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구럼비 억울함 풀어줄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길] 지난 10년 강정 앞바다엔 무슨 일이?

강정마을은 제주에서도 작은 해안마을이다. 제주사람들도 아직 가보지 않은 이가 많은 이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제주해군기지 건설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다. 2007년 해군은 강정마을을 제주해군기지 예정지로 정하고 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바로 직전까지는 제주의 안덕면 화순리와 남원읍 위미리 두 농촌마을을 차례로 예정지로 정하고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오던 터였다. 해당 마을 주민들과 지역 여론의 강한 반발로 한발 물러선 해군이 선택한 곳이 강정마을이었지만, 이곳 역시 해군기지가 들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여론이 많았다.

첫째 이유는 강정마을 앞바다는 항만 입지로서 부적합하다는 점이었다. 강정 앞바다는 태풍의 길목이면서 동시에 돌출된 해안이기 때문에 풍랑이 잦은 제주의 기상 여건으로 볼 때 입지 선정이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군기지 완공 후 제주에 태풍이 내습하자 해군은 기지에서 군함들을 모두 피항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둘째, 강정 앞바다는 정부와 유네스코가 정한 각종 보호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개발 사업이 불가하다는 의견이었다. 강정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면서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생태계보전지역이다. 그리고 강정 연산호 군락지는 문화재청이 지정한 문화재보호구역에 해당한다. 특히 바닷속에 서식하는 생물 서식지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례였다. 제주특별법에 의해서도 강정 해안은 절대보전지역이며, 이 일대는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처럼 환경적 여건으로 볼 때 절대 들어설 수 없는 입지조건이었지만, 정부와 해군, 제주도는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한 채 계획을 강행했다. 사업 승인을 위한 행정 절차는 무사통과를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 당연히 강정마을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정 앞바다의 환경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체 조사도 시작했다.

▲ 해군기지 공사 전 강정 구럼비 해안. ⓒ조성봉

연산호 군락지 파괴한 해군기지

그로부터 10년이 되었다. 마을의 공동체를 지키고, 마을의 앞바다를 우리 아이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겠다는 신념 하나로 강정마을 주민들은 생업도 포기하다시피 한 채 10년을 버텨왔다. 하지만 정부가 주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었고, 국가 폭력이었다. 수백 명이 체포·연행되었고 주민과 활동가가 구속되었다. 벌금만도 수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의 방해로 공사가 늦어졌다며 34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강정 앞바다 연산호 조사 보고서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저항이 정당했음을 증명한다. 해군기지 공사로 주변 해양생태계의 훼손이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정부와 해군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연산호(soft coral)는 부드러운 겉면과 유연한 줄기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어서 말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산호 군락지는 경산호(hard coral)인데 반해 제주 남부 연안의 산호 군락지는 대부분 연산호 군락지이다. 연산호는 경산호에 비해 모양이나 색깔이 아름다워서 바다의 꽃으로 불린다. 그리고 연산호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협약)이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관리될 만큼 보전가치가 뛰어난 생물이다.

이런 이유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의 승인 과정에서 사업으로 인한 연산호 군락지의 훼손 논란은 큰 쟁점 중의 하나였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사업계획 당시 진행된 사전환경성 검토에서 연산호의 서식 자체조차 언급하지 않는 등 부실조사로 일관했다. 이에 강정마을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강정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지에 대한 조사와 함께 꾸준한 현장 모니터링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로 강정마을이 제주해군기지 예정지로 지정된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10여 년간 강정 앞바다의 변화, 특히 연산호 군락지의 훼손 실태를 기록한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제주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연산호 군락지의 서식환경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규모 방파제가 만들어지면서 연산호 군락지 주변의 조류 흐름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고,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유사들이 아무런 저감대책 없이 그대로 외해(外海)로 확산되었다. 연산호는 바위에 붙어사는 고착성 동물로 폴립이라고 하는 입 부분의 수많은 촉수를 이용하여 빠른 조류가 실어오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폴립으로 걸러 먹는다. 때문에 조류의 흐름이 느려지거나 물이 탁해지면 생존이 어렵게 된다. 결국 제주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연산호 서식지의 조류 흐름이 느려졌고, 부유사에 의한 수중 탁도가 증가하면서 연산호 군락지의 서식환경은 크게 악화된 상태다.

