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영국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막을 시한이 이미 지났거나 매우 가까워졌다"며 "행성 비상사태(planetary emergency)"라는 표현을 썼다. 그 즈음 호주에서는 대륙 전역을 뒤덮는 산불이 세 달째 지속되고 있었다. 두 달여 뒤 호주 산불로 코알라, 캥거루 등 야생동물 수억 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정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은 84.6%였다. 그러나 실제 재생에너지 산업을 현실에서 넓혀갈 로드맵이 없다면 에너지 전환의 실현은 요원하다.
다행히 재생에너지에는 실현에 유리한 점이 있다. 화력·원자력발전과 달리 거대자본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은 건물 옥상에도 설치할 수 있다. 풍력 발전소 설비도 화력·원자력발전 설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들어설 지역의 주민과 일반 시민의 높은 지지와 참여, 그리고 적절한 정부 정책이 있다면 지역 공동체 차원의 작은 변화를 쌓아갈 수 있다.
<프레시안>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이러한 작은 변화, 즉 '지역 주민과 시민의 참여를 통한 지역 공동체 차원의 에너지 전환'을 세 편의 기사와 열 편의 기고로 보도한다. 이번 편은 김영란 강남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의 글이다.
패리스는 전기요금만 1달에 80만 원?
패리스 인근 초등학교 에너지기후수업을 할 때였다. 기후변화가 얼마가 심한지 이야기하고 우리집 전기사용으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발생시키는지 계산하니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1달 가정요금과 공동요금 합해 80만원 가까이 내는 가정과 1달 2~15만원의 전기요금을 내는 가정이 너무 극명히 비교되는 것이었다. 판상형이고 창문도 열지 못하는 주상복합의 전기사용량과 5층 복도형 아파트의 전기사용량은 작게는 2배에서 10배~20배나 차이가 났다. 스위치만 켜면 전기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고 그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 지 생각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전기요금만 기지고도 이렇게 차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수업에 참여한 아이뿐 아니라 강사들도 무척 놀랐다.
"우리가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판매한다고?", "정말? 설렌다"
우리는 그동안 원자력이나 석탄으로 생산된 전기를 거대한 송전탑을 통해 사용해야 하니 방사능위협과 각종 위해물질, 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눈물은 어쩔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시민들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게 했다. "우리가 전기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할 수 있다고?"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마침 협동조합 기본법이 바꿔 2013년 1월 12일 조합원 100명으로 강남햇빛발전협동조합이 출발했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비어있는 공공부지에 발전소를 지어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전기를 쓰면 미세먼지가 덜하고 방사능 걱정도 줄어들 것 같았다.
텅 빈 옥상은 있지만 누구 좋은 일 하라고?
한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정용·상업용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강남구청 별관에 상징적으로 발전소를 짓고 싶었다. 강남구에 기반을 둔 환경단체로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생산을 분산하는 일을 주민과 같이 하고 싶었다. 강남구청 별관 옥상에 햇빛이 잘 들고 구청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 환경과에 햇빛발전소를 제안했다.
환경과는 '비어 있는 부지를 활용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재산 관리부서는 50kW 연 1300만원 수입이 예상되는 곳에 강남구청 별관 지하1층과 같은 "임대료 2750만원 내고 하려면 하라"고 했다. 서울시 임대기준에 따르면 150만 원 정도인데 '특정 협동조합' 좋은 일에 왜 협조해야 하느냐?"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전기를 아끼고 생산하자'는데 정치적으로 나뉘어 판단한다.
2013년 강남구청 사례가 극단적이지만 현재도 많은 공무원이 '관리하는 건물에 귀찮은 혹을 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관리하는 한 우리 공공건물 옥상은 건드리지 못한다"는 관리자가 많다. 관리자는 기껏1~4년 그것을 관리할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배출량을 2050년 까지 0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 건물이 사용하는 전기,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건물이 에너지에 대한 시대의 요청을 외면하는 일이 자랑이 될 수 없다.
