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수배합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노동부, 대통령 보고에 '비정규직 제로'를 뺀 건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렸으나, 산을 뚫고 나온 것은 고작 쥐 한 마리뿐이었구나! 하긴 옛 사람들의 지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본래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법이고, 짐을 가득 실은 놈보다 오히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집권 반 년 만에 사라진 약속 '비정규직 제로'

촛불의 힘으로 적폐 정권을 끌어내렸다. 새 정권이 들어섰고 해가 바뀌었다. 으레 그렇듯이 1월에 고용노동부는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를 진행한다. <인사이드 경제>는 업무보고에 사용된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계획'이라는 자료를 구해볼 수 있었다.

우선 적잖이 놀란 것부터 얘기해 보겠다. 생각보다 내용이 짧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업무보고에 비해 분량이 20~30% 줄었다. 하긴 뭐 내용 많다고 좋은 건 아니긴 하다. 알찬 내용만 추려서 짧게 담았다면 칭찬할 일이지 질책할 문제는 아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업무계획을 더 간략하게 요약해 놓아서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놀란 내용은 비정규직 파트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던 정책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였다. 그런데 보고자료 어디에서도 ‘제로’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저렇게 중요한 단어를 빼먹다니, 실수라면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다.


위 그림은 프리젠테이션에서 비정규직 관련 정책을 요약한 대목이다. 제목이 비정규직 제로가 아니라 ‘비정규직 규모 감축 및 차별해소’로 되어 있지 않은가. 아니, 저 제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즐겨 쓰던 표현인데? 이쯤 되면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미리 밝혀둔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가 임기 내에 실현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서 임기가 끝날 무렵에 실제 정규직 전환율이 100%가 안 되었다는 점만을 문제 삼아 따질 생각도 없다.

<인사이드 경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거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지향과 정신. 이것만 분명하게 실현한다면,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를 절반으로만 줄여도 박수를 쳐줄 생각이다. ‘제로’를 향한 지향이 뿌리를 박는다면 임기가 끝나도 그 지향이 유지될 것이며, 공공부문의 성과는 머지않아 민간부문으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실화냐 : 교육기관 정규직 전환율 고작 2%

그럼 이제부터 그 지향이 실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에겐 2가지의 데이터가 있다. 우선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 중앙행정기관·지자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교육기관 별로 비정규직 규모 등에 대한 특별실태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는 기간제·단시간, 그리고 용역·파견을 합해 42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다음으로, 작년 연말 기준으로 각 기관별 정규직 전환 규모가 있다. 이 자료 역시 고용노동부를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이 2개의 데이터를 토대로 <인사이드 경제>는 아래와 같은 표를 그릴 수 있었다. 정부는 2017년 전환 목표를 7만4000명으로 잡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 일단은 넘어가자. 그런데 연말에 확인한 결과 실제 전환이 결정된 인원은 7만 명에 좀 못 미쳤다. 그래, 이 정도 오차도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구분

전환 대상

‘17년 전환 목표

전환결정 인원

전환율

총 계

420,872

74,114

69,251

16.45%

중앙행정기관

36,705

11,835

14,278

38.90%

지방자치단체

83,986

11,026

9,420

11.22%

공공기관

156,554

37,736

40,627

25.95%

지방공기업

18,204

2,918

2,216

12.17%

교육기관

125,423

10,599

2,710

2.16%


전체 수치는 그렇다 치고 세부적으로 데이터를 살펴보자. 그런데 헉, 이거 정말 실화냐? 중앙행정기관·지자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은 전환율이 모두 두 자릿수인데, 교육기관만 한 자릿수. 그것도 고작 2%대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미래 세대를 책임지고 나갈 아이들이 자라나는 공간에서, ‘비정규직 제로’가 아니라 ‘정규직화 제로’가 이뤄지고 있다니?

기간제·단시간 노동자와 파견·용역 노동자로 구분해서 나타내보면 또 놀랄 만한 수치를 발견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기존 정부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포함시킨 점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간접고용에 상시·지속 업무가 많기에 정규직 전환율이 오히려 높을 것이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구분

기간제·단시간 노동자

파견·용역 노동자

전환 대상

전환결정 인원 (전환율)

전환 대상

전환결정 인원 (전환율)

총계

245,829

40,057 (16.29%)

175,043

29,194 (16.68%)

중앙행정기관

20,626

10,762 (52.18%)

16,079

3,516 (21.87%)

지방자치단체

70,561

8,817 (12.50%)

13,425

603 (4.49%)

공공기관

47,271

16,077 (34.01%)

109,283

24,550 (22.46%)

지방공기업

11,223

1,981 (17.65%)

6,981

235 (3.37%)

교육기관

96,148

2,420 (2.52%)

29,275

290 (0.99%)


전체 통계만 보면 기간제·단시간 전환율에 비해 파견·용역의 전환율이 살짝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간접고용 부문의 전환율을 선도한 공공기관(24,550명, 22.46%)에는 원청이 직접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를 신설해 고용하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 규모 역시 상당해서 인천공항 6000~7000명을 비롯해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회사 방식은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방식을 뺀다면 실제 전환율은 10% 가량으로 확 떨어진다. 게다가 교육기관을 한 번 보자. 간접고용 부문의 정규직 전환율은 겨우 0.99%. 용역·파견 노동자 100명 중 정규직 전환자가 채 1명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다른 기관들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거나 근접한 반면, 교육기관은 애초 목표치(10,599명)와 비교해봐도 한참 미달하는 결과(2,710명)이다. 도대체 초·중·고교, 그리고 대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수단·방법 따지지 말고 제외 사유를 찾아라!

