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화학 인도 가스 참사, 충격의 '보팔 참사'를 떠올리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엘지화학 비전 선포식 날 인도에서 중대 재해

지난 7일(현지시각) 새벽 3시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사카파트남에 있는 엘지화학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돼 11명이 숨지고 1천 여 명이 입원하는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위독한 사람은 25명 이상이며 사망자 중에는 8살 여아도 포함됐다고 한다.

누출사고 상황을 전하는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절체절명의 순간을 잘 느낄 수 있다. 현지 언론은 당시 상황을 마치 ‘아비규환’ 같았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현지 주민과 동물들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안개 같은 가스가 마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에 거기로 뛰쳐나온 주민들은 곧 기침하기 시작했다. 일부 주민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고, 소나 개 등 동물들도 하얀 거품을 입에 문 채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공장 반경 3km에 이내 주민들은 눈 따가움과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사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운전 중이거나 집 테라스에 서 있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유독물질의 종류만 다를 뿐 1984년 12월 인도 보팔 시의 유니온카바이드 인도 공장에서 벌어졌던 20세기 최악의 화학물질 누출사고 상황을 쏙 빼 닮았다. 50만 명가량이 농약 원료물질인 유독성 메틸이소시안산에 노출돼 2만 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평가되는 36년 전 보팔 참사 때에도 현지 언론은 이와 매우 흡사한 광경을 보도했다.

“수만 명의 사람은 자정이 지난 밤 0시30분부터 1시까지 사이에 깊은 잠에서 깼다. 그 시각 공장에서 고농도 가스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잠 자다 격렬하게 기침하면서 깨어났다. 마치 고춧가루를 눈 안에 마구 퍼 넣은 것처럼 눈에 타는 느낌이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아났다. 몇몇 사람들은 가족을 챙겨 달아났지만 대다수는 그럴 경황도 없이 반사적으로 내달렸다. 자전거, 황소수레, 자동차, 삼륜차, 스쿠터, 오토바이 등 모든 이동수단이 동원됐고 그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달리다 넘어진 사람들은 뒤따라오는 군중의 발에 밟혀 죽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엘지화학, 화학사고 원초적 공포를 지닌 인도에서 사고를 내다

보팔 참사와 이번 엘지화학 인도공장의 스티렌모노머(SM, Styrene Monomer) 누출 사고를 맞비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피해 규모 면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누출된 유독화학물질의 종류도 다르고 그 독성 정도도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그렇다.

그럼에도 굳이 다시 36년 전의 참사를, 대재앙을 들먹이는 것은 인도라는 나라와 인도 국민에게는 아직까지 뇌리에서 씻어내기 어려운 화학물질 누출 사고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보팔 참사로 그들에게는 원초적인 화학물질 누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36년 전 문제를 일으킨 기업은 미국의 유니온카바이드사였다. 참사를 일으킨 뒤 세계적 다국적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칼에 합병됐다. 보팔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재난·환경 교과서에 실린 세기의 참사였다. 그런 국가의 국민에게 이번 사고가 어떻게 비칠지 걱정된다.

국내 굴지의 재벌인 엘지화학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 실추와 거부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바도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따라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실체적 진실에 걸맞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부실하고 미온적 배보상으로 손가락질을 받은 미국의 화학기업과는 달리 성의 있는 피해 대책에도 열성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지 경찰은 공장 내 5000t 규모 탱크 2곳에 저장된 화학물질 스티렌모노머(SM)가 가스 형태로 누출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한다.

엘지화학은 인도 최대 폴리스티렌 수지 제조업체인 힌두스탄폴리머를 1996년 인수한 뒤 회사 이름을 엘지폴리머스인디아로 바꾸었다. 66만㎡ 규모 공장에 직원 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공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면서 3월 말부터 가동을 멈췄다가 최근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동 중단 후 재가동 과정에서 스티렌모노머 누출, 1년 전 한화토탈 사고와 판박이

인도 경찰은 엘지 쪽이 40여일 만에 공장 원료 탱크를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독성 물질이 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점은 국내 최대의 스티렌모노머 제조회사인 한화토탈충남 대산공장에서 지난해 5월 발생해 2300여명의 인근 주민 노출 피해를 일으켰던 스티렌모노머 누출사고를 쏙 빼닮았다.