강남구는 단단히 거절했지만 강남햇빛조합은 서울시 공공부지를 빌려 2014년 8월 서초구 품질시험소 위에 제1호 바우뫼발전소(36kW)를 지었다. 역삼중봉사단 아이들과 준공을 축하한 일을 잊을 수 없다. 2015년에는 강남구에 있는 탄천물재생센터 방류동에 두 번째 햇빛발전소(49.5kW)를 지었다.
학교발전소는 동네주변이라 많은 주민들이 그 효과를 피부에 느낄 수 있다. 2016년에 발전소를 지은 신림중학교(70kW)는 여름은 더 시원하고 겨울은 더 따뜻하면서도 전기도 3% 줄였다. 이에 학교는 본관뿐 아니라 체육관 위에도 햇빛발전소를 갖추고 전기요금과 교육환경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신림중은 성공사례를 교육청 포럼과 세미나를 통해 퍼뜨리고 있다.
강남햇빛조합은 제4호기 개웅중발전소(49.5kW), 5호기 건대부중발전소(99.9kW), 총 5기 발전소 305kW의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2019년 한해 동안 생산한 전기량은 274,491kWh으로 한달 300kW 사용 77가구가 1년 사용할 양이다. 우리 조합은 최소한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만든다.
'1년에 최소한 1개씩 발전소 짓자'고 다짐하고 조합원들이 공부하고 증자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1개의 발전소 마다 1개의 스토리가 있다. 조합들이 짓고 있는 곳에 새롭게 토지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지로 이미 사용하는 곳인데도 개웅중은 그린벨트 안 건물이라는 점에서 최초의 사례이다. 다행히 「그린벨트법」을 해석해 높이를 조절하고 구로구청과 구로구 의회, 학교운영위원회의 도움으로 발전소가 준공되었다.
신천유수지주차장발전소는 '유수지 위에 주차장은 운영할 수 있지만 발전사업도 가능하냐'를 두고 6개월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었지만 송파구와 서울시, 조합의 여러 차례 의견 조율로 진행되고 있다.
강남구는 여전히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울시가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수서역주차장 위에 햇빛발전소를 짓겠다고 해도 앞으로 수서역 일대가 개발여지가 있다고 대놓고 반대한다. 태양광을 혐오시설로 보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땅 관리부서인 서울시의 의지도 무시한다. 기후위기 때문에 세계가 바뀌고 나라가 변하는데 강남은 요지부동이다. 강남구 혼자 유아독존,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할지 걱정된다.
에너지협동조합 참 어렵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에너지원을 소유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개념이다. 조합원 공동의 편익을 위해 1인1표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분산과 전환을 위해 필수적이고 경제에도 이익이 된다. 정부의 3020정책으로 소규모 태양광과 협동조합 태양광은 한국형 FIT(발전차액지원제도)로 생산된 전기를 고정가격으로 전력회사에 판매할 수 있어 안정적 수익확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기반을 마련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출자에 대해 매년 3~4%의 배당금을 받는다. 재생에너지 생산자들이 누구한테 전기를 팔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님비(Not in my backyard)'를 해결하려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개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만드는 것이 시민참여 활성화의 열쇠이다"라는 것은 독일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일 재생에너지협동조합은 2018년 현재 850개이상이고, 이미 원전 1기와 맞먹는 총 1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에너지 시민'의 참여를 조직하고 자력으로 초기 자금을 조달해 지속 가능한 발전 사업을 구축하는 데 효과적인 형태이다. 발전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특정 대기업이 아니라 주민 공동의 몫으로 귀속된다는 점도 에너지 협동조합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한동안 태양광 가짜뉴스와 악의적인 보도를 보고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에너지전환은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하며, 정부와 에너지단체, 에너지조합이 책임 있는 자세로 시민을 설득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이 에너지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이유는 재생에너지 확대, 직접 에너지 생산, 조합원 배당, 지역경제 가치 창출 등 다양하다. 자신이 출자한 금액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일상에서 확인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너지전환동기가 스스로의 에너지 사용패턴도 돌아보게 하고 실천방안을 돌아하고 스스로 수용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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