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장폐쇄하면 정부 지원 없다"...한국의 '기업 지원'은?

모호한 고용안정 조건으로 기업에 돈 퍼주는 한국 정부

코로나19 창궐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얼마 만큼인지 수치로 표현된 통계자료를 접해도 피부에 와닿게 느끼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IMF 이후 사상 최대치 경신", "글로벌 금융위기 수치보다 낮아져" 등의 미사여구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그 정도가 더하다. 우선 수치 자체가 워낙 떨어지고 있는데다 그 수치를 공개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풍조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에 본사를 둔 주요 업체 중 상당수가 월별 판매량 공개를 거부하고 분기별 판매량만 공개하고 있다. 일부 국가의 자동차산업협회는 내수시장 판매량 업데이트를 한정 없이 늦추기도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판매량, 인도는 Big Zero

<인사이드경제>는 올해 1~4월까지 주요국 자동차 (내수)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몇 %가 늘고 줄었는지를 조사해 아래와 같이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서유럽과 브라질, 러시아의 4월 판매량 수치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대부분 -80%를 기록하고 있으니, 바꿔 말하면 지난해 4월과 비교했을 때 고작 20% 밖에 판매하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 전년 동월 대비 주요국 자동차 내수 판매량 증감율.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조사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테면 오늘까지 인도 자동차산업협회는 4월 판매량 관련 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마힌드라는 4월에 인도에서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마힌드라만이 아니다. 인도 내수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마루티스즈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현대차 역시 4월 한 달 동안 인도에서 단 한 대의 차량도 판매하지 못했다. 인도에서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Big Zero"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쓰는 상황이다. 그래서 <인사이드경제>는 인도의 4월 판매량을 임의로 -99(?)%라고 기입해 넣었다.

미국은 공식 발표자료가 없어서 현대차의 판매량 발표자료에 기록된 미국시장 월별 총판매량 수치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역시 공식 발표자료는 없지만 몇 가지 언론기사를 추적해서 월별 판매량, 전년 동월 대비 증감율을 조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인도, 브라질은 상용차를 제외한 승용차 판매량 수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대응

코로나19 창궐이 빨랐던 한국과 중국의 경우 내수시장은 회복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내수보다 수출로 먹고 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세계의 다른 시장들이 앞선 그래프와 같은 상황이라 타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물론 수출에서도 맥을 못 추고 내수시장에서도 죽을 쑨 미국과 유럽의 업체들 상황은 더 좋지 않다(아래 표 참조). 일본이 한국과 유사한 상황인데, 내수 판매는 그런대로 방어하고 있지만 수출 물량이 줄기 시작해 일본 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

▲ 글로벌 완성차업체 코로나19 대응 상황.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대응 핵심은 '현금 유동성 확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생산·판매 절벽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 현금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 금융기관으로부터 회전한도대출이나 신용공여를 받기도 하고, 각국 정부가 마련한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도 한다.

아울러 현금 투입의 우선순위도 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GM의 경우 자율주행차·전기차·캐딜락 등 전략 차종을 제외한 신차 개발과 출시 일정이 늦춰진다. 포드 역시 자율주행차 개발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고, 토요타는 앨라배마 공장 건립을 연기했다.

더 나아가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을 공격하는 사례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 2만 명 감원 추진(닛산) △ 사무직 임금 20% 체불(GM) △ 조립공장 3개 폐쇄(르노) △ 직원 상당수 무급휴직 실시(PSA)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르노 공장 폐쇄하면 정부 지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이다. 정부로부터 무려 50억 유로(약 6조 7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프랑스 국내 조립공장 3개를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니, 이쯤 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닐까?

▲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장관은 르노를 향해 공장을 폐쇄하면 정부 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텔러리포트

그런데 르노 문제를 다루는 프랑스 정부의 방식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르노가 국내공장 3개를 폐쇄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인 5월 22일, 프랑스 재정경제부장관 브뤼노 르메르는 직접 <Europe 1>이라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절대로 르노 공장 폐쇄가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그는 르노 자동차가 신청한 50억 유로 정부 지원대출에 대해 "나는 아직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르노 자본 압박에 나섰다. 만일 공장 폐쇄를 강행할 경우 지원대출 보류 카드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르 피가로> 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원대출의 대가로 르노 자본을 향해 3가지를 강조했다.

전기차 개발과 생산(electric vehicles)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에 대한 공정한 대우(the fair treatment of sub-contractors)

프랑스 국내에서 선진기술 연구 활동(advanced technology activities in France)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것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르노 자동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공개 경고를 했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 자본에 대해 저런 수준의 압박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르노 자동차의 최대주주가 바로 프랑스 정부이기 때문이다.

르노 자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부가 프랑스를 점령했던 시기에 나찌에 부역했던 전력이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전범세력·부역세력에 대한 처벌과 단죄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 노동자와 시민은 르노 자본을 몰수하고 국유화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르노 자본에 단 한푼의 보상도 하지 않는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러나 그 이후 프랑스 정부는 점차 지분을 민간에 이양하며 민영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1990년에 이르면 정부 지분은 15%까지 떨어졌으며 지금까지 이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여전히 프랑스 정부가 르노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주요 국면마다 산업정책을 르노 자본을 통해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가? 무려 40조 원에 달하는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조성해 기업들에게 온갖 돈을 풀어주면서 자본가들에게 조건과 대가를 내거는 점에 있어서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지난 4월,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근거가 되는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출한 초안과 달리 최종 심의과정에서 바뀐 조항 2개만 살펴보자.

한국산업은행법 제29조의4(기간산업안정기금의 관리/운용 및 회계 등)

⑤ 한국산업은행과 회사 등은 제2항제1호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인하여 보유하는 기간산업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출자지분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에 대하여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아니한다. 다만, 제29조의5 제2항에 따른 자금지원의 조건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자금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즉, 기업회생과 자금 지원과정에서 산업은행이 해당 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그 지분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이 말은 국민 혈세를 펑펑 퍼주고도 해당 기업의 경영권에 대해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제29조의5(자금지원의 절차와 요건)

② 한국산업은행은 기금의 부담으로 기간산업 기업에 자금 지원을 할 때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 등을 포함하여 국민경제와 고용안정 등을 위하여 필요한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

1. 일정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하여 근로자와 경영자가 함께 노력할 것

자금지원의 조건에서도 애초 문구에서는 "1. 기간산업안정기금운용심의회에서 정하는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근로자와 경영자가 노력하여야 할 사항을 정할 것"이라 되어 있던 문구는 최종 심의 과정에서 "일정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한다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문구로 수정되고 말았다.

해당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더라도 "자금지원의 조건을 현저하게 위반하여 자금 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경영 개입에 붙는 '현저하게 위반', '중대한 지장'이란 조건을 통과하기는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자금지원의 조건은 "일정 수준 고용 유지"라 하여 완전히 풀어준 꼴이다. 국민 세금 가지고 기업에 퍼주기만 한다는 비난에서 문재인 정부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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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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