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이순신리더십'을 주제로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예산을 투자하고 10여 년간 많은 준비과정을 거쳐서 개관하게 되어 기대가 크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세종대왕이나 장보고의 경우를 보면, 정부 지원으로 기념관과 연구소가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렇지 못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광화문광장에 이순신동상 제막을 시작으로 학교마다 이순신동상이 만들어졌다. 본가가 있는 아산에는 현충사를 지어주는 등 국가지원 사업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에서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해군의 온상인 진해와 통영, 여수 등 몇몇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선양사업이 진행되어 온 것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운데 1999년부터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순신연구소가 발족되어 학술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KBS방송의「불멸의 이순신」과「명량」영화가 방영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이순신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지게 됐다.
그러나 이순신의 수많은 해전승리 중에 하나만 영화화 된 것이라면, 앞으로 더 많이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할 충절에 따른 행적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안이 민간단체가 다루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기에 경상남도와 창원시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여 고성의 공룡과 함평의 나비축제처럼 이순신리더십을 주제로 국가수준에서 선양사업 본격화를 선언하고, 이에 따라 국제센터를 개관하게 된 것이므로, 국민의 바람이 잘 반영된 사업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이순신 정신은 교과서에 있는 바와 같이 5대 정신으로 압축을 하고 있으나 그간의 연구 자료가 확대되면서 더 많은 정신이 정리되었고, 이순신의 자살설 등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나 동상의 모양이 맞지 않는 등의 사실에 대한 고증과 함께 이제는 공신력 있고 합치된 정신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또한 시대가 바라보는 이순신 정신은 그 시대에 가장 큰 지침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때, 무엇보다 선공후사(先公後私)정신을 들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사사로운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보다 나라를 위한 공적인 사명을 앞세워 평생을 살았다. 그러한 정신이 20일 만에 파죽지세로 수도가 점령되고 왕이 피난을 가면서 국가에 지휘관과 지상군이 없는 가운데 국민을 하나의 힘으로 뭉치게 하고 항일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의 희생정신 이야말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훌륭한 삶의 길 지침서가 아니겠는가. 국민 모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이 갈수록 새롭게 변하는 모습)해야 하겠다.
대왕 선조보다도 더 국가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한 이순신... 진해 용원의 안골포만은 복주머니 같이 생긴 조그마한 포구이며, 여기에 40여척의 왜선이 이순신함대를 보고 급히 피신하였다.
독안에든 쥐 신세가 된 적 세력을 이순신함대는 밀물 때 종렬진 진형을 형성하여 포구로 들어가서 총통으로 정박해 있는 왜선을 모두 격멸시킬 수가 있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 시 병사들에게 전과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기 때문에 함선을 전멸시키면 왜군병사들이 육지로 상륙하여 조선백성들을 살육하고 코를 베어갈 것이기에 백성을 사랑하는 이순신은 일부 왜선을 남겨두고 철수를 하게 한 것이다.
진주-순천에 이르는 백의종군로에서 피난백성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피난할 방향을 가르쳐 주고 죽지 말고 잘 피신하라고 설명하곤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작금의 시대엔 결코 찾기 어려운 리더십이다. 시대를 거슬러 기부문화가 잘 정착된 미국은 자본가들의 자발적인 재산 사회 환원 정신이 모든 이로 하여금 자본가들을 존경하게 만든다.
영국의 노블리스오블리제 정신은 어려운 국가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권력가와 그 자제들이 솔선하여 전장에 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자 가운데 미국의 유명 인사나 장군의 아들이 일반인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몸에 베인 선공후사정신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훌륭한 정신이 시대와 역사를 승리로 이끌어 내고 스스로 희생하므로써 권리보다는 책임을 중시여기는 건강한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다. 국민들 서로에게 신뢰감을 주고 중요한 시기에 국민의 힘을 모아 난국을 극복하고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존경’과 ‘명문가문’이란 용어를 시민들이 인정하게 하는 것은 가진자와 능력자들이 평소에‘배려’가 선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전통은 그들이 후세대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도록 교육되어 지고, 필요한 인내심을 배양하도록 요구하였기에 가능하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정쟁과 불필요한 논쟁의 혼란, 심지어는 거짓정보까지 뒤섞여서 결론도 없고 불신만 난무한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 88올림픽과 2002 월드컵에서는 하나 된 모습으로 세계 속에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기간 중에 반목과 질시는 없었고 자발적인 질서와 화합, 축하와 격려, 나눔과 사랑이 있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말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신은 우리민족을 한국전쟁이라는 사지에서 구해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또한“배고픔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뭉쳐서 우리나라를 경제선진국으로 이끌었다.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는 의병의 항일정신으로 표출되어 나오는데 그 근간 역시 이순신 정신과 상통한다. 항일정신이 삼일운동으로 독립군으로 그리고 만주로 상해로 미국으로 넘어갔다가 해방이 되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고 이를 바탕으로 곳곳에서 항쟁과 의거의 정신이 되었다.
