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집권당과 내각

[최창렬 칼럼]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오만이 불행의 씨앗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재판은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 권력의 유착 및 권력을 사유화한 위임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줬던 국정문란의 사법적 차원의 결론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박근혜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또 다시 마주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의 일탈과 헌법 가치의 훼손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기인한다는 인식은 보편적이 됐지만 대통령제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혐의는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들은 우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정치는 왜 존재하며, 무엇이 선출된 국정 최고책임자의 역할인지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주권과 헌법이 갖는 의미 또한 알지 못했다. 이명박에게 국가는 자신의 사적·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도구였고, 국가 통치를 일인의 오너가 좌지우지하는 대기업 경영으로 착각했다. 박근혜는 만기친람이 가능했던 개발독재 시절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등의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의 구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권력기구 내에서의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는 단지 이명박·박근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록 군 출신이고 1979년 12.12 쿠데타에 가담했지만 대선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됐고, 내란 및 불법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단죄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들의 아들이 구속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망명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암살됐다.
한국 대통령들의 비극적 결말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으나 결국은 뇌물·비자금·권한남용 등이다. 한국의 부패는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의 무게 때문에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자본과 권력의 불의한 카르텔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강구되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경제 및 사회적 구조에서 이러한 불행의 씨앗을 발본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의 권력구조는 4년 연임 대통령제다. 4년 연임제가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천작이 필요하다. 감사원의 독립기구화도 마찬가지다. 감사원장의 인사권을 여전히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면 감사원의 독립기구화만으로는 미흡하다. 대통령에게서 '국가 원수'직을 삭제한다는 조항도 상징적인 의미는 있으나 대통령 권력 견제에 실질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대통령 법률안 제출권을 제한한다는 취지에서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를 받는다는 조항도 실질적으로 대통령 권한 분산과 거리가 있다. 여당 의원 10명의 서명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견제장치가 되겠는가. 이러한 노력들이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상징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작지는 않지만 보다 정교하고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를 헌법과 법률에 담아야 한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확립했다고 하지만 내용에서 민주적이지 않은 권력구조는 개발독재의 잔재와 맞물리면서 대통령의 권력을 비대화했다. 집권세력 내에서의 견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떠한 제도도 무위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의 일탈을 최초로 감지하는 곳은 집권 세력 측의 핵심들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경호처가 영포빌딩 지하창고에 파견될 수 있었던 것은 권력 내부의 견제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내각과 집권당이 청와대의 부속기관으로 기능하는 한 어떠한 권력구조 하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될 수 있다.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박근혜 정권 때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청와대와 내각과 집권당 등의 권력관계에서 청와대의 일방적 독주를 경계하는 지적이었고,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박근혜는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맞았다.
민주화 이전과 이후에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문재인 정권의 권력운용방식도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정 헌법 설명, 검경의 수사권 조정, 외교적 쟁점 등에서 청와대 수석 비서관과 참모들이 전면에 나서는 방식이 청와대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내각과 민주당의 보폭을 협소하게 만들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집권 세력 내부의 견제가 작동될 때 권력분산이 가능하다.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존재가 정권에 대한 견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여권으로서는 지지율이 올라서 좋고,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데서 쾌재를 부를 수 있지만 권력이 오만해질 수 있다. 이럴수록 집권세력내의 견제가 작동해야 한다. 청와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내각과 집권당,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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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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