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일차의료 강화'인가?

[서리풀 논평] 허약한 '일차의료의 정치'

보건과 의료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새해 벽두 관심을 기울이는 한 가지 주제가 '일차의료'다. 국회에서 양승조 의원이 '일차의료발전특별법'을 제안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관련 기사 : '일차의료특별법' 지지 잇따라…"한국 보건의료 역사 바꿀 중요한 계기"). 대한의사협회, 가정의학회, 일차보건의료학회, 지역사회간호학회 등이 이 법안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고 하니, 그동안 잘 볼 수 없던 풍경이 아닌가 싶다.

먼저 우리 의견부터. 우리는 원칙적으로 일차의료를 키우고 강화하는 모든 시도와 노력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법률, 시범사업, 행정조치, 예산, 건강보험 개편, 그 무엇이라도 좋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주장과 요구, 연구, 성명서도 마찬가지다. 일차의료가 사회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법'이라니, 이번에는 일차의료가 주목을 받고 뭔가 변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이번에도(!) 사태를 낙관할 수 없다고 본다. 냉소나 회의 때문이 아니라 과학과 합리성에 기초한 객관적 전망이다. 4년 전 <서리풀 논평>에서 지적한 상황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바로 가기 : "동네 의원이 '빅5'를 대신할 수 있을까(1)", <프레시안> 동네 의원 vs. 서울대병원, 어디가 더 중요한가?, <라포르시안> 쇠락하는 일차의료…만일 동네의원이 사라진다면?, 참고로, 이 논평은 '2부작'이니 연결해서 읽어야 완성된다).

이 법안이 입법에 실패하거나 변질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본래 뜻대로 법안이 통과해도 바뀌고 나아지는 것은 그저 시작일 뿐, 많은 과제가 그대로 남을 것이 틀림없다. 작은 발걸음은 그것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나, 비현실적 기대 지나친 희망은 오히려 해롭다.

전망을 밝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재를 규정하는 허약한 '일차의료의 정치' 때문이다. 정치가 약하다니? 유력 국회의원이 그것도 보건복지위원장이 직접 입법에 나섰는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국회와 이 법안만 보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치가 작동한다고 할 수도 있다.

유무가 아니라 어떤 정치인지가 문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차의료의 정치는 입법과 국회를 넘어 일반 대중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일반 과제에 이른다. 둘은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고 또한 연속적이다. 국회와 입법이라는 현실 정치는 좀 더 너른 정치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실현한다.

어떤 정치가 얼마나 강한가? 정치는 '가치'를 둘러싼 경쟁과 각축을 다룬다고 할 때,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에서 일차의료는 그런 가치가 될 만한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일차의료가 전혀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일차의료를 둘러싼 직접적인 이해관계만 봐도 금방 드러난다.

정치에(또한 정책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 대부분에게 '일차의료 강화'는 그리 절실하지 않다. 아쉽거나 절실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일부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 무엇 때문에 그런다는 것도 아예 모른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그나마 말이라도 알만한 처지지만, 대부분이 무심하다.

대학병원과 병원? 그 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의사와 의료 전문직들? 무심함이 대부분이지만 잘 알더라도 일차의료의 정치는 순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상황이 같이 변하지 않는 한, 일차의료 강화는 오히려 그들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대안이 될 공산이 크다. 이때 일차의료라는 의제는 억압되거나 배제된다.

동네 의원은 병원과 완전히 다르지만, 현재가 결정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으면 이들에게도 일차의료 강화의 동력은 약하다. 동네 의원의 상황이 나빠져 무언가 변화가 절실해도 여럿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다. '강화론'이 말하는 그 일차의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일차의료의 정치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같은 '특수' '단과' 의원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같은 곳이 같을 수 없다.

정치인은 어떤가? 정치인에게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이해관계지만, 현실의 정치적 이익은 그런 가치 실현의 동기를 압도한다. 건강, 보건, 의료 과제는 더 어려워, 한국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건강 정치의 현실적 이익은 거의 없다. 특별법을 발의한 양승조 위원장만 보더라도 셈법은 간단하다. 법안을 성공적으로 입법한다고 해서 국회의원 재선이나 자신의 정치적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될까? 장애물이 나타날 때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할 동기가 있을까?

행정부와 공무원도 정치적 이해를 따져봐야 한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효율적인 '통치'에 달려있다고 할 때, 모든 개혁과 변혁은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쉽다. 통치를 위협할 만한 문제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변화는 곧 위험이고 손실이 아닌가. '보건의료체계'와 '의료전달체계', '일차의료 강화'는 지식과 규범의 수준에 머무르고, 실제 행동으로 바뀌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자가 남았으니, 바로 대중, 시민, 인민이다. 이들에게 일차의료는 무엇일까? 장담하건대, 무엇이 문제인지는커녕 대부분 용어도 잘 모를 것이다. 건강과 보건의료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생활과 문제는 정의되지 않고, 따라서 프레임으로서의 '약한 일차의료'라는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날 것인 경험과 그에 기초한 지식은 일차의료 강화에 적대적일 가능성마저 있다. 첨단 의료와 명의, 대학병원을 찾아야 하는 마당에 '일차'와 '동네'에 묶어둔다면 누가 좋다고 할 것인가? 이 상태로는 일차의료를 지지하는 어떤 정치적 행위도 일어나기 힘들다.

이상의 셈을 합하면 일차의료를 밀고 갈만한 이해관계의 방향은 명백하게 마이너스(-)다. 영향을 미치거나 의견을 가질 만한 그 누구에게도 변화는 절실하지 않고 현상 유지가 더 편하다. 일부에게는 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은 아주 작고 추상적이며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로서 이해관계의 정치가 힘을 발휘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장황할 정도로 이해관계의 정치를 말했지만, 모든 정치를 비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정치는 이해관계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그 결과물로서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실재'하는 한, 대안의 정치에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 언제 어떻게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인구 노령화, 비용, 의료에 대한 불만 그 무엇이라도 일차의료가 가장 유력한 대안임은 틀림없다.

문제와 대안이 정치적 기회로 만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지식'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이 지식은 의학이나 보건, 질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질서, 사회제도의 합당한 배치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리킨다(셸던 월린.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후마니타스 펴냄, 142쪽).

보통의 용법으로는 지식이라기보다 '될법한' 미래나 상상에 가깝다. 특히 그것은 전문가나 체계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관점에 기초한 것이다. 다음은 앞에서 언급한 <서리풀 논평>의 일부다.

"형식이 된 제도와 체계와 정책을 중심에 놓으면, 본질은 놓치고 관료적 목표만 남기 쉽다. 또한 의사와 병원, 의료인과 전문가끼리 뜻을 모아봐야 한계를 넘지 못한다. () 평범한 시민과 환자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에, 일차의료의 가치와 방법을 새롭게 가다듬는 것이 급하다."

둘째, 능동적 정치에는 기획과 기획자가 필요하다. 기획자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대안을 드러내는 데 헌신하는 행위자(집단, 세력)이다. 이들은 "중요한 정치/정책 참여자가 문제와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할 뿐 아니라, 문제와 대안을 결합하고 이를 정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Agendas, Alternatives, and Public Policies>, p. 20). ☞바로 가기).

이 두 가지 조건은 아직 '필요하다'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다. 누가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주체가 될 것인가? 정해진 답은 없다. 시민사회, 활동가, 연구자, 전문가, 이해당사자, 또는 그 '연합', 가능성은 다 열려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경로를 개척해야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 가시물인 바로 그 '법안'이 실천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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