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위해 징병을 거부하고 난민이 됐다

[인터뷰]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20대 대한민국 남성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군대'다. 병역은 '국방의 의무'라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꽃 같은 청춘 2년을 고스란히 저당 잡히는 일이다. 지금도 3일에 한 번 꼴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니, 자칫 살아 돌아오는 게 힘들 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상명하복'의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 개인의 신념과 의지는 철저히 무시된다. 2년을 개인의 자유 의지와 양심에 어긋나는 삶을 견뎌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간다? 철저한 '신화'다. 1980년대 입영 대상자 중 현역 판정률은 절반이 안 됐다. 그런데 지금은 90% 정도가 현역 판정을 받는다. '60만 대군'의 머릿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징병제는 어쩔 수 없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에 맞서 인해전술을 편다는 게 말이 되나?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 서울지부 안악희 씨가 지적한 '징병제의 모순'이다. 이 모임은 병역거부자의 국외 난민 신청을 지원하는 등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개인들간의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되는 이 모임은 또 '군대'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안 씨는 '징병제'의 대안으로 '모병제'를 주장한다. 그는 "군대라는 조직은 축소되어야 하며, 군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 '제복 입은 시민'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병제'의 부작용과 문제도 있겠지만,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는 징병제가 갖는 폐해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안 씨는 시민모임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평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군필자를 1등 시민으로, 미필자인 성소수자와 장애인,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 따라서 JPD의 활동은 반(反) 차별 평등 운동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분쟁지역 소년병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안 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읽기도 전에 미리 '반대'부터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는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성역'이다. '성역'은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부패와 비리가 생긴다.

다음은 지난 10월 24일 있었던 안악희 씨와 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 10월 28일 일본 릿쿄대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 시민단체 '베헤이렌'의 도움으로 미군 항공모함 '인트레피트'에서 탈영한 병사 크레이그 앤더슨 씨의 강연이 열렸다.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 안악희 씨(군필자)를 비롯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강길모 씨(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박정경수 씨(병역거부자), 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 씨(병역거부자), 알바노조 전 위원장 박정훈 씨(병역거부자), 학생 활동가 박유호 씨(병역거부자)가 참여했다. ⓒ안악희

병역을 거부하고 난민이 되다

프레시안 : 징병제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병역 의무를 강제로 부여하는 제도로 대한민국 군대는 징병제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단체를 소개한다면?

안악희 : JPD는 2010~11년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학생들이 징병제에 의문을 가지면서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1960년대 일본의 '베헤이렌(ベ平連,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베헤이렌은 일본 요코스카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병사들의 망명을 도왔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군대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군대, 특히 징병제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한다'는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일 관계', '국가와 군'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2012~13년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 재집권 이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안보법제 제·개정을 추진하는 등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평화헌법 9조'가 없어지고 군대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생겼다. 일본의 자위권 문제는 동아시아 평화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예다 씨가 병역거부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JPD는 2014년 이 씨와 일본의 진보 주간지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아마미야 카린 씨와 함께 도쿄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일본의 역할 및 징병제 문제점 등을 알렸다. JPD는 이후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 무엇보다 징병제가 시행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이들을 돕고 있다.

2001년 말 한국 사회 최초로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 씨 이후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자를 후원하고 있지만, 이예다 씨 사례가 알려진 뒤로는 JPD에 한 달에 두세 건 정도 상담 요청이 온다. 이 씨에 앞서 2011년 성소수자로 캐나다에 망명한 김경환 씨를 비롯해 호주와 독일 등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은 총 7명이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가 지난 8월 병역거부자의 난민 신청을 기사화하면서 "병무청 관계자는 "군대 안 가려고 난민 신청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국적 문제는 법무부 소관 사항"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관 부처의 현실 인식이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닌가.

