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유림이 촛불을 들었다고?

의무급식운동·촛불문화제 개최 등 변신 주목

생경하다.

유림(儒林)단체의 행보라 하기엔 느닷없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유림단체라면 보수라는 인식을 넘어 소위 ‘태극기부대’, ‘애국시민’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점에 비추면 말이다.

여기 촛불문화제를 열고 의무급식(전면무상급식) 운동을 벌이는 유림단체가 있다. 경북 영주시에서 활동하는 영주청년유도회(이하 영주청유)다.

황재선(50·변호사) 영주청유 회장과 회원들은 최근 영주시가 의무급식 주민공청회를 열고 관련 조례안을 제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청유 차원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의무급식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결국 영주시 의무급식 조례가 통과된 것이다.

▲ 보수색이 짙은 경북의 영주청년유도회가 파격적 행보로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황재선 영주청년유도회장.
영주시는 경북 도내에서 경산시, 문경시와 함께 의무급식이 시행되지 않는 지자체로 남아있었다.

의무급식 반대논리는 뻔했다.

“부자들에게 왜 공짜 밥을 주냐”는 것이었다.

포퓰리즘이자 좌파정책이라며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논리적으로 빈약했을지 몰라도 태도만은 완고한 반대자들이었다.

영주청유도 확고한 논리로 맞섰다. “급식도 교육이다”를 전면에 내세웠다.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가 없어야 하고, 공짜로 먹되 주눅 든 채로 먹지 않으려면 의무급식이 필수라고 맞섰다.

청유가 발행하는 회보에 의무급식 필요성을 담은 기사를 게재한 뒤 시청에 배부했다.

지역 9개 초등학교 운영위와 영양교사 등을 모아 시장과 간담회를 열고 시의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등 산고 끝에 결과를 이끌어냈다.

영주시 조례안 통과가 경산, 문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면 작은 성과가 아니다.

사실 영주청유의 변신은 의무급식 이전부터 감지됐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한창 불거지던 당시 전국의 셀 수 없이 많은 유림단체 중 유일하게 영주청유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국민을 속였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시국선언문은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016년 11월 14일 지역 작은 유림단체의 목소리가 그렇게 시작됐다.

촛불 1주년을 맞은 이달 4일 영주역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50여 명에 그쳤지만 유림단체가 주관한 행사라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영주 지역 다른 시민단체들은 영주청유와 함께하는 촛불문화제를 다시 기획 중이다.

하지만 지역 유림단체 원로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영주청유가 좌파적 사고에 젖어있다”는 비난은 애교에 가까웠다.

의도가 불순하다는 시선이 사방에서 압박했다. 원로들의 지원은 언감생심이고 비교적 젊은 회원들로 구성된 인근 안동청년유도회도 철저히 영주청유를 외면했다.

황재선 회장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먼저 촛불을 들어야 하는 게 유림”이라고 잘라 말했다. 선비정신의 요체는 비판정신과 바른말 하기라는 뜻이다.

황 회장은 “불행한 근대사와 왜곡된 충효론, 독재정권의 우민화정책 등으로 유림이 본질적 역할을 잃고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됐다”며 “유림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영주청유는 앞으로도 시민적 활동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2008년 제정된 영주시의 보행환경 조례를 들여다보고 약자들의 보행권을 확보하는 한편 대중교통체계도 점검할 생각이다.

또 지방자치와 분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황재선 회장은 “청년유도회가 주민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며 “정신적, 문화적 환경이 척박한 토양에서 청유의 역할을 통해 품격 있는 시민들이 많이 생겨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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