물론 위의 자료는 모두 작년 연말까지의 통계수치이다. 올해에도 정규직 전환은 이어지고 있다. 교육기관의 경우 2월 5일 현재, 전국의 17개 교육청 중 8개 교육청(서울, 부산, 인천, 대전, 경기, 울산, 대구, 경북)에서 정규직 전환 관련 심의가 완료된 상태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의 저조한 성적표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본래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제외사유를 몇 가지 나열하고 있다. 우선 가이드라인에서 교사·강사 직종을 통째로 제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었는데 이것이 불행의 씨앗 역할을 했다. 교육청들은 기간제 교사와 영어회화전문강사·스포츠강사 등을 모조리 제외하고 있다.

다만 정부 가이드라인은 제외되는 대상이 넓어지지 않도록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각 교육청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정규직 전환 제외사유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외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상당수 교육청들은 운동부지도자, 도서관연장실무원 등을 제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들 업종에 대해 어떤 교육청에선 정규직 전환이 된 사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즉, 제외사유를 교육청들이 완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기관과 지자체가 각각 재정을 분담하여 진행되는 이른바 매칭 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제외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업무의 성격을 분명히 파악해 상시지속 업무일 경우 최대한 전환하라고 하는데 말이다.

‘묻지 마’ 전환제외 사례도 많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초단시간 노동자도 예외 없이 정규직 전환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으나, 돌봄전담사·방과후코디·통학차량 등 상시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초단시간 노동자 대부분을 전환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도대체 이들을 왜 전환에서 제외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조차 듣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을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사례도 있다. 교육부는 각 교육청에서 스포츠강사 직군에 대해 학교회계직원에 준하는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울산교육청은 교육부의 처우 개선안이 권고일 뿐이라며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교육기관의 정규직 전환율은 여전히 밑바닥을 기고 있다. 인천교육청은 전환대상 4525명 중 고작 21명(0.5%)만을, 대전교육청은 2353명 중 13명(0.6%)을, 서울교육청은 1만1840명 중 235명(2%)만을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정규직 전환 심의가 끝난 8개 교육청 전체를 보면 전환대상 5만4742명 중 4552명만이 전환되어 전환율은 8.3% 수준에 불과하다.

작년 연말에 나온 2%에 비해서는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2%라는 수치 발표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혀져서 교육부·고용노동부 등과 긴급 대책회의가 이뤄지는 등 한 차례 푸닥거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8.3% 전환율은 기대치·목표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임에 틀림없다. 이러니 고용노동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비정규직 제로’란 단어를 빼버린 게 아닐까?

▲ 오체투지하는 해고대상 비정규직. ⓒ교육공무직본부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해고 앞에 선 노동자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된 노동자들, 그러면 그들은 현재 조건이라도 유지하며 비정규직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 업무일 경우 몇 가지 예외만 제외하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전환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역으로 상시·지속 업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경쟁적으로 전환 제외사유를 만들어낸 교육청들은, 이번에는 제외된 업무가 상시·지속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 수년간 별 문제없이 일해왔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업무인데, 갑자기 ‘한시적 사업’이라며 사업종료 결정이 내려진다. 정규직 전환 안 하려고 고의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며 해고 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전환대상으로 판단한 도서관연장실무사에 대해 경남·충남·강원 교육청이 자의적 판단으로 전환제외 입장과 함께 사업종료 및 해고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교육청은 이미 방과후학교실무사 사업종료 선언을 하고 방과후코디 전원(약250명)에게 해고공문을 발송했다. 대구교육청도 초단시간 사서 전환제외 결정 후 사업종료 해고(130명) 입장이며, 전북교육청 방과후행정사 169명도 해고 위협 앞에 놓여 있다.

영어회화전문강사, 초등스포츠강사, 유치원시간제기간제교원 등은 학년말을 맞아 신규채용 절차와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적극적 고용안정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엉뚱하게 해고 대란 앞에 놓인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그 지향과 정신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엄동설한에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선택한 이유

“상시·지속 업무라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약속을 지켜야죠.”
“정부 지침과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도록 행정력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면 고용안정 대책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 아닙니까!”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 1월 24일부터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벌써 2주가 되었다. 가히 기후 변화의 징후라 할 정도로 혹한기였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까? 마땅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오히려 해고 위기 앞에 서게 된 이 기막힌 상황 앞에서 말이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문재인 정부가 애초 약속과 지향, 정신을 지키면 해결되는 일이다.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늦긴 했지만 가능한 수단은 여러 개가 있다. 위의 내용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맨 마지막 부분인데, 가이드라인 발표 후 어떤 후속조치를 행할 것인가를 규정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지도·감독과 컨설팅 지원을 병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에 직접 근로감독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 전까지는 “에이, 공무원들끼리 왜 이래~” 이러면서 쉬쉬하며 봐줬지만, 이제는 교육부를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에 직접 근로감독을 하며 가이드라인 이행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수단을 왜 발동하지 않는가?

아울러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단’을 만들기로 했는데, 가이드라인 발표 10일 뒤인 7월 말에 추진단이 출범했다. 공공노사정책관을 단장으로 하여 고용노동부·기재부·행안부·교육부 4~6급 공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재부는 정규직 전환에 소요되는 예산 문제를 다뤄야 하고, 행안부는 중앙행정기관 및 공공부문 전반에 대한 업무를 맡기 때문에 ‘추진단’에 함께 한다.

그런데 앗, 교육부 공무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왜 그런 것일까? 그건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교육부에 대한 밀착 관리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추진단’에서 교육기관 정규직 전환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며 밀고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려고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이는 구실을 찾는다."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교육청들이 수많은 구실을 찾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청와대 앞 노숙농성이라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구실이나 핑계거리들, 청와대 앞의 노동자들은 이미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다. 이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제시한 청와대가 방법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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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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