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재난지원금, 바보야! 문제는 타이밍이야

[안종주의 안전사회] 위험 소통의 금과옥조 '타이밍'

소통에서 금과옥조로 삼는 원칙이 타이밍, 즉 제때 소통하는 것이다. 이는 위기소통과 위험소통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말이 느려터진 것을 빗대 지어낸 충청도 어느 부자 이야기가 옛날에 회자되곤 했다. 산을 올라가던 아들이 위에서 발을 잘못 디뎌 큰 돌이 바로 밑에서 뒤따라가던 아버지 쪽으로 굴려 내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급한 상황에서 아들은 평소 말투로 “아부지~ 돌 내려 가유~”를 느릿하게 말했다. 이 바람에 구르는 돌이 말보다 빨라 뒤따라가던 아버지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우스개다.

재미있는 이 가공 일화를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고 싶다. 소통에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버스가 지나가고 난 뒤에 손을 아무리 흔들어보아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과 같다.

위기나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일을 수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입씨름하거나 갑론을박할 여유가 없다. 때를 놓친 수습책은 대상자에게 와 닿지 않는다. 타이밍은 소통에서든, 정책에서든, 운동경기에서든 매우 중요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에 타이밍이 핵심 구실을 한다.

축구 경기에서 어느 팀이 한 점 차로 지고 있는데 경기 종료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자. 감독은 수비수를 몇 명 빼고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를 투입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다가 한 골 더 먹으면 사실상 게임 끝이라는 판단에 머뭇거리면 질 확률이 매우 높다. 공격수와 수비수 교체를 경기 종료 1~2분 남겨놓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야말로 명감독이 지녀야 할 으뜸 자질이다.

코로나 방역 세계적 모범국가. 재난지원금 정책은?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세계적 모범국가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만약 우리의 상황이 지금의 미국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유럽국가와 같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회 곳곳에서 예기치 못했던 여러 불미스런 일과 사달이 났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금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상대적 여유 속에 생활하고 있는 것은 제때 적절한 방역대책을 세워 잘 실천했기 때문이다. 진단검사 도구 준비, 승차 검사, 사회적 거리두기 등 거의 모든 대책이 제때 마련돼 실행됐다.

물론 초기에 우왕좌왕해 일부 타이밍을 잠깐 놓쳤던 적도 있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천지 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갑작스럽게 확산돼 병실 부족 사태가 빚어졌고 이 때문에 사망자가 속출했던 것이나 마스크 대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잘 대처해 수습했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현장 신청이 시작된 20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신청 조기 마감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가장 많은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포천시에서 인구 3분의 1을 차지하는 소흘읍은 이날 많은 신청자가 몰려 접수가 조기 마감됐다. ⓒ연합뉴스

실직 공포가 코로나19 감염 공포보다 더 심각

이런 대한민국이 지금 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여야, 정부가 입씨름 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쳐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내지는 대량 실직 등 민생 위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인명 피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파장이 오래 가고 치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염병이 초래한 한국 경제 위기는 세계적 경제 위기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확산된다. 세계적 범유행을 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듯이 코로나 경제위기, 즉 경제감염병(econodemic)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자원 총동원령을 내려야 한다.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하고 제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민생이 무너지고 기업이 쓰러지고 난 뒤에 아무리 많은 돈을 퍼붓고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실업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실직의 공포가 코로나19 감염 공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4·15 총선 전에도 여야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줄 것이냐, 하위 70%만 줄 것이냐를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더니 국민 심판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한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에도 정부·여당 안에서조차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청와대는 심판보다는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다.

경기 등 지자체 재난지원금 신속 지급해 주민 ‘엄지 척’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이미 자제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역주민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당이 주장하는 전 국민 지급과 정부와 미래통합당이 주장하는 하위 70% 지급은 각기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두 지급안 모두 장단점이 있다.

무상급식 정책을 생각한다면 전 국민 지급안도 설득력이 있다. 코로나19로 상대적 타격이 큰 계층에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하위 70% 안도 원칙 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정책에는 시효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좋은 정책을 뒤늦게 시행하는 것보다 문제가 좀 있는 정책이라도 제때 하는 것이 더 낫다.

코로나 발 이코노데믹, 즉 경제위기를 정말 걱정한다면 정치권의 그 유명한 슬로건을 빌려 충고하고 싶다. “바보야! 문제는 타이밍이야.” 국회는 내일 당장 서로 타협점을 찾아 재난지원금 안건을 처리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모든 것을 걸고 적극 나서야 한다. 총감독 노릇을 해야 한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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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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