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뒤에 숨은 '정봉주 해명'에 빠진 것들

전문가 "검사에게 할 얘기…2차 피해 우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2011년의 대학생 성추행 보도를 전면 부인하며 낸 입장문의 요지는 '12월 23일부터, 수감되는 날까지 성추행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문 내용을 보면, 정 전 의원은 2011년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자신의 행적에 대해 입장문에서 아래와 같은 취지로 기술했다.

2011년 12월 22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다. 22일 밤부터 23일 새벽까지 '나는 꼼수다' 녹음을 하고 멤버들과 식사를 했다. 23일 오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을 방문했고 변호사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같은날 오후 민변에서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으로 바로 이동해 어머니를 뵈었다. 23일 밤늦게 수감 일자가 26일로 확정된 것을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이후 주로 '나꼼수' 멤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사진가 최모 씨가 수시로 동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23~26일 중의 어느 날) 오후 카페에서 멤버들과 차를 마시다가 명진스님을 만났고, 같은날 저녁(추정) '나꼼수' 멤버들과 고깃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정 전 의원은 이같이 재구성한 자신의 당시 행적과 함께 "언제 강제구인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혼자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여유가 없었고,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부인의 근거로 들었다.

정 전 의원의 주장은 성추행 범행이 저질러졌다고 지목된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일종의 '알리바이(부재 증명)' 제시다. 불확실한 기억과, 남아 있는 단편적 기록들을 근거로 사실관계 공방을 벌여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해명은, 먼저 그 자신이 앞서 다른 언론사에 한 인터뷰 내용과도 상충된다. 정 전 의원은 지난 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편의 완벽한 소설"이라고 보도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당시 A씨를 만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만난 것이 맞다'와 '만날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은 모순이다. 이는 정 전 의원이 보도자료에서 기억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당시 행적을 날짜 단위로 재구성해 정리한 것 역시 7일자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점과 배치된다.

특히 그의 '해명'에는 알리바이 제시만 있을 뿐, 사건의 기본 사실관계라 할 수 있는 자신과 A씨의 관계에 대한 서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기술한 정 전 의원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단 한마디도 없다는 뜻이다. 특정 사건 관련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글의 전범인 법원 판결문은, 판결과 관계된 주요 인물이 누구이고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보통 시작된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입장문에는 "A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 "A씨를 만날 시간 자체가 없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A씨가 자신과 서로 알고 지낸 사람이 맞는지, 언제 어떤 경위로 처음 만나게 됐는지,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돼 있지 않다.

알리바이만을 내세우며 부인하고 있지만, 그가 재구성해낸 자신의 행적이 완전한 것도 아니다. 23일 을지병원에서 어머니 병문안을 마친 후 '기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어디에 있었는지, 명진스님과 만난 날은 언제인지 등은 정 전 의원이 내놓은 입장문만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정 전 의원은 질의응답을 포함한 기자회견을 연 게 아니라 서면으로 입장문만을 일방 배포한 상태이기에, 본인에게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예컨대 2011년 당시 정 전 의원은 12월 23일 오후 3시께 트위터에 "명진스님이 주신 108염주와 영치금입니다"라며 사진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재구성한 일정대로라면,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하계동으로 이동한 그가 이날 오후 3시 이전에 명진스님을 만나고 '나꼼수' 멤버들과 고깃집으로 식사를 하러 갈 수 없다. 명진스님 측에 따르면, 당시 명진스님과 정 전 의원의 만남은 23일 오후 2~4시경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이뤄졌다.

게다가 정 전 의원이 제시한 '알리바이'를 일일이 입증하거나 반박하는 일은, 가능성도 낮을 뿐더러 피해자에게 재차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 사건, 특히 오래 전에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정확한 일시나 장소에 대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거나 엇갈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설사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정 전 의원과 같은 해명 방식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안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최지나 연세대 성평등상담소 전문상담원은 "자신을 가해자로 지목한 '미투' 운동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 '법적으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구성되는가' 여부를 밝히는 것이라면 부적절하다"며 "그런 얘기는 검사에게 하면 된다. 피해자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최 상담원은 나아가 "적어도 누군가를 대표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과거에 대해 지목받았을 때 '내가 어떤 태도를 보였길래 이런 고발이 나왔을까'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먼저여야 한다"며 "'나는 무죄다'라는 주장만 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과 함께 '나꼼수' 멤버였던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는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6년 3개월여 전 상황에 대해 시간대별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대법원 징역형이 확정되고 구치소 수감 때까지, 서울의 한 녹음실과 남산 부근 복합공간에서 녹음 및 향후 '나꼼수'의 진로 등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눈 일은 확실하게 떠오르지만 관련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기억을 복원할 수는 없다"며 "사안이 위중해 법적 근거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데다 '약자의 외침'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담보한 '미투' 운동에 미칠 유무형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확하게 당시 상황을 조합하지 않는 게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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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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