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명 난민,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프레시안 books] <21세기 지구촌 최대의 유혈분쟁-시리아 전쟁>

"56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안전한 곳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시리아 전쟁이 터지기 전에 500만 명이 넘는 대량 난민을 낸 민족은 유대인들로부터 쫓겨난 팔레스타인 민족 딱 하나였다. 지금 시리아는 지구상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 국가가 됐다"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최근 펴낸 <시리아 전쟁-21세기 지구촌의 최대 유혈 분쟁>에서 7년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시리아 인구의 3분의 1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분쟁전문기자로 중동 지역과 발칸 반도, 서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전쟁의 실상을 보도했던 김 기자는 이번 신간을 통해 시리아 전쟁을 단편적인 보도로만 접했던 사람들에게 왜 이 전쟁이 201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지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와 함께 7년 동안 이어진 비극을 끝내기 위해 국제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시리아 전쟁은 국민을 지킬 생각이 없는 시리아 정부와 무능력한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현재 진행형 비극'이다.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 집계도 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아온 것으로 추정될 뿐 전쟁 희생자의 정확한 통계조차 잡기가 어렵다. UN 조차도 2015년부터는 시리아 전쟁 희생자 집계를 포기한 상태다. UN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시적 휴전을 이뤄내고 그 틈에 긴급 구호 활동을 펴는 것이 고작이다"

▲ 지난 4월 7일(현지 시각) 화학무기 공격의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치료받는 장면으로 시리아민방위가 제공한 사진. ⓒAP=연합뉴스

사실상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는 뜻인데, 시리아는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김 기자는 2011년 '아랍의 봄'이 촉발되면서 독재 정부 대 민주 반군 구도였던 '내전'이,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국제사회 및 무장단체들이 개입하면서 '전쟁'으로 확대됐고, 그 과정에서 어느 한 세력이 나머지 세력을 누를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지지 못하면서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시리아 전쟁은 크게 4개의 축으로 진행됐다. 우선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 정권의 시리아 정부군과 이를 도와주는 러시아,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등 외부세력이 있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군과 이들을 돕는 미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시리아에서 자치권을 확보하고 분리‧독립을 꿈꾸는 쿠르드족 세력이 한 켠에 자리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상당히 위축됐지만 한때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접수했던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있다.

2014년 IS가 세를 확장하고 이슬람국가를 선포하면서 무게중심이 IS 쪽으로 기우는 듯 했으나, 러시아와 미국 등의 개입으로 이들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IS를 퇴치하면서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 져야 했지만, 각자 이해관계가 달랐던 미국과 러시아는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을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은 이스라엘의 안보 그리고 중동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다. 미국은 독재자인 알 아사드가 권좌에서 쫓겨나면 그 뒤 시리아 상황이 매우 불안정할 것이라 내다봤다. 더구나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 세력이 시리아 정권을 잡는 구도는 미국으로서는 '최악'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위협적이지 못한 지금의 독재자 알 아사드가 미국의 시각에서는 차라리 낫다"

"알 아사드에게 고마운 친구가 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러시아군은 오로지 IS를 공습하는 미군과 달리 짬짬이 반군의 근거지들을 공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구소련 시절부터 시리아-러시아는 우호적 관계였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 등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시리아의 인프라 확장 공사, 천연가스 처리 공장 등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어왔다"

이렇듯 국제사회에서의 주요 행위자인 미국과 러시아가 각자의 이해관계만 챙기는 동안 시리아 국민들은 폐허로 변해버린 삶의 터전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군이 투척하는 화학 무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김 기자는 책에서 "전쟁에 관한 국제법 문서들은 시리아에서 휴지처럼 구겨졌다"고 말했다.

과연 이 전쟁은 끝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미국이 시리아에 조금 더 일찍 개입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을 치른 미국 입장에서는 시리아에 개입할만한 명분이 없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시리아 개입에 대한 지지가 높지 않았다.

▲ <시리아 전쟁-21세기 지구촌의 최대 유혈분쟁> (김재명 지음, 내인생의 책 펴냄) ⓒ내인생의책
또 군사 개입은 그 자체로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불러올 수 있다. 시리아 자체가 다양한 종교와 세력으로 나뉘어진 상황에서, 외부의 군사 개입으로 특정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면 그 정부가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두가 손을 놓고 있던 시리아 전쟁은 최근 아사드 정부군이 반군을 잇따라 격퇴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이 다시 시리아 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한다고 해도, 이미 국민의 3분의 1을 내팽개친 지도자가 권좌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또 아사드 정권은 시리아 전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군 잔여 세력 및 기타 반정부 세력을 끝까지 소탕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전쟁의 끝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알아사드 정권에 평화를 위한 중재에 나서라고 러시아와 미국 등 관련 국가들이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시리아 국경을 넘어서는 수백만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은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어려워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하는 인류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 기자는 시리아 난민들과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국제사회의 모습을 보며 인류가 결국은 전쟁으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가 불과 한 세기 만에 또 다시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만약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한다면 지난 1,2차 세계대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와 상처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 시리아 전쟁을 평화롭게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들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책임있고 진지하게 시리아 전쟁의 종결 논의에 착수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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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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