▲ 강정등대 남단 90m, 수심 150m 지점에서는 수중동굴이 있다. 이곳은 대형 자바리의 서식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2008년(위)에는 동굴 입구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큰수지맨드라미와 분홍바다맨드라미가 잘 발달되어 있다. 동굴 안쪽과 바깥쪽을 비교한 2015년(아래) 촬영 결과, 연산호 개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나마 생명을 유지한 연산호 역시 먹이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환경부와 문화재청의 연산호 군락지 보호 대책도 매우 미흡했다. 두 기관은 해군과 협의 과정에서 연산호 보호를 위한 저감 대책으로 오탁방지막 설치만을 제시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해군은 공사과정에서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풍랑에 오탁방지막이 훼손되어도 그대로 공사를 강행했고, 설치기준에 미달하는 오탁방지막을 형식적으로 설치했다. 이로 인해 제주도로부터 공사중지 명령을 수차례 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현상변경 허가 조건에는 "공사 중 발생하는 부유사 농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긴급 상황 발생 시 공사중지 등 즉각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도록 했다. 하지만 해군은 부유사 농도 모니터링은커녕 아무런 저감 대책도 없이 육지부의 토사 유출, 수중 콘크리트 시설 파쇄 작업 등 마구잡이 공사를 강행했다. 이처럼 여러 협의 조건을 어긴 해군의 불법 공사가 이어지면서 연산호 서식지의 훼손과 바다생태계의 파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구럼비 바다, 뭇 생명을 위하여

사실이 이러함에도 정작 해군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군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후 문화재현상변경 허가 조건에 따라 연산호 모니터링과 환경영향 평가에 따른 사후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해 왔다. 이들 결과보고서에서는 단 한 번도 기지 건설로 인한 연산호 군락지의 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산호의 종 다양성과 피복도가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온 경우에는 기지 건설이 아니라 태풍으로 인한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연산호 군락지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이 해군에 인공복원을 요구한 사실이 공개되었다. 해군은 검증도 안 된 복원 방식을 은밀히 진행해 왔고, 이 내용이 밝혀지면서 사실상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연산호 군락지가 훼손되었음이 공식 확인되었다.

해군기지 공사로 인한 연산호 군락지의 훼손이 확인되고, 그 과정에서 해군이 저지른 숱한 거짓과 불성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연산호 보호의 관리감독 기관인 문화재청과 법정 보호종 관리의 주무 부처인 환경부의 책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강정 앞바다의 연산호 보호와 종 보전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제주특별법에 의해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갖고 있는 제주도 역시 해군기지 사업으로 인한 연산호 훼손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강정 연산호 조사를 이끌어 온 강정마을회와 환경단체들도 연산호 훼손실태 조사보고서 발간 후 정부와 제주도에 이러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지지 않는다." 2016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제주환경운동연합

강정천, 악근천, 할망물, 붉은발말똥게, 썩은섬, 구럼비 등 이제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릿한 단어들이다. 어른들은 낚시하고, 아이들은 신나게 물장구치던 구럼비 해안의 풍경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강정마을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곳이었다. 배를 타고 마음대로 바다로 나갈 수도 없었고, 마을 내에서는 집회신고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이성을 잃은 공권력은 한마디로 잔인했다.

지난 정부는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한 마을의 공동체를 산산조각내고, 주민의 삶터인 바다 환경을 파괴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100일이 조금 넘었다. 정부는 지난 10년 강정마을 주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위기에 처한 강정 앞바다의 해양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을까? 아직도 진행형인 강정마을의 문제를 새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지 강정마을 주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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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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