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임 개악, 사용자엔 '선물'...노동자엔 '괴물'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데이터 마사지 下

까도 까도 양파처럼 새로운 내용이 계속 폭로된다. 흥부가 타는 박처럼 즐거운 소식이 줄지어 나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놈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는 놀부가 타는 박처럼 사용자들의 온갖 꼼수와 편법의 가짓수만 늘려주고 있다. 앞으로 지자체 선거까지 1주일 남짓 남았으나, 그 사이에도 엄청난 분량의 사례들이 보고되고 또 폭로되리라.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데이터 마사지 上] 노동부의 최저임금 영향률이 기가 막혀)

6가지 업종의 기대임금 시뮬레이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구체적인 수치를 동원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산입범위 확대가 이뤄져도 “연봉 2500만 원 이하에는 피해가 없다” 혹은 “고임금 계층에만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사력을 다해 입증하려 한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가져오는 수치들을 보면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30일 울산 시의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구체적인 데이터를 놓고 한 번 분석해보자. 지난 5월 29일, 고용노동부가 기자 간담회에 배포한 자료를 보면 6가지 업종(음식점·주유소·아파트관리업·제조업·마트업·건설업) 노동자들의 내년 기대임금이 얼마인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자료가 나온다.

내년 최저임금이 10% 인상된다는 가정 아래 계산된 것이라 참고로 수치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금액은 157만 원이며, 내년에 10%가 오르면 월 16만 원이 인상되어 173만 원이 된다. 그렇다면 정기상여금은 173만 원의 25%인 43만 원이 넘는 만큼, 복리후생수당은 173만 원의 7%인 12만 원이 넘는 만큼 추가로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고용노동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표로 정리해 보았다. 기본급은 대부분 최저임금(157만 원)인데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 크기에 따라 연봉은 업종별로 차이가 난다. 쉽게 비교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봉 크기가 늘어나는 순서로 배열해 보았다. (붉은색 강조는 필자가 한 것임)


자, 이제 표를 보면 고용노동부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증하고 싶었던 의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연봉 2500만 원에 미달하는 음식점·주유소·아파트관리업의 경우 최저임금 10%(월 16만 원) 인상에 따라 기대임금이 14.5~16만 원 인상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연봉 2500만 원이 넘는 제조업·마트업·건설업의 경우 임금인상이 없거나 월 4만 원에 그쳐 기대이익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연봉 2500만원만 넘으면 고임금 계층?

그런데 표를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연봉 2500만원이 무슨 삼팔선이라도 된단 말인가. 연봉 2472만원 받는 아파트관리업은 기대임금이 월 16만원 인상인 반면, 그보다 연봉이 고작 200만 원 많은 제조업은 고작 월 4만 원 인상이란다.

연봉 2500만 원이면 월급이 200만 원 약간 넘는 수준이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이들을 ‘고임금 계층’이라 분류한단 말인가. 위 표에 따르자면 아파트관리업보다 연봉이 300만 원 가량 많은 마트업과 건설업의 경우 최저임금 10%가 올라도 그에 따른 임금인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는 뭘 입증한 걸까? 간단하다. 월 160~180만 원 받는 노동자에겐 피해가 없고, 월 200~220만 원 받는 노동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월 200~220만 원만 받아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계층이란 말인가? 월급 200만 원이 넘으면 막대한 피해를 보는데, 200만 원이 안 되는 노동자들은 이런 시뮬레이션이라도 보면서 위안을 삼으라는 말?

사실 엄밀히 말하면 연봉이 높을수록 피해가 커지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연봉이 400만 원인 작은 주유소의 임금인상은 아파트관리업보다 1.5만 원 더 낮다. 아파트관리업의 기대임금이 주유소보다 높아진 것은 순전히 ‘우연’에 속한다. '개악' 최저임금법에 따라 12만 원 상당의 복리후생수당은 내년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게 될 줄 누가 미리 알았겠는가.

그런데 주유소 노동자에겐 13.5만 원, 아파트관리업에는 9만 원이 수당이 지급되다보니 주유소 노동자의 기대이익이 더 줄어들게 된 것이다. 주유소에는 없는 정기상여금이 아파트관리업에는 있어서 총액 임금은 높은데, 그 상여금 규모가 절묘하게도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39만 원 수준이었기에 이런 우연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정기상여금 월 43만 원, 복리후생수당 월 12만 원 한도 내에서만 상여금과 수당을 받는 ‘우연’적인 상황에서만 기대이익이 유지될 뿐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내년(2019년)’ 얘기일 뿐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 부칙에 따르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매년 줄어들게 되며, 2024년이 되면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모두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아파트 관리업은 운대가 좋은 것일까?