안악희 : 입영대상자 중 상당수가 여러 이유로 입영이 취소되거나 연기된다. 병역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지난해 12월 병무청 홈페이지에 2015년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병역의무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의 명단이 게시됐다. 이에 따르면, 237명 기피자 중 현역입영 기피가 166명(70.0%)으로 가장 많았고, △사회복무(공익)요원 소집 기피 42명(17.7%) △국외불법체류 25명(10.6%) △병역판정검사 기피 4명(1.7%) 순이었다.

이에 대해 병역 거부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종교단체 '여호와의증인'은 병역을 거부한 채 기소 상태로 수감생활을 기다리는 이들도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아직 수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제 판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명단에 올랐다는 말이다. 병역 기피자 중 이들을 제외한 30% 정도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행방불명 상태나 다름없다.

프레시안 : 국민의 의무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징병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안악희 : 한국 군대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수감생활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외출과 외박이 없다는 것 정도? 드라마를 본 주변 예비역들이 "군생활은 외출·외박이 있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라고 한다.(웃음)

입영 대상자들도 한국의 병역이 강제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10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막연하게나마 두려움을 갖고 있다. 비정상 아닌가?

병역거부자는 1년 6개월 정도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데, 평생을 전과자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생활을 한 사람은 군대보다 감옥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감생활을 한 사람은 감옥보다 군대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생활보다 수감생활이 훨씬 힘들다.

▲ 한국 병역거부자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예다 씨(왼쪽)와 베헤이렌 내부 반전미군 망명 지원 비밀조직 전담 활동가 다카하시 다케토모 씨(가운데), 그리고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 안악희 씨(오른쪽). ⓒ안악희

"'60만 대군'은 숫자에 불과
징병제 유지를 바라는 세력 있다"

프레시안 : 징병제 문제는 평등 문제와 맞불려 있다. 일반적으로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로 인해 병역거부자들을 사회적 불평등 조장 세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악희 : 근대적 의미의 징병제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이 유럽 전제군주들의 동맹군에게 밀리자, 국민공회가 18~25세의 모든 미혼 남성을 징집한 데서 시작됐다. 1794년 프랑스군 전체 병력은 26만 명에서 74만9000명으로 크게 증가했고, 병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혁명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는 '징병제 신화' 구축의 토대가 됐다.

(1973년 프랑스 서부 방데지방에서는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농민은 구체제(앙시앵레짐) 지지자도, 왕당파도 아니었다. 자유 의지와 무관하게 군에 입대해 자유까지 억압당하며 고향을 떠나는 것이 싫었던 이들이다. 이후 브르타뉴, 노르망디, 앙주 등에서도 농민 봉기가 발생했지만, 자코뱅의 '공포 정치' 영향으로 이들 모두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편집자)

하지만 한국의 징병제는 6.25 한국전쟁 발발 1년 뒤인 1951년, 병력을 급조하기 위해 시행됐다. 프랑스 혁명군과 같은 국민적 공감대도 없었으며, 참정권 확대 및 조세부담의 형평성과 같은 사회제도의 변화를 이끌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65년 이상 별다른 저항 없이 이어져 왔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징병제는 군사독재 시절 실시된 구체제의 일부인데,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징병제를 원하는 세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그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안악희 : 군산복합체나 전쟁 관련 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징병제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징병제는 이익 집단을 지원하는 시스템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 전원이 국방을 담당한다는 '국민개병(國民皆兵)'의 의미에서도 벗어났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북한이 있는 한, 현 수준의 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안악희 :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식은 군사력 외에도 정치·경제·외교 등 상호작용 속에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군은 병력이라는 재래식 전력만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을 상대로 실효성이 있을까? 전쟁 트라우마 때문에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적인 물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60만 대군'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일본 하급 장교의 수기인데,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야마모토 시치헤 지음, 최용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 군대는 자전하고 있다. 어떤 목적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대로 하던 대로 자전하고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한국의 예비역 역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도 한국의 군대는 비합리적인 조직이다. 다만, 20대 초반 강제 징집돼 군에서 쏟은 시간과 에너지를 부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거나 작은 것에서라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군대 축구'가 그런 의미일 수 있다.(웃음)

"군, '제복 입은 시민'으로 존재해야 한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및 병역거부자 형사처벌 개선'을 공약했다. 군에 대한 맹신과 징병제 신화를 해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가능할까? 보수 야당은 11월 초로 예정된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과거 논문을 쟁점화할 계획이다.

