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재일 교포 간첩 사건' 조작에 관여한 보안사령부 수사관 출신 고병천 씨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관련기사 : "고문 안 했다" 간첩 조작 수사관, 뻔뻔함 언제까지?)
고 씨는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01호에서 열린 위증죄 재판에 출석해 과거 보안사에서 자신으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하고 간첩으로 몰린 피해자에게 사과 의향을 밝혔다.
고 씨는 과거 보안사에서 근무하며 재일 교포 유학생인 이종수 씨, 윤정헌 씨를 각각 1982년, 1984년 불법 연행한 뒤 구타, 물 고문, '엘리베이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간첩"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지난 2010년 열린 윤 씨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윤정헌에게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허위 진술했다. 이에 위증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기소당했다.
고 씨의 변호인은 이날 "검찰 측에 인정하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재판장이 "자백하는 취지냐"고 묻자 변호인은 거듭 "그렇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 출석을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윤 씨는 법정에서 "피고인은 제 재심 과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서 모든 것을 '안했다', '몰랐다' 그런 식으로 계속 거짓말을 했다"며 "제가 일본에서 갔던 피해자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들으니 이 사람한테 당한 피해자가 여러 명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한 번도 저한테, 그리고 저 이외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 저는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안사에서 당한 피해자가 수백 명은 될 텐데, 이런 재판을 받는 것은 이 사람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유죄가 되더라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고 했다.
고 씨 측은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려 했다. 검찰 측은 그러나 양형 관련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재판기일을 한 번 더 연장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법정에서 '공식 사과'하지는 못했지만, 고 씨는 재판이 끝난 뒤 법정 밖에서 윤 씨에게 직접 "오늘 사과하려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도 "오늘 공식적으로 사과를 말씀드리려고 했다"며 "다음에 더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윤 씨는 "당연히 나올 것"이라고 했다.
고 씨에 대한 결심공판은 다음 달 2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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