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해고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뭘 배우나

[기고] 교육공무직본부 노숙농성, 서리 내린 잠자리와 오체투지

지난 1월 23일 최강 한파가 몰아닥치며 전국이 얼어붙었다. 태양도 곤두박질치는 맹추위를 어쩌지 못했다. 체감 온도가 아닌 실제 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날씨, 뼈조차 시린 겨울은 모든 의욕을 꺾었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중노동이 낫지 청와대 앞 길바닥에 앉아 칼바람을 버티고 비닐로 움막을 짓고 자야 하는 노숙농성이라니. 우리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로 만들겠다더니 교육부는 대체 뭐한데요?"
"학교장들은 자기들 돈 내라는 것도 아닌데, 왜 해고 못시켜 안달이죠?"
"그러니 갑질이죠. 학교장 맘에 안 든다고 너는 해고시킬 거라고 한답니다"
"무기계약직 전환은 겨우 2~10%, 나머지는 해고될 판입니다. 학교는 정말 심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당장 해고만은 막아야 할 텐데... 어쩌죠?"

일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며칠 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결정했다. 노숙농성만으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순 없지만 정규직 전환 배제기구로 전락한 교육청의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으며, 최소한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라도 시급히 막아보자는 절박함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이 생색만 내고 말만 앞세웠다는 우려, 혹은 교육청 등 적폐 보수 관료들의 저항과 무성의를 상징하는 사안이 바로 학교 현장의 정규직 전환 심의다. 실제로 지난 22일 인천교육청은 정규직 전환 심의 대상자 4500여 명 가운데 고작 21명(0.5%)만 전환하기로 했다. 경기교육청은 전환 부담이 덜한 초단시간 돌봄전담자 외 대부분의 비정규직을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으며, 심지어 방과 후 업무지원(방과 후 코디) 인력 전원을 해고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다른 교육청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나를 만난 청와대의 한 인사는 "교육 관료들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선 문재인 정부의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 전환' 원칙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정말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 정규직화를 위해 설치한 각 교육청별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는 사실상 <정규직 전환 배제위원회>, <비정규직 해고추진위원회>가 돼버렸다.

▲ 노숙농성장 ⓒ교육공무직본부

학교장 맘대로 툭하면 해고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뭘 배울까?

그렇다고 대규모 투쟁에 나서기도 어렵다. 지금 민주노총은 물론 산별노조, 그리고 교육공무직본부같은 산하 조직까지 모두가 새로운 집행부를 꾸리고 내부 정비를 해가는 어수선한 시기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라면 조합원에 대한 해고 위협은 숫자가 적더라도 대충 항의하고 넘길 사안이 아니다. 올해에도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모 영어전문강사 조합원이 말했다. 그들의 겨울엔 늘 해고한파가 몰아친다고... "해고도 해고지만 더는 못하겠어요. 맘 졸이다 병도 얻고, 매번 똑같은 평가 시험에 자존감마저 무너지는 스스로가 비참해서 못 견디겠어요"하는 그들의 유일한 버팀목이 노동조합이다. 그 조합원은 농성장에 올 마음에 일부러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 마음을 안다면 살인적인 한파건 뭐건 가릴 상황이 아니며, 집행부만이라도 노숙농성을 해서 문제를 널리 알리고 투쟁의 각오를 모아야 했다.

△졸속심의 중단과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심의 △전환 제외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해고 중단 및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한지 닷새째, 청와대를 휘도는 냉기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움직이기 어렵도록 옷을 껴입어도 이 순간, 이곳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래선 투쟁의 각오를 다지는지, 투쟁의 의지를 얼려버린 작정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춥다는 말만으론 부족한 피부의 통증을 쌓다보면 차곡차곡 원망도 쌓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개뿔, 해고되는 학교비정규직 맘 같아선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무기계약직 전환 제외도 서글픈데, 해고하는 이유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학교장 권한으로 결정되는 해고가 특히 그렇다. 학교는 민주주의와 인권, 양심을 가르치는 참교육 현장이 아니며, 교장 중심의 심각한 가부장 서열사회였다. 순종적이지 않다고, 더 젊은 여성으로 바꾸겠다고, 이참에 그냥 물갈이 하겠다는 등 얼토당토 않는 이유, 한 마디로 학교장 욕심에 차지 않으면 비정규직은 해고다. 툭하면 해고되는 현실을 보며 학생들을 과연 무엇을 배울까?

▲ 오체투지하는 해고대상 비정규직. ⓒ교육공무직본부

한시적 사업? 사업종료? ...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교육당국

물론 교육당국은 한시적 사업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둥 해고가 불가피해보이는 이유를 앞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도 이미 과거에도 들이밀던 핑계인데, 당시에도 사업은 지속됐고 멀쩡한 노동자만 해고됐다. 따라서 사업종료라는 해고 이유는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며, 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타당성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다양해진 학교 비정규직은 정부 교육정책의 필요로 만들어진 일자리로서, 그들의 고용안정은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필요할 땐 급히 불러 쓰더니 이제와선 내다버릴 궁리를 한다. 이런 한국 정부와 달리 스웨덴의 이바 요한슨 고용통합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자리 자체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노동자는 지킬 것이다", 이 대목에선 진보교육감이든 촛불 정부든 아직 멀었다 싶다.

노숙농성 사흘째인 지난 26일, 한파의 맹위가 여전한 가운데 해고대상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오체투지에 나섰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청와대 앞 농성장까지 2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지만, 한강마저 단번에 얼려버린 추위에 제정신이냐는 말을 들을 만도 했다. 상복처럼 흰옷으로 얼기설기 복장을 갖추고 얼음보다 찬 아스팔트에 전신을 붙였다 일어서며 천천히 걸었다. 그들 노동자들은 때론 냉혹한 현실에 지쳐 쓰러지는 듯했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절로 호소하는 듯도 했다. 그렇게 벌레처럼 길바닥에 엎드린 처지에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사람을 쓰다버릴 소모품 취급하는 놈의 멱살을 잡아 쥘 아귀힘이 솟기도 하는 오체투지. 그리고 여전히 굴뚝과 전국 이곳저곳 비닐천막 농성들 .... 노동자에게 겨울은 왜 아직도 이리 절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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