안악희 :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1심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가 늘고 있다. 2004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 무죄판결 총 52건 중 35건이 올해 집중됐다.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체복무제 공약은 이행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프레시안 : 군에 대한 인식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공포다. 얼마 전 강원도 철원 군부대 사격장 사망 사고도 있었지만, 전시(戰時)가 아니어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상당하다. 폐쇄적인 조직의 특성상 사건·사고가 축소되고 은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개죽음'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원인을 알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안악희 :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現 기무사)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과 1991년 전투경찰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와중에 시위 진압을 거부하고 탈영한 박석진 일경 모두 병역거부에 속한다. 당시만 해도 군을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있어, '양심선언'이라는 표현을 썼다. 군에 대한 맹신과 징병제 신화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징병제와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늦어진 것이 너무 안타깝다. '87년 민주화' 이후 공론화 돼야 했었다.

▲ 대전대 군사학과 1학년생들이 지난 8월 세종시 육군 32사단에서 입학해 훈련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징병제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악희 : '모병제'라고 본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은 축소되어야 하며, 군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 '제복 입은 시민'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징병제는 국가의 이념에 반하는 제도다. 사실상 인식 구속 상태로, 군법의 적용을 받는 특수한 신분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법체계와도 어긋난다.

물론 모병제에 대한 반론도 있다. '모병제를 하면, 군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럼, '군대에 가지 않는 양심도 있겠지만 군대에 가고 싶은 양심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응수한다. 이와 함께 모병제에 앞서 대체복무제가 먼저 도입되어야 하며, 모병제와 대체복무제는 병행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모병제를 시행하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군대 간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만 해도 유색 인종 또는 경제적 약자들이 주로 자원입대한다.

안악희 :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상대적 격차 문제는 징병제·모병제 논란과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이유로 군에 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사회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국방부는 '60만 대군'이라는 비정상적인 군을 유지하기 위해 현역 판정률을 90%까지 끌어올렸다. 1980년대만 해도 입영 대상자 중 현역 판정률은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데 30년 사이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의 신체 조건이 월등해졌다? 말이 안 된다. 일차적으로는 현역 판정률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 글 중 '여성도 군에 보내자'라는 청원이 높은 호응을 받았다. 군대라는 조직, 징병제 자체에 대한 의심보다는 '남자만 군에 간다'는 억울함에 '여자도 군에 가 봐라'라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악희 : 그런 분풀이는 사실 가정폭력 발생 원인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직장 생활 중 얻은 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 귀가해 아내와 자식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식이다. 직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노조를 조직해야 하고, 공동체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지역 조합을 만들어야 하며, 정치인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유권자를 조직해야 한다.군 복무에 부당함을 느꼈다면, 예비역들도 이제는 재발 방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해야 한다. 어떤 문제의 해결은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내부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징병제 폐지 및 병역거부는 평등·평화 운동이다"


프레시안 : 가정과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군대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안악희 : 권인숙 명지대 교수(現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가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펴냄)라는 책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서 군대와 가부장제는 상호보완적'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60만 대군'이라는 숫자만큼 예비역 또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도 군대가 우리 생활 전반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선, 군에 대한 맹신부터 사라져야 한다. 국방부도 여러 정부 부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히 '비리 온상'이나 다름없는 국방부를 해부하는 일 또한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40조 원이 넘는 세금과 청년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조직인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는 중세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웃음)

프레시안 :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안악희 : 징병제 폐지 및 병역거부는 평등과 평화 운동이다.

우리 사회는 군필자를 1등 시민으로, 미필자인 성소수자와 장애인,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 따라서 JPD의 활동은 반(反) 차별 평등 운동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분쟁지역 소년병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총을 겨누지 마라" "살인을 멈춰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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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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