이렇듯 ‘운대’에 따라 기대임금 인상폭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과연 자본가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임금을 줄이는 길을 찾아 헤매는 이들 아니던가. 수치 몇 개만 보면 쉽게 보이는 길이 하나 있다.

내년에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는 범위를 보면 상여금(25%)이 복리후생수당(7%)보다 훨씬 넓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입장에서 상여금을 줘서는 재미를 못 본다. 차라리 수당을 줘야 산입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새로운 수당을 신설하면 비용이 늘어나니 임금 총액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산입범위를 늘릴 방법은 없을까?


간단한 방법이 있다. 아파트관리업에 주던 정기상여금을 모두 다양한 명목을 달아 복리후생수당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여금이 사라지는 대신 복리후생수당이 월 49만원으로 껑충 뛰게 되어, 7%(12만 원)를 제외한 37만 원이 산입범위에 추가된다.

최저임금이 10%가 올라 월 16만 원이 인상되더라도 임금체계를 저렇게 바꿔버리면, 단 한 푼의 임금인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무려 37만 원이나 추가로 산입범위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내년은 물론이고 내후년까지도 임금인상을 안 해줘도 될 수준이다. 이래도 정말 연봉 2500만 원 이하에는 피해가 없다고 강변할 것인가!

박근혜 노동개악 Season 2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상여금을 수당으로 바꿔버리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나요?"

왜 이렇게 순진한 척 물어보실까. 종전까지 최저임금 오르면 상여금·수당이 있던 사업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사용자들은 일방적으로 상여금과 수당을 ‘기본급’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걸 일방적으로 기본급화 하는 것 역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그러나 감시·감독을 맡아야 할 노동부는 뒷짐을 졌고,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자본가들은 자유롭게 기본급 전환을 밀어붙였다.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바꾸는 것도 맘대로 했는데, 이걸 수당으로 바꾸는 짓은 왜 못하겠는가.

이를테면 고용노동부는 시뮬레이션에서 음식점의 경우 복리후생수당이 10만 원으로 산입범위 추가되는 금액이 없어서 최저임금이 오르면 꼭 그만큼 올려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법 '개악'이 되기 이전에도 얼마든지 사용자들은 아래와 같은 꼼수, 즉 복리후생수당을 모조리 기본급에 산입시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켜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번 최저임금법 개악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 하나 있다. 사용자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1개월을 초과하는 주기로 지급하는 임금을 총액의 변동 없이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는 경우” 이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겠다는 조항을 삽입해준 것이다.

즉, 2~3개월에 한 번씩 지급하는 상여금을 1개월 단위로 주겠다고 변경하면 상여금 모두가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상여금 지급주기를 사용자가 맘대로 변경하는 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런데 아예 법조문으로 저걸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겠다고 넣었으니, 사용자들은 이제 자기 마음대로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게 됐다.

취업규칙 변경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행정지침’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핵심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비록 특정 사안에 대해서라고는 하나 ‘행정지침’ 수준이 아니라 ‘법제화’ 사례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제 이런 사례가 하나 생겼으니 앞으로 취업규칙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정부는 당연히 이런 사안에 대해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선언’이야 하겠지만, 그건 선언에 불과함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박근혜도 그런 약속은 몇 번이나 하지 않았던가. 수십만, 수백만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수천만 가지 꼼수에 대해 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들이 무슨 수로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박근혜 노동개악의 ‘시즌 2’를 목도하고 있다.

헬조선이 열렸다. 2000만 노동자 '임금 제자리걸음'

문재인 정부는 오늘(5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개악된 최저임금법을 심의·의결하고 말았다. 정부는 끝내 강을 건너고 말았다.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수많은 괴담이 만들어진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법 개악 역시 엄청난 괴담을 낳을 것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앞에서 설명한 꼼수만 놓고 보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고용노동부의 6가지 업종 시뮬레이션 결과에 이들 꼼수를 대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 아래와 같이 표로 나타내 보았다.


최저임금이 10%, 즉 월 16만원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많이 올라야 월 6만 원 인상에 그친다. △ 산입범위 확대 △ 상여금·수당 쪼개기 △ 상여금 기본급 전환, 이 3가지 꼼수만 사용했을 뿐인데, 연봉 2000만~3000만 원 노동자들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봉 2500만 원 미만은 피해가 없다고 강변하는 문재인 정부, 답을 한번 해보시라. 2000만 노동자 모두의 임금이 앞으로 몇 년간 제자리걸음, 헛바퀴만 돌게 생겼다. 이게 헬조선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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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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