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앞둔 진실화해위…"산적한 과거사 문제는 어쩌고"

내년 4월 조사업무 종료 앞두고 '과거사 연구재단' 설치 요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내년 4월께 사실상 활동을 멈춘다.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처는 이제 치료받을 기회가 사라진 걸까. 이런 답답함이 '과거사 연구재단'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과거사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자 구제 및 명예 회복 등 후속 조치를 위한 기구다.

진실화해위는 7일 오전 서울 충무로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계승·발전시키고 진실 규명에 따른 후속 조치를 위해 과거사 연구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충무로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과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진실화해위, 내년 10월 해체 가능성

진실화해위는 항일독립운동과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민주화 운동 의문사 사건 등, 과거사를 규명·청산하고자 출범한 한시 조직이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3조'에 의거해 설립됐으며, 최초 조사 개시일(2006년 4월 25일)로부터 4년이 지난 내년 4월 조사 업무가 끝난다. 조사업무가 끝난 뒤 6개월 안에 해체된다. 내년 10월이면 문을 닫는다는 뜻. 물론 기본법 제25조에 따르면 2년의 범위 안에서 활동 연장이 가능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과거사 청산 작업이 모두 끝나서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멈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할 일은 오히려 산적해 있다. 진실화해위 해체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2006년 조사 개시 이후 진실화해위가 진상 규명 신청을 받은 사건은 총 1만1017건으로, 이 가운데 58.1퍼센트인 6403건만이 처리가 완료됐다. 사전 조사(7건)가 이뤄졌거나 조사가 보류·중지된 사건(7건)을 제외하고, 당장 진실화해위가 조사를 진행 중인 사건 수만 4590건.

이 중에는 사건의 특성상 장기간 시간이 필요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3592건)'이 대다수라서, 진실화해위 해체 이후 해결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실화해위의 15명의 위원 중 안병욱 위원장을 비롯한 9명의 위원이 올해 말과 내년 1월 사이에 임기가 종료된다. 내년 4월에 조사가 끝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임 위원장 및 위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4개월에 불과하다.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 건의는 이런 배경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안병욱 위원장은 "위원회의 남은 활동 기간과 재단 설립 준비 기간을 감안할 때, 위원회의 활동 종료 이후 업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재단 설립 논의가 시급하다"며 "기본법에 보장된 과거사 연구재단을 설립해 피해자 구제와 명예 회복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법 제 40조 제1항에 따르면, 정부는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을 위해 기금을 출연할 수 있다. 과거사 연구재단이 설립된다면, 국내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독일의 기억·책임·미래 재단 등과 닮은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위원장은 이어 "6·25 민간인 학살 사건 등, 유가족이 신청 기간에 사건 접수를 못해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사건이 많다"며 "위원회 업무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접수된 사건의 70퍼센트 정도를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희생자 유해 안장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고 수용에 등 돌리는 정부 기관…'사과' 표명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

국가 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의 경우, 진상 규명이 이뤄진 이후에도 해당 기관의 미온적 반응 때문에 해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안 위원장은 "이미 진실을 규명한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 기관이 위원회의 사과 권고를 거부하고 오히려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반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현재까지 진실화해위가 '국가 사과'를 권고했던 사건은 총 61건으로, 이 가운데 국가 기관의 사과 및 유감 표명이 이뤄진 사건은 16건에 불과하다. 특히, '유감'이 아닌 관련 기관장의 '사과'가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 것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진상 규명이 이뤄진 이후에도 가해 기관이 체면이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충실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기관만 만들어 놓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과거사 진상 규명 문제는 특정 정권 및 권력 기관의 이해와 무관한 일"이라며 "지난 정부 때 초석을 놓았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현 정부의 정책 당국자들이 그 성과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피해 민간인 배·보상 문제'는 남은 숙제로

한편, 한국전쟁 전후로 발생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의 배·보상 문제도 주요 현안으로 제기됐다.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계기로 유가족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지만, 이러한 개별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상이한 판결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의 경우,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1심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지난 8월 18일 열린 항소심에서 소멸시효 완성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현재 유가족이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배·보상 청구 소송을 지양하고 포괄적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또한,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에 발굴됐던 유해와 유품의 보관 문제도 시급하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3월 충북대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을 개관, 최근까지 발굴된 유해 1500여구와 유품 3000점 이상을 임시 안치했으나, 향후 관리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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