5월17일과 18일 이틀간에 걸쳐 두 차례 일어났던 당시 사고는 공장 점검과 정기 보수 등을 위해 가동을 멈추었다가(3월27일~5월4일) 스티렌모노머 제조공정을 재가동해 운영하는 도중 일어났다. 평소 현장에서 이 공정을 다루었던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폭 등을 둘러싸고 단체협약이 결렬돼 파업 중이었다.

회사는 대체인력과 간부 엔지니어 등을 동원해 스티렌모노머 공정 2개 라인 가운데 1개 라인을 5월5일부터 재가동에 들어갔다. 노조 등은 4월25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숙련되지 않은 인력을 가지고 재가동을 할 경우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노조의 경고처럼 공정 가운데 고순도 스티렌모노머를 정제·회수하는 마지막 탱크에서 이상반응으로 중합체가 많이 발생해 배관이 막혔다. 부득이 이 공정을 생략한 채 스티렌모노머의 함량이 매우 높은 물질을 잔사유를 보관하는 탱크로 보냈다.

5월17일 오전 11시 45분께 스티렌모노머(단량체) 제조 공정 가운데 공정에서 나오는 스티렌모노머가 섞인 남은 기름을 보일러 연료로 쓰기 위해 담아 두는 탱크 상부에서 하얀 유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증기가 나온다는 것은 탱크 내부가 뜨거워져 기화(氣化)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는 자체 소방차를 동원해 12시10분께부터 탱크 내부를 식히기 위해 외벽에 물을 뿌려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스티렌모노머는 상온에서도 중합반응이 일어난다. 온도가 증가할수록 더 빠르게 중합반응이 진행된다. 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이미 탱크 내부에 설치된 온도계의 눈금은 섭씨 56도를 가리켰다. 스티렌모노머 중합반응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시점이었다.

탱크 내부 온도는 1시간여 만에 매우 빠른 속도로 섭씨 100도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이는 온도가 65도 이상 올라갈 경우 스티렌모노머라는 물질의 특성 상 물을 뿌리는 등 통상적인 냉각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폭주반응(run-away polymerization)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탱크 부착 온도계는 100도까지만 잴 수 있어서 탱크 내부 온도가 최종 얼마까지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탱크 폭발이 염려되는 급박한 순간이 왔다. 12시23분께 스티렌모노머와 남은 기름 성분이 탱크

상부 비상배출구를 통해 벌겋게 마구 뿜어져 나오는 1차 분출이 40초간 일어났다.

한화토탈 대산 공장 사고 후 엘지화학 인도 공장 안전 점검 유무 조사 필요

엘지화학 인도 공장에서 스티렌모노머 누출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하루빨리 밝혀내야 한다. 스티렌모노머는 독성물질이자 발암의심물질이다. 스티렌모노머는 단기간 노출될 경우 호흡기 질환과 어지럼증을 유발하고, 많은 양에 노출돼 심할 경우 의식불명과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는 화학물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몇 차례 누출사고가 있었지만 사망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다. 따라서 인도 공장에서 다른 유독성 화학물질이 동시에 누출됐는지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한화토탈 스티렌모노머 누출사고 이후 엘지화학이 국내뿐만 아니라 엘지화학 인도 공장에서도 누출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교육과 안전 설비 투자를 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할 지점이다. 엘지화학은 충남 대산공장에서도 스티렌모노머를 생산하고 있다. 스트렌모노머는 중합과정을 거쳐 폴리스티렌과 스티로폼 형태로 만들어져 각종 충진재와 컵라면 용기, 전기전자제품 등에 널리 쓰인다.

엘지화학은 2006년 엘지대산유화, 2007년 엘지석유화학을 합병하여 수직 계열화 체계를 완성하고 중국에서 ABS 공장 증설을 완료하여 세계 1위의 위상을 강화한 바 있다. 대산공장에서는 나프타의 열분해를 통해 에틸렌, 부타디엔, MTBE, PVC, 고밀도폴리에틸렌, 스티렌모노머, 합성고무인 SBR과 BR 등을 주로 생산하여 국내외에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로 제공하고 있다.

엘지화학은 인도에서 유독화학물질 누출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날인 7일 화학을 뛰어넘어 과학을 품는 회사로 도약해 고객과 인류를 풍요롭게 하겠다는 비전선포식을 온라인으로 가진바 있다. 이 때문에 신문의 한 면에는 비전선포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그 옆면에는 비전과는 상반되는 인도 사고 소식이 나란히 실리는 매우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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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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