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 코미디언의 죽음, 감염병 유명 희생자들이 남긴 것

[안종주의 안전사회] 감염병으로 세상 뜬 유명인들이 남긴 것

일본 국민 코미디언 죽음이 감염병 유명 희생자를 소환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으로 불리는 시무라 켄 씨가 코로나19로 29일 밤 숨졌다. 올해 일흔인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분이 얼마나 유명한 지 잘 몰라 일본 신문 등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NHK>등 주요 언론들이 톱뉴스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 이주일 씨에 버금가거나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유명한 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일본 언론이 전하는 보도에는 제자 격인 한 연예인의 비통을 담은 멘트도 있었고 동갑내기 연예계 동기생인 텔레비전 프로듀서의 추모의 말도 있었다. 그와 친했던 한 가수는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켄 씨와 또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도 ‘유명 코미디언 시무라 겐 코로나19 감염 사망...일본 열도 충격’ 등의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시무라는 지난 19일 발열과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20일 도쿄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중증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했고, 23일 코로나19 감염 확진을 받았다. 그는 이후 에크모(ECMO·인공심폐장치) 치료를 받는 등 치료를 이어왔지만, 29일 밤 도내 병원에서 별세했다는 것이다.

유명인 죽음은 위험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어

코로나19는 세계 각국에서 유명인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미국의 인기 컨트리 가수 조 디피도 29일(현지시각)일 예순하나의 나이에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7일 확진 사실을 공개한 지 이틀 만에 합병증으로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사망했다. ‘아이 러브 록 앤 롤’의 원작자인 가수 앨런 메릴도 같은 날 숨졌다. 미국 범죄수사물 드라마 <로앤오더>(엔비시) 등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 마크 블럼도 지난 26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유명인사들의 죽음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위험에 대해 대중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위험인식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심리·사회학자들이 내놓은 결과이다. 따라서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그 나라 사람들(세계적인 유명인물일 경우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예방 행동은 물론 조기 검사를 적극적으로 받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20세기 후반에 이어 21세기까지 많은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길핍증)의 경우도 세계적 배우인 미국의 록 허드슨와 앤서니 퍼킨스,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드 머큐리,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 흑인 테니스 영웅 아서 애시 등이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초반 전 세계인들에게 에이즈의 위험성을 알리고 숨졌다.

에이즈-록 허드슨, 두창-중국 황제, 콜레라-미국 대통령 숨지게 해

감염병 등 세계적 재난은 유명 역사적 인물의 희생이 있을 경우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서도 위험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두창으로 고통을 겪거나 숨진 유명 역사 인물로는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 중국 황제 순치제, 동치제, 아스텍 테노치티틀란의 10대 틀라토아니(지배자) 쿠이틀라후악(1520년), 잉카 황제 후아이나 카팍(1527년) 등이 있다.

또 최근 인물로는 제8대 시크 구루 구루 하르 크리샨(1664년), 러시아의 표트르 2세(1730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생존), 프랑스 왕 루이 15세(1774년),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1777년) 등이 있다. 이처럼 두창으로 숨진 역사적 인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감염병이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고 창궐했다는 것을 뜻한다.

콜레라의 대유행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93년)와 열역학 법칙의 기초를 닦아 열역학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프랑스 과학자 사디 카노(1832년, 36세), 프랑스 왕 샤를 10세(1836년), 미국 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1849년), 독일의 군사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1831년) 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인류 최악의 결핵, 슈베르트, 칸트, 가수 김정호 목숨 앗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10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평가되고 ‘백색 흑사병(white plague)’이란 별명을 지닌 결핵은 특히 유명 소설가와 시인, 작곡가 등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결핵은 가장 많은 예술 작품에서 소재로 등장하는 감염병이 됐다.

결핵은 샤를(<제인 에어>)과 함께 세 자매 소설가로 유명한 영국 브론테 자매 가운데 <폭풍의 언덕>의 둘째 에밀리(30살)와 막내 앤(29살)을 요절하게 만들었다. 또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 와 쇼팽도 결핵에 걸려 31살과 39살의 나이로 각각 일찍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데카르트와 칸트, 스피노자는 물론이고, 실러, 슈베르트, 볼테르, 안톤 체홉 등 당대의 위대한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와 사상가 등도 결핵의 제물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봄, 봄>의 소설가 김유정, <오감도>의 천재 시인 이상, <이름 모를 소녀>의 대중가요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정호 등이 결핵과 싸우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나이에 안타깝게 각각 요절했다,

코로나19는 영국 총리와 보건장관, 이란의 정치지도자 등 각국에서 지위고하와 유·무명을 따지지 않고 찾아가고 있다. 과거 역사적 감염병처럼 어떤 역사적 인물이 제물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장삼이사들은 이런 사람들의 감염과 사망을 보면서 더욱 이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 정체를 많이 드러냈다. 물론 아직 잘 풀리지 않은 문제가 상당 부분 있다. 그렇더라도 현재 드러낸 모습만이라도 잘 살펴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위생수칙 등을 잘 지키면 그렇게 공포에 떨 감염병도 결코 아니다. 국가의 방역 대책과 전략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습관과 건강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감염을 피할 수 있다. 유명인의 죽음에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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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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