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때문에 코로나 검사 줄인다?...감염병 음모론은 무얼 먹고 자라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코로나19 음모론 왜 자꾸 고개 드나

감염병 대유행 때마다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음모론은 허무맹랑한 것부터 그럴듯한 것까지 다양하다. 병원체의 기원을 둘러싼 음모론도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역 방식과 관련한 것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일부러 코로나19 검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둥 이른바 감염병 음모론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음모론이 왜 자꾸 고개를 드는 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안전사회’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생물 무기설을 중심으로 음모론을 살펴보았음에도 다시 재조명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음모론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됐다. 감염병과 관련한 음모론의 역사 또한 오래된 과거를 지니고 있다. 백과사전은 음모론(陰謀論, conspiracy theory)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 따위를 말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듣기 힘든 격동기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러한 음모론들이 많이 유포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음모론이란 이제 지적인 욕설이 되었다.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했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에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 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사망 영국 왕실 개입설 등이다. 이밖에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과 관련한 음모론도 일반인들에게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 코로나19 음모론은 정치적 불만 때문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코로나19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주로 정치적 의도 내지는 불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정치 세력과 그 열렬 지지자들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부·여당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보았던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혹평보다는 외려 찬사가 연일 국제 사회에서 쏟아지자 당혹해 했다. 여기에다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더해지면서 이에 불편해진 일부 세력이 구린 냄새가 나는 삼류소설로 코로나19 감염병 검사 음모론을 지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일주일 전만 해도 100명 안팎에서 오르내리다 그 뒤 50명 이하로 낮아졌다. 최근 이삼일 동안에는 30명 대 밑으로 떨어졌다. 국민들로서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점점 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은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검사 대상을 줄이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의사 가운데에서도 이런 주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주장의 뿌리는 일부 언론에 있다. <신동아> 4월호(3월18일)는 이와 관련한 심층보도를 한 바 있다. <신동아>는 ‘단독’ 보도임을 강조하며 전문가까지 동원해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 검사 대상을 축소 추진한 의혹이 있다며 이는 “웬만하면 (코로나19) 검사 소견 내지 말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의사 소견 따라’ 가능하던 검사 조건에 3월부터 ‘폐렴’을 추가한 것인데 전문가들이 “조건을 까다롭게 해 진단 검사 수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신동아> 코로나19 검사 축소 음모론의 자양분 구실

<신동아>는 이 기사에 반론을 함께 실었다. 질본이 “코로나19 대응지침 ‘7판’ 사례정의 변경을 통해 진단검사 대상이 축소됐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현장 의사들이 코로나19 의심 소견을 낼 때 참고할 증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 ‘원인미상폐렴’을 예시로 넣었을 뿐이며 그 뒤에 ‘등’이 있기 때문에 의사 판단의 재량권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밝힌 것을 다루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정부의 방역 정책에 흠집을 내려고 마음먹은 세력이나 사람에게는 음모론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이런 글이 좋은 자양분이 된다. 총선용 코로나19 검사 축소설과 같은 음모론은 종편 등 언론매체에서 최근 잇따라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데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없어 패널들이 부정적 의견을 보여 코로나19처럼 확산되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언제든지 감염병 음모론이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생산·유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에는 충분하다.

과거 감염병과 관련한 음모론은 최근의 신종플루에서 에이즈, 그리고 먼 과거에는 콜레라, 흑사병에 이르기까지 감염병 역사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했다. 2009년 지구 범유행병(팬데믹)이 된 신종플루와 관련해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플루를 퍼뜨려 인구 증가를 억제한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또한, 타미플루 제약회사 등에서 돈을 벌기 위해 평범한 독감 등을 과장하여 약 등을 팔았다는 음모론도 있었다. 이 음모론은 신종플루가 자취를 거의 감추자 함께 사라졌다.

에이즈는 1980~90년대 지금의 코로나19처럼 미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코로나19 희생자들의 다수가 흑인이듯이 당시 에이즈도 동성애자와 흑인들이 가장 높은 비율로 희생됐다. 겁에 질린 미국 흑인들은 의사들과 정부가 인종적인 생물 전쟁의 도구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는 음모론을 주장했다.

