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명함 든 정보원, 그들은 냄새가 난다

[작은책] 전두환·노태우·김영삼, 그리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지난날 책방 풀무질은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 50미터 못 가서 있었다. 그곳은 데모를 할 때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지키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밀리면, 성균관대 정문까지 밀린다. 김영삼 정권까지는 학교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돌멩이와 화염병이 날아다녔고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잡아들였다.

나는 책방 풀무질을 하다가 시위가 있으면 책방 일을 하지 않고 시위대에 섞였다. 도로에 물을 뿌리다가 학생들 틈에 끼어서 돌을 던지기도 했다. 내가 꾸리는 책방 옆에 있는 가게들은 시위가 있으면 내게 와서 언제쯤 최루탄을 쏘겠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말한다.

"아직 괜찮아요. 앞으로 한 시간은 저렇게 대치하고 있을 거예요."

"지금 셔터를 내리세요. 서둘러요. 5분 내로 전투 경찰이 최루탄을 쏠 거예요."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막기 시작하면 어차피 장사를 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나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에게 언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는 학생들이 책방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살짝 문을 열어 놓았다. 책방 풀무질 2층은 매운 최루 가스를 피해서 몸을 숨기기 좋았다.

책방 풀무질과 나는 이렇게 시대 상황과 아주 가깝게 움직였다. 내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꾸리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지던 최루탄 사용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 딱 끊겼다. 그것만이 아니다. 책방을 사찰하는 정보원도 뜸해졌다.

책방 풀무질에는 정보원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드나들었다.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청, 동대문경찰서 요원들이 제집 드나들 듯이 책방에 와서 정부를 비판하는 잡지나 책들을 사 갔다.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은 명함을 주면서 앞으로 잘해 보자고 했다. 명함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아니라, '○○상사'라고 쓰여 있었다. 참 웃기는 일이다. 내가 그들 조직원도 아니고, 뭘 잘해 보자는 건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정보원들은 한 철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발길을 딱 끊었다. 누가 정보원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들은 책방에 들어와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핀다. 그들이 생각하는 불온한 책이나 부정기와 간행물이 있는지 눈여겨본다. 언제나 낮 밥 먹을 때를 지나서 오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가면 다시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책방에서 살펴보면 같은 승용차를 타고 떠난다. 그들은 냄새가 난다. 학생들은 서둘러 책을 사 가거나 찾는 책이 안 보이면 있는지 물어보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놀라운 일도 있었다. 학생인 것처럼 속여서 정부 비판 자료집들을 사 가기도 했다. 나중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을 때 내 손으로 써 준 영수증 한 다발과 그곳에 있는 젊은 여자를 보고 놀랐다. 내가 꾸리는 책방에서 반정부 자료집을 사 갔던 여학생들이 그곳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 끄나풀이었다.

아무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정보원도 거의 오지 않았고 최루 가스도 맡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구제 금융 사태가 터졌다. 일명 IMF. 사람들은 집에 있는 금을 모아 수렁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노동자, 농사꾼, 도시 빈민들은 더욱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려고 애를 쓰고 국가권력에 목숨을 잃고 명예를 잃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정의를 찾으려고 여러 진상 규명 위원회를 꾸린 것은 참으로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공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든 것이나, 노동 유연화를 한다면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상을 만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해군 기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나 평택에 미군 기지를 만든 것,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한 것, 이라크에 군인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분을 참을 수 없다. 물론 제주 해군 기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마무리했지만 그 계획을 세운 것은 노무현 정부다.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미군 기지를 만들려고 그곳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을 쫓아냈다. 중국과 가까운 곳에 전쟁 기지를 세워서 한반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한미 FTA는 농사꾼들을 더욱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라크에 총을 든 군인을 보냈다. 나는 2003년 겨울에 열흘 가까이 굶었다. 혜화역에서 동화작가 박기범이 이라크 파병 반대 단식을 한 달 가까이 이어 나갈 때였다. 나도 함께 밥을 굶으며 그 뜻을 이었다. 우리 아이가 여섯 살 때다.

"아빤 왜 밥을 굶는 거야?"

"응, 형근이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내 목숨이 귀하면 다른 이 목숨도 귀하다고 형근이한테 얘기했는데,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라크 아이들을 죽이는 일에 반대해서 밥을 굶는 거야."

나는 그때 몸무게가 57킬로그램이었는데, 밥을 굶는 동안 하루에 1킬로그램씩 빠져 47킬로그램이 나갔다. 나는 물만 먹으면서도 책방 일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책방 1층에서 2층으로 걸어갈 힘도 없었다. 어머니가 이것을 알고서 책방으로 달려왔다. 마구 울부짖으면서 당신도 밥을 굶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사흘을 내리 밥을 굶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 밥을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그리워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죄스러워한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훨씬 많은 부분에서는 실망과 분노가 일어난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3분의 2 가까이 되었을 때 왜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했는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우리나라는 결국 미국 식민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도 믿음이 더 앞서면서도 비판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한반도 평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 기지(THAAD)를 이 땅에 세우려고 하는 것을 보면 다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있었던 악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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