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보험 문제도 공론화위에서 논해보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민간 의료보험의 양극화와 과중한 가계 부담

문재인 케어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핵심 문제인 비급여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국민건강보험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정책만으로 우리의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이 정상화하기까진 거리가 있다. 문재인 케어는 목표 보장률이 70%에 그친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민간 의료보험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재 국민은 국민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을 민간 의료보험을 별도 구매하여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이 의료 불안을 해소해주는 기능은 취약하다. 반면 국민이 지출해야 하는 민간 의료보험료 부담은 천문학적이다.

의료비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민간 보험사에 가입하는 상품을 민간 의료보험으로 부른다. 암보험, 실손의료보험, 상해/질병보험, 어린이보험, 치아보험, 간병보험 등이다.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민간 의료보험의 급여를 받으려면 개인이 보험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한 사람이 몇 개씩 가입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료패널자료(2014년)를 보면, 가구당 평균 3.8개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보험료는 가구당 월평균 22만 원, 연간 264만 원이다. 총 규모를 계산하면 연간 48조 원에 달한다. 무려 가계소득의 6.9%를 차지한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의료비 해결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다지만, 국민이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청와대

심각한 민간 의료보험의 양극화

국민적 부담도 문제이지만, 민간 의료보험은 심각한 계층별 양극화를 유발한다. 소득계층 5분위로 나눠 보면, 1분위(하위 20%) 가구는 평균 0.97개를 가입하고 있는 반면, 5분위(상위 20%)는 5.74개를 가입해 소득 간 격차가 매우 컸다. 월 지출하는 보험료 역시 1분위는 월 4만 351원인 반면, 5분위는 37만 6670원을 지출한다. 소득계층 간의 가구원수를 반영하더라도 1분위 가구는 1인당 0.52개, 5분위 가구는 1인당 1.99개였다.

국민건강보험은 소득에 상관없이 동일한 혜택을 누리지만, 보험료는 소득이 적으면 적게 내지고 많으면 많이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민간 의료보험은 동일한 보험에 가입하려면 저소득층, 고소득층 따지지 않고 같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또한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면 본인 부담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 까닭에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가 미가입자보다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다. 고소득자일수록 민간 의료보험에 더 많이 가입하고 있으므로, 의료 이용도 더 많다. 저소득층일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다. 민간 의료보험은 양극화를 부른다.

▲ 그림> 연령별 민간의료보험 가입 현황 (2014).

소득 외에도 연령, 장애/질병 유무에 따른 민간 의료보험 가입에서도 격차도 컸다. 연령별 가입에서는 고령층의 민간 의료보험 가입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연령 평균 가입률은 75.3%이나 70대는 28.1%, 80대 이상에서는 4.5%에 불과하였다. 의료비 지출은 노령층에서 많이 발생하으므로, 불가피하게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한다면 노인층이 더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젊고 건강한 연령층의 가입률은 높고 노인층의 가입률은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민간 의료보험이 노인 의료비 문제를 해결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는 국민은 그렇지 않은 국민보다 민간 의료보험 가입률도 떨어졌다.

민간 의료보험으로 의료비 해결이 불가능한 이유

결국 민간 의료보험은 의료비 걱정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일수록, 고령자일수록, 장애/만성질환을 갖고 있을수록 의료비 걱정이 크고 지원이 필요함에도 민간 의료보험은 이들을 외면하기 일쑤다.

많은 국민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려 했을 때, 나이가 많다고, 질병이 있다고, 장애가 있다고 가입을 거부당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설령 가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손의료보험의 경우에는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급격히 늘어나 소득이 없는 노후에는 수십만 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민간 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료 징수도 강제적이다. 소득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의 재원은 직장가입자라면 사업주가 절반을 부담해주고 있고, 국가도 재정의 일부를 지원한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모든 국민은 자신이 낸 본인 보험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

<표> 분위별 세대당 보험료부담 대비 급여비(2016). (단위 : 명, 원, 배) 주 : 전체 1694만9000세대로 각 분위별 세대수는 339만 세대로 동일함. 자료 : 보건복지부

민간 의료보험은 전혀 다르다. 민간 의료보험은 보험료를 누가 보태주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험사는 민간 보험료의 상당을 사업비로 챙겨간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 대비 급여 혜택에 비해 절반에도 훨씬 못미친다.

게다가 보험료는 소득이 아니라 가입자의 질병위험률을 통계적인 기법으로 산정하여 부과한다. 나이가 들수록 보험료가 비싸지고, 질병이 있거나 질병 위험이 높으면 보험료에 할증이 붙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미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는 질환을 보유하고 있다면 보험사는 가입을 거부한다. 저소득층일수록, 고령자일수록, 질병이 있을수록 민간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이유다.

민간 의료보험 지출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

이제는 민간 의료보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자.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차별없이 의료비 걱정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는 길 외에는 없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제시하였다. 문재인 케어를 환영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재인 케어가 국민의 의료비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문재인 케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현행 63.4%(2015년)에서 임기 말 70%를 목표로 할 뿐이다. 문재인 케어에서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

문재인 케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취약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동시에 가계부담이 매우 크고, 양극화가 심각한 민간 의료보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문재인 케어의 목표 보장률을 70%가 아니라 80%까지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 확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그동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확대를 위한 재원 방안으로 사회연대적인 건강보험료 인상을 제안해 왔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 사업주, 국가가 재원을 분담하는 구조이니 각 주체가 동시에 인상하는 방안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이 낸 보험료의 1.7배를 더 돌려주므로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은 부담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80%까지 확대하고, 의학적 비급여를 포함하여 연간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다면, 의료비 걱정은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 가구당 22만 원에 이르는 민간 의료보험의 지출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므로, 국민의 의료비로 인한 가계부담도 대폭 줄어든다.

이제 민간 의료보험 없이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자.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을 위한 '공론화위원회' 방식도 검토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이라는 대선 공약을 공론화위원회 주제로 잡은 건 유감이지만, 공론화위원회의 진행 과정은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방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여겨진다. 이제 민간 의료보험에 대해 근본적인 토론을 시작하자.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보건의료팀장은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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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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