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남긴 재산 대부분은 부채였다

[작은책] '주빌리 은행' 덕에 세 아이 보금자리 지켜…

화창한 주말,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숨쉬기가 힘들다며 같이 병원에 가잔다. 남편은 원래 호흡기가 안 좋았는데, 기침이 계속된 지는 6개월이 넘었다. 병원에 도착한 남편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이어 중환자실, 기도 삽관, 위기의 시간들을 반복하더니 열흘 만에 하늘나라에 갔다. 떠난 이도 갑작스런 이별이 슬펐는지 눈을 못 감았다. 내가 그 동안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눈을 감겨 주자 그제야 눈을 감았다.

아빠의 죽음을 어린 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유독 아빠를 따랐던 막내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장이란 자리를 갑자기 떠안게 된 나에게는 그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남편이 나 몰래 저지른 수많은 일 중 당장 살고 있는 집을 지키기 위한 싸움부터 시작해야 했다.

▲ 2015년 방송된 MBC 중 '가계 빚 1,100조,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화면 갈무리.

우린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산다. 남편은 사망 전 약 4200만 원의 임대 보증금을 담보로 제2금융권인 D금융에서 32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리고 남편 사망으로 대출 원금을 갚지 못하자 한 달에 50여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살고 있는 집을 승계해야 하는데, D금융에 진 빚을 다 변제하고 D금융이 이 집에 대한 포기 각서를 써 줘야만 승계가 가능하다는 LH공사 직원의 말에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남편이 남긴 재산의 대부분은 부채였기에 '상속 한정 승인'을 신청해 놓은 상태여서, 남편이 진 빚을 변제할 경우 남은 모든 부채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D금융에서는 이자가 늘고 있다며 갚을 것을 독촉했고, 그러지 못할 경우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의 여러 도움이 있었지만, 제일 급하고 중요한 집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세 아이와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되자 정말 보이는 게 없었다.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방법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두렵고 버티기 힘들었다. 정말 이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원금에 이자, 그 이자에 또 이자. 그들이 꼬박꼬박 보낸 빚 독촉 메시지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알림이었다. 그래도 계약 기간 동안(2년 남짓)은 살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조금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새 직업을 찾기 위한 공부에 도전하였다.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평안도 잠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D금융에서 법적 싸움을 걸어 왔다. 남편이 사망 전 그들과 맺은 계약은 빚을 기한 내 변제하지 못할 경우 집에 대한 소유권을 D금융에 넘기겠단 약속을 담고 있었다. 그 집은 더 이상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전화 한 통에 모든 희망을 잃은 듯 난 좌절했다. LH공사에서도 방법은 없다며 우리에게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정말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그들이 보여 준 건 냉혹한 현실이었다. 거기엔 감정도 배려도 없었다. 그냥 그들이 제시한 내용을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그냥 흘렀다. 길거리에서 누가 쳐다보든 말든 한없이 울었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기에 무력한 나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그런 나의 상황을 함께 안타까워하며 지켜본 이웃들이 나를 대신해 나서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곳이 바로 '주빌리 은행'이다.

금융기관들은 채무자가 장기간 갚지 못한 채권을 손실로 처리한 후, 대부업체에 원금의 1~10퍼센트 수준의 헐값에 판다. 그러면 대부업체들은 원금뿐만 아니라 연체 이자까지 받아 내기 위해 채무자들을 혹독하게 추심하는데, 견디다 못한 채무자들은 또 다른 빚으로 돌려막기를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주빌리는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돕기 위해 부실 채권을 매입, 빚을 전액 탕감해 주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다. 여기서 만난 유순덕 상담사님이 나와 우리 세 아이를 가엾게 여기고 나를 대신해 D금융과 직접 대면해 주셨다.

그렇게 빚 독촉을 하던 D금융은 주빌리가 나서자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고, 주빌리에서 D금융의 채권을 사겠다고 하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 끌기를 계속 시작했다. 그러기를 3개월, 이자는 불어날 대로 불어나 원금과 이자의 합계액이 임대 보증금을 넘게 되었고, 모든 책임을 주빌리에서 지겠다는 각서를 받고 나서야 D금융은 채권을 주빌리에 넘겨주었다. 아직은 LH공사와의 일이 남아 있어 완전하게 내 이름으로 계약된 상태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휴가로 인해 지연된 이자에 대한 이자까지 다 받고서야 그들은 우리에게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상담사님은 그 집이 나와 세 아이의 전부만 아니라면 D금융과는 그 어떤 일로도 대면하고 싶지 않다며 아주 힘겨워하셨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이 어떤 돈인지 아시는 상담사님은 오히려 그 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며 안타까워하셨다. 너무나 큰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D금융을 원망하진 않는다. 어찌 보면 그들도 그들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니…. 하지만 그들이 다한 최선이라는 게 결국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제2금융의 횡포에 좌절하며 힘들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그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약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이 있으며 여전히 그들은 우리 편에서 우리를 대신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주빌리의 유순덕 상담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작은책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