에이즈 음모론-다국적 제약회사 위해 없는 질병 만들어내

또 에이즈가 신종플루 음모론처럼 제약회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팔아먹기 위해 없는 질병, 즉 바이러스 질병이 아님에도 질병인 것처럼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국과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널리 퍼졌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에이즈 음모론에 감염된 사람들은 국내에서도 활동했다.

'한국에이즈재평가를위한인권모임'은 2003년 에이즈 음모론을 담은 <에이즈는 없다>는 책을 통해 “에이즈라고 불리는 증후군은 없으며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HIV라는 바이러스가 실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으며, 또한 바이러스라는 것을 증명하는 코흐의 법칙에 따른 실험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음모론은 당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에이즈가 실체가 없는 감염병으로 따라서 에이즈는 사실을 날조한 ‘과학적 범죄’라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에이즈 음모론자들은 사람을 죽인다고까지 주장했던 에이즈 치료제가 지금은 많은 에이즈 감염자의 발병을 막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것에 입을 다물고 있다. 2008년에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뢱 몽타니에 박사 등이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HIV)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자 음모론자들이 발을 디딜 땅이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콜레라 폭동은 빈민 씨 말리려 한다는 음모론이 유발

7차례나 세계적 대유행을 수많은 인류의 생명을 참혹하게 앗아간 콜레라도 음모론의 한 복판에 풍덩 빠진 대표적 감염병이다. 2차 대유행 때(1829~1851년)인 1830년대 러시아에서도 콜레라가 창궐했다. 니콜라이 1세 황제 시대였다. 러시아와 헝가리 등에서 죽음에 무방비로 내몰린 빈민과 농민들이 급기야는 자신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콜레라를 퍼트린다는 음모론에 빠져 병원과 성 등을 습격해 의사와 귀족 등을 죽이는 폭동을 일으켰다. 니콜라이 1세는 군대를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른바 콜레라 폭동이었다. 과학저술가인 아노 카렌은 <전염병의 문화사>에서 이 폭동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콜레라 대유행으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콜레라에 상대적으로 더 적게 걸리자 처음에는 불공평, 그 다음에는 박해, 마지막으로는 음모의 증거로 보았다. 콜레라가 질병이 아니라 부자들이 퍼뜨린 독이며, 그들은 문제가 있는 빈민들을 제거하고 싶어 한다는 유언비어가 확산되었다. (중략) 1831년 여름 콜레라로 10만 명이상이 죽은 헝가리에서는 자신들이 독에 당했다고 생각한 농민들이 성을 포위하고 의사와 장교들을 죽였다.”

현대 사회에서 감염병 창궐로 인한 폭동은 교도소 등 특수시설과 집단을 제외하고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보다는 선거 등에서 정치적 심판을 할 가능성이 짙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감염병 창궐을 얼마나 작 막았느냐가 집권 연장이냐, 몰락이냐를 가름할 수 있다. 코로나19 음모론을 살펴보면 이런 정치적 목적을 띤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검사 대상 축소 음모론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감염병 음모론 역사 알면 음모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

모든 음모론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음모론 중에 미국 정부가 매독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가난한 흑인들을 실험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있었다. 이 음모론은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다. 음모론의 진실이 밝혀질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 터스키 지방으로 내려가 유족에게 사과했다. 음모론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감추어진 사건을 드러내는 순기능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모론은 사기이며 사회의 위기 상황이나 혼란 때 많이 퍼진다. 상상력에 의존한 음모론은,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또는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할 때,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간과되었던 부분에 과다하게 집중하면서 가정과 비약이 덧붙여져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음모론을 만들어내 주장하고 이에 솔깃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절대로 우연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음모론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음모론의 내용을 믿고 싶어 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에게만 바이러스가 찾아간다. 음모론 제조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노린다. 음모론, 특히 감염병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지름길은 감염병 역사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나타나서 사라졌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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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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