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민영화, 대법원은 박근혜정권 '푸들'이었나?

SR 면허 발급, '경제적 관점' 판단이라는 대법원의 궤변

철도 노동자들이 재판 뒷거래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강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수서발 KTX(SR) 면허 취득 과정에 개입했으며,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재판과 KTX 승무원 파업 재판 당시 판결에 부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다.

지난 25일 공개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는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는 문구가 담긴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서 박근혜 정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된 사례로 철도 파업 사건 관련 판결이 제시됐다.

이른바 박근혜 정권과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이다.

31일 공공운수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전국철도노조,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양 전 대법원장 강제 수사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해소하고, 재판 피해자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서고속철 탄생 배경, 대법원은 청와대의 '푸들'이었나?

ⓒ철도노조
철도 파업과 관련된 판결들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던 '철도민영화'와 맥을 함께 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왔었다.

특히 수서발 고속철도 설립 등 'KTX 쪼개기'로 만들어진 SR의 탄생이 법원의 '재판 거래'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SR 운영법인 설립 등기 사건은 2013년의 판결이다. 2013년 12월 27일 대전지방법원 21민사부는 SR 법인 설립비용 인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법원은 철도공사에 법인 설립등기를 내줬고, SR 출자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판결에 따라 SR에 사업면허를 발급했다.

그런데, 이 같은 별도 법인 설립등기 인가 자체가 위법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철도산업 분리화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 분리로 시작됐다. 당시 입안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를 국가 소유 시설로 명확히 하고, 다른 민간법인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모두 삭제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SR 역시 철도공사가 운영해야 한다. 이 때문에 철도공사가 아닌 제3법인이 운영권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위법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관련기사 : [단독] 정부, 3년전 '수서발KTX' 법 개정 필요성 지적했다)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뒷거래' 의혹이 제기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양 전 대법원장과 관련한 의혹을 조사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공개한 2015년 7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대외비 문건을 보면, 당시 대법원은 이 판결을 두고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허가'했고, 이를 통해 '파업을 종식시켰다'고 자체 진단했다.

아울러 이 같은 면허발급이 '법리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 경제적 관점의 허가'였다고 자체 진단했다. 법리적으로 문제 있는 판결이었음을 양승태 대법원이 자인한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스스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재판'의 대표적 사례로 해당 판결을 들었다.

이와 관련해, 철도 노동자들은 "양승태 대법원의 개입으로 SR이 국민 반대와 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면허를 취득했다"며 "이는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SR은 국민 3분의 2가 반대한다는 조사가 나왔음에도, 박근혜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여 탄생한 기업이다. 대법원과 청와대의 물밑 거래설이 나온 이유 중 하나다.

양승태 대법원, 노동자 피눈물을 박근혜 정권과 거래?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은 철도노조 조합원 200여 명의 해고, 1만1000여 명의 징계라는 대규모 중징계로 끝났다. 이후 22명의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복직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2014년 8월 양승태 대법원은 "철도공사 사업장 특성상 업무 대체가 쉽지 않다"며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 일정을 예고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해도 사측이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도노조 파업의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간단히 말해 '파업을 예고해도 불법 파업'이라는 논리로 사측의 손을 든 셈이다. 이와 관련해 철도 노동자들은 "황당한 논리로 업무방해죄를 인정"한 사례라며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흥정과 조작으로 소송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직장을 잃었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KTX 승무원들은 직접 고용을 위해 2006년부터 지금껏, 12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싸워왔다. 하지만 2015년 판결로 이들의 정규직 전환은 힘겨워졌다. 당시 대법관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승무 업무는 안전 업무와 서비스로 구분되며 △안전 업무는 열차팀장이, 서비스 업무는 여성 승무원이 담당하므로 △안전 업무만이 핵심 업무인 만큼, 승무원이 담당하는 서비스의 외주화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승무원이 단순히 서비스만 하는지, 안전 업무도 보는지는 당시 판결의 핵심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판결은 승무원의 업무를 서비스로 한정해, 외주화를 정당화했다. 즉, 승무원은 판결 대로라면 안전 업무 책임이 없다.

하지만, 당시부터 양 전 대법원장의 판결은 2015년 개정된 철도안전법과 상충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 철도안전법은 열차 승무원도 안전 업무를 담당해야 하며, 승무원은 철도사고 등의 상황 발생 시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현장을 이탈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토록 했다.

이 같은 모순 상황은 KTX 승무원들로부터 장기간 지적되어 왔다. 양 전 대법원장의 KTX 해고 승무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은 민변이 꼽은 이 해 최악의 판결로 꼽혔다.

철도 노동자들은 "양승태 대법원에서 합법이 불법으로, 불법이 합법으로 뒤바뀌었다"며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자행된 대법원의 국정 농단에 대한 강제수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

與 "대법원 게이트, 국정조사 해야"

국회 차원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 결과를 두고 강력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사법 농단', '대법원 게이트'로 명명하고 공세에 나섰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국민을 위한 판결, 사법부 독립을 수없이 강조했지만 양승태 체제 사법부의 민낯은 청와대를 위한 판결이었다"며 "노동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특히 문제다.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지정, 철도공사 파업 관련 사건, 그 중에서도 통상임금 사건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특히 노동계에 대한 잘못된 일방적 판결에 대해 바로잡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거래 의혹을 '사법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특히 KTX 승무원의 자살 사례를 거론하며 "생을 포기한 KTX 승무원의 안타까운 선택은 양승태 사법부와 무관하지 않다"며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 책임자가 판돈을 걸고 청와대와 도박판을 벌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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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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