있다. 또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거부한다. 2016년 트럼프 대선캠프를 진두지휘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대표적인 '알트 라이트' 이론가다.

트럼프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백악관 앞에서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이 전문적인 '시위꾼'이며 '극좌파'(anti-fa)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들을 의식해서다.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인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트럼프 선거 구호의 줄임말)에게 백악관 앞으로 결집하라는 것은 '안티파'와 맞장을 뜨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군대 동원" 문제로 불거진 보수세력 내부 균열...파월 전 국무장관은 바이든 공개 지지

이런 초강경 대응은 시위 진압을 위한 '폭동 진압법' 동원 문제를 놓고 보수진영 내 갈등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 방화나 약탈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다수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는 시위와 집회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것은 선을 한참 넘어섰기 때문이다.

급기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3일 "시위 진압을 위한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 발동에 반대한다"며 "법 집행에 현역 군을 동원하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하는데 우린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 정부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이날 "트럼프는 내 생애 미국 국민 통합에 노력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라면서 "심지어 그는 그러려는 척도 하지 않고 대신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시도한다"고 '결정타'를 날렸다. 매티스 전 장관은 군과 정계에 신망이 매우 높은 인사다. 트럼프가 매티스를 초대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던 것도 그의 '영향력'과 '신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이자 해병대 장성 출신인 존 켈리도 트럼프에 대한 불신을 밝혔다. NYT에 따르면, 켈리는 "추가적인 선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7일 CNN과 인터뷰에서 아예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흑인인 파월은 트럼프의 플로이드 시위 관련 대응에 대해 "우리에겐 헌법이 있고, 헌법을 따라야 하는데 대통령은 헌법으로부터 도망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에스퍼, 매티스 등 국방장관 출신들의 '양심 선언'에 대해 "진실한 발언을 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매티스는 미친 개" 등 독설 쏟아내...대선까지 '알트 라이트'만 믿고 간다?

이처럼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전 대선후보, 전 국무장관, 전 국방장관, 현 국방장관 등 줄줄이 트럼프가 국가 분열을 획책한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해 트럼프는 변함없이 '더 센 비판'으로 맞섰다.

트럼프는 3일 매티스에 대해 트위터에 글을 올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세계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장군인 매티스를 해임하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라고 조롱하며 "그에게 사직서를 요구했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매티스의 별명에 대해 "내가 '미친 개'(Mad dog)로 바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월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과대 평가된 인물"이라며 깎아내렸다.

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대응 실패로 보수 진영이 '극우 대 온건 보수'로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평가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부동층이 많은 경합주(스윙 스테이트)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지난 4일 <폭스뉴스>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오하이오에서는 바이든 45%, 트럼프 43% 지지율을 보였고, 애리조나에서는 바이든 46%, 트럼프 42%로 나왔다. 위스콘신에서도 바이든의 지지율이 49%로 트럼프(40%)에 비해 9%포인트나 높았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트럼프나 트럼프 진영의 대응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지는 않고 있다. 어차피 부시, 롬니 등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던 때도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던 인사들임을 트럼프 지지자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다가 이번 사태로 지지를 철회하면 영향을 주겠지만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한 적이 없는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트럼프나 트럼프 진영이 이들의 최근 입장에 크게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선 전략에 이런 움직임이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11월 대선까지 아직 5개월이나 남은 시점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다만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의원 선거에는 부시, 롬니 등의 입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의 '강경 드라이브'로 현재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상원마저 민주당에게 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4일 "11월 하원과 상원,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승리 확률이 각각 71%, 50%, 50%"라는 보고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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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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