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고교생의 죽음, 이름조차 부를 수 없다면…

[안종주의 안전사회] 문송면의 비극은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나

한 청소년이 숨졌다. 그는 학생이자 노동자였다. 제주의 한 음료제조공장에서 실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노동현장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수많은 산재 희생자 가운데 하나로만 여길 때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 분노만 있을 뿐이다.

지난 9일 제주용암수를 만드는 제이크리에이션 음료회사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올해 열여덟의 고3 학생 이아무개 군이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어 중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열흘 만에 목숨을 잃었다. 이 학생은 지난 7월 현장실습을 나갔다. 어린 학생은 매일 12시간 넘게 일했다.

우리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빈소를 찾았다. 각계각층에서 애도를 하고 있다. 지난 23일은 이 군의 생일이었다.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제주시청에서 추모촛불 문화제를 가졌다. '가장 슬픈 생일'이었다.

제주교육감은 뒤늦게 나서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도 울려 퍼지고 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입법 청원 운동도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 실습 고교생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하던 고3 학생이 '욕받이 부서'(해지방어부서)에 배치돼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저수지에 에 뛰어들어 자살한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스무 살의 용역업체 직원 김아무개(20) 씨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와 청년들의 열악한 직업 환경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년 반 만에 다시 맞이한 이 군의 죽음은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 고교생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우리 사회의 안일함과 비정함을 드러냈다.

사고 뒤 노동부는 회사에 대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고 원인에 대해 뒷북 조사를 벌였다. 이 회사의 노동자 안전관리는 엉망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교육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군은 전혀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 밤 10시~새벽 6시까지의 야간노동과 휴일노동은 노동부 장관(지역노동관서)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돼있는데도 무시됐다. 노동부는 이를 전혀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이 군의 죽음에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산업보건과 안전 교육을 완전 무시하는 일은 그동안 노동현장에서 단골메뉴였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노동자들도 산업보건 교육을 수십 년 동안 단 일초도 받지 않았다. 삼성백혈병 대량 생산 공장이었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LG전자에서도 단 한 번의 교육도 받지 못한 젊은 여성·남성 노동자들이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유독물질에 노출돼 불임·생식독성에 시달렸다. 부산 제일화학에서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인체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돼 희생자가 됐다. 이런 일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계속돼왔다.

18살 제주 소년, 15살의 수은중독 사망 문송면 선배를 만나다

제주 이 군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게끔 만들었다. 그리하여 30년 전의 문송면 군을 만났다. 대한민국 산재 희생자의 상징 인물이다. 그는 1987년 12월 서울 영등포에 있는 온도계 제조회사 협성계공에서 일하다 두 달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하다 1988년 7월에 숨졌다.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충남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졸업식도 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 안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다 비극을 맞았다.

이 회사가 문 군을 포함한 노동자들에게 산업보건 교육을 하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긴 것은 불문가지다. 문송면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장례식 때에는 영등포로터리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노제를 올렸다.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가 주변에서 부러움을 산,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성노동자들은 쉼 없이 각종 발암물질과 유독화학물질을 들이마셔 백혈병, 뇌종양 등으로 2007년부터 스러져갔다. 벌써 100명 가까이 된다.

대기업이 이렇다고 한다면 안전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없는 중소기업의 노동 환경은 그보다 훨씬 더 열악할 것이 틀림없다. 정부가 두 눈 부릅뜨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지키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잇단 청소년들의 노동 산재 사망, 정부는 무얼 했는가?

하지만 구의역 김 군, 제주 이 군 등의 노동 현장 참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없이 벌어진 산재·직업병 참사에 대해서 겉으로만 애도하고 안타까워한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든다. 사건·사고가 나면 노동당국은 늘 그 원인을 찾아내어 처벌하기 위한 현장점검을 벌인다. 한데 왜 그런 점검을 평소에,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하지 않는 것인가.

이 군의 죽음을 가져온 회사에 대한 작업환경과 안전점검은 누가 언제 어떻게 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유가족을 대신해 묻고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고를 그의 부주의 탓으로 회사가 돌리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다. 회사는 물론이고 정부 또한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위험과 안전은 동전의 양면이다. 거대한 제도나 법 때문에 꼭 생과 사가 갈리는 것은 아니다. 노동 현장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악마는 아주 작은 곳에 숨어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고 죽이고를 결정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노동 현장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꼼꼼히 묻고 따져야 한다.

이 군의 죽음은 연간 6만 명에 달하는 실습 학생의 안전과 관련한 것인 동시에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노동 현장이 안전해야 노동자가 안전하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가정이 평온하다. 가정이 평온해야 사회에 평화가 넘친다. 청소년이 안전하고 건강해야 그 나라에 미래가 있다.

우리는 30년 전 어린 나이에 산재로 숨진 15살 소년의 이름을 당당히 부르고 있다. 문송면이라고. 이 군도 이름을 지운 채 성만 부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가족의 동의를 얻어 당당하게 그의 온전한 이름을 부르고 추모하며 역사 속에 살아 숨 쉬게 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안전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 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다음 번 글에서는 그를 온전한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이아무개 군이 아니라.

▲ 지난 19일 사망한 이 군의 빈소.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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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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