이순신의 생애를 목격한 부하들과 백성들은 개인의 희생을 불사하고 오직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전국의 남녀노소가 모두 일어나 왜적에 대항하기 시작해 조총을 든 막강한 사무라이 군대로부터 승리를 쟁취하였던 것이다. 이순신에게 유일한 친분이 있는 유성룡이 조정의 요직에 있을 때엔 이순신은 결코 그를 만나려하지도 않았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아산에서 여수로 내려와 있었지만 공직의 일을 하는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모습을 난중일기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직 시에도 통영으로 내려오지 않고 여수에 그대로 계셨다. 이순신의 효행심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나 오랜 전란기간 서신왕래는 자주 볼 수 있으나 가까이 계신 노모를 상봉하는 기회는 결코 몇 번 되지 않는다.
공직자이기에 효행심 마저도 사사로이 드러내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평상시 이순신은 관내에서도 갑옷 입는 것을 생활화하였는데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부하들이 적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또 하나의 정신은 “선승구전(先勝求戰)” 이다. 전장에서 “미리 이겨놓고 싸운다.”는 옥포해전에서 명량해전까지 모든 해전사에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이순신의 전투는 전승은 물론이고, 적선은 침몰되어도 이순신함선은 침몰되지 않았다는 점과 적의 시신은 산을 이루는데 이순신병사는 전사자가 거의 없는 모습이다.
결국은 이순신장병들은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전쟁에 대범하게 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다만, 한척의 군함이 침몰을 한 적이 있는데 공을 다투어 앞서다가 우군끼리 부딪혀서 손상을 입은 게 전부이다. 선승구전은 손자의 병법에도 나오고 있는데 승병(勝兵)은 선승이후구전(先勝以後求戰)이라 패병(敗兵)은 선전이후구승(先戰以後求勝)이라고 하였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우는 군대이나 패병은 일단 싸워놓고 승리를 찾는 군대”라고 하였다. 전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서도 외교에서도 학교와 병원에서도 모두 적용되어야 할 말이다. 창원시가 역작으로 내어 놓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에 초·중·고·대학생, 일반인과 CEO 등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다.
체계적인 강의와 체험 준비를 통해서 이순신의 사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순신정신을 마음에 새긴 수많은 리더 야 말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고, 희망이 넘치며 살고 싶은 도시, 정이 넘치는 나라로 바꾸고 위난을 스스로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센터가 순항이 되도록 제대군인과 선생은 재능을 기부하고, 자본가는 기부하며, 시민은 참여하는 “이순신나라사랑 확산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연력-
강 희 승 (姜熙勝) (現)사단법인 이순신네이비리그 이사장
-교육경력
해군사관학교 졸업(’79∼’83)
국방대학교 국방관리 석사(’88),고위정책결정자 과정(’08)
해군대학 정규과정(’95)
미·일 국외위탁 연수(’09. 7.)
공주대학교 정보화 정책관리학과정(’09)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정책과정(’10)
국방대학교 안보과정(’10) 학생장
충남대학교 해군고급정책관리자과정(’12)
한국해양대학교 해양안보정책학 박사(’13∼’15)
북극해 환경변화로 인한 한국의 해양안보정책 연구
-주요경력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장 (현)
해양대학교 교수(현)
국제 해사법학회 이사(현), 방위사업청 자문위원(현)
동명대학교 항만물류학과 교수(’15∼’18. 2.)
글로벌실크로드(주) 수석부회장 지자체와 기업연구소 4차산업과 미래비전 자문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위원(’15∼’17)
해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13∼’14)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소요처장(’12) 창원시 명예시민 위촉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겸 진해특정경비지역사령관(’11) 정신전력강화 우수부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예산처장(’09) 해군 역사상 최대예산 획득(25.8%)
1함대사령부 참모장(’08) 사고 Zero부대
호위함(경북함) 함장(’06~’07) 2년 연속 우수함 수상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계획과장(’06) 해군 군사력건설 사업 최대 획득
국방부 획득정책관실 해상상륙전력총괄담당(’00~’05) 이지스구축함, 독도함 등 계획업무
-상 훈 : 보국훈장 천수장, 대통령 표창 등 23건
-주요저서(공저) : 미래 해군력 건설(‘12), 잠수함 교육훈련 및 운용서(’13), 논문
“북극해 환경변화로 인한 한국의 해양안보정책연구” 등 다수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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