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과로사, 삼촌은 투잡, 아들은 알바…"

[시민정치시평]<32> 장시간노동체제의 '불편한 진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만들기가 다시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4일 현대차와 기아차는 고질화된 장시간노동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개선대책 압박에 굴복하여 올해 1400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를 통해 자동차사업장에서 10시간 철야근무, 일부 부서의 12시간 맞교대, 일상화된 주말특근 등을 통해 연간 노동시간이 무려 2700-2800시간에 이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장시간노동문제는 비단 자동차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기관의 종사자가 저녁 9시가 넘어서 퇴근하거나, 공공기관의 직원이 늦은 밤까지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에서 장시간노동이 일상화된 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 왜 현 시점에서 이러한 장시간노동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산재와 과로사 등 노동자의 건강권문제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청년층의 실질적인 실업율이 20%에 이르고, 그나마 새로운 일자리 조차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고용구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현대차와 같은 재벌대기업들이 사상최대의 실적이라는 돈 잔치를 몇 년째 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사내하청 투입과 장시간노동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더욱 줄이고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이유이다. 실제로 대기업 종사자가 2010년 기준으로 약 10년 사이 50만 명 이상이 줄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현대자동차 생산직의 경우 2004년 약 700명이 채용된 이후 2010년까지 단 1명의 신규사원을 뽑지 않았다. 더욱이 2010년 말 노동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 자동차, 철강,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의 주력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중이 정규직 대비 34.8%에 이르고, 한 조선업체는 그 비율이 150%인 걸로 밝혀졌다.

▲ ⓒ프레시안(김봉규)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 노동시간단축은 공허한 말잔치에 머물고 장시간노동체제는 재생산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창출에 대한 노사정의 무책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생산량의 확대에 따라 요구되는 필요인력을 정규직으로 새로 뽑기 보다는 비정규직을 투입하거나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의 '반(反)고용'적 태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노동조합이 기업의 인력최소화전략에 대해 소득극대화전략으로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기존 취업자, 특히 잘 나가는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이 필요인력에 대해 청년노동자의 신규채용에 힘을 모으기 보다 초과노동을 통한 임금소득의 추가획득에 매달려 왔다. 여기에 노동시간의 법제도적 규율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또한 명백하게 불법인 주당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서 지금까지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충분한 고용여력을 가진 양질의 일자리에서 탈법적인 장시간노동을 일삼는 대기업 노사의 담합을 사실상 방조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초과노동의 이익을 내부자가 나누어 먹고 그 사회적 비용은 외부자가 짊어지는 '장시간노동체제의 담합구조'가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장시간노동체제의 효과는 너무나 명백하다. 대기업의 사용자는 신규투자와 고용창출을 최대한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정규직 노동자는 초과노동으로 '뺑이'를 치면서도 늘어난 연봉에 만족하게 되었다. 한편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예비노동자는 알바와 인턴사원을 전전하고 있는 반면, 노동조합은 고용보장과 고임금만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매도당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고용위기'의 시대에 서 있다. 양질의 일자리창출은 시대적 요구이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시간노동체제의 담합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과감한 사회적 선택과 노사정의 결단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시간 관련 법제도의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시간 규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법정노동시간에 대한 현행 조항을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규제해야 한다. 특히 휴일근무를 연장근로규정에 포함시켜야 하며, 총노동시간을 기간별로 제한하는 노동시간상한제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가 현재 봉착하고 있는 고용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노동시간의 단축방안을 포함하여 고용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협의기구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유명무실해진 현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노사민정위원회의 발전적 재편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청년고용할당,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상용형 시간제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모색하고 고용 관련 법제도의 개혁방안을 새롭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 노동조합은 향후 10년 내 주당 35시간 협약노동시간제도의 도입을 목표로 하는 실노동시간단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노동체제를 해소하고 고용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 외에, 실노동시간 단축방안의 단체협약화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같은 교대제전환을 통해 노동의 인간화와 고용창출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

결국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좋은 일자리창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벌대기업 노사의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사용자는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장시간노동체제의 유인장치를 없애고 신규투자와 인적 역량 강화를 위한 산업입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조합 또한 임금보전의 논리로 합리화해 온 초과노동의 악습을 깨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연대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시간노동체제의 극복을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노동조합의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일자리에서 실노동시간의 단축이 이루어진다면, 고용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새로운 일자리는 공장과 기업을 새로 설립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기존 취업자의 장시간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아버지는 철야근무와 초과노동에 시달려 과로사위험에 직면하고, 삼촌은 부족한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해 '투잡'을 찾아야 하고, 자식은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알바로 연명하는 고용불안사회를 벗어나는 단초를 실노동시간의 단축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용위기시대 일자리혁명의 '숨겨진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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