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모두 지우세요"...9년 간 묵인된 은폐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김장겸, 그리고 신현수와 정몽구

"올 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대비 1억 플러스(8억) 할 수 있도록 장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 달라는 게 요지입니다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 갖고 챙겨봐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지난 달 언론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이 있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수많은 언론사 고위직들이 보낸 문자들이 폭로된 것이다. 광고 협찬액을 늘려주면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다는 문화일보 편집국장의 문자는, 이 사회 최고위급 구성원들 사이에 거래되는 추악한 모습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 아들 아이 ○○○이 삼성전자 ○○부문에 지원을 했는데 결과발표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 이름은 ○○○ 수험번호는 ○○○○○○○○이고 ○○○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같은 부탁이 무례한줄 알면서도 부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애끊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문자를 드립니다."

어디 그뿐인가. 사적인 취업 청탁 문자도 줄을 이었다. CBS의 간부를 지낸 모 인사가 보낸 문자에 표현된 '애끊는' 자식 사랑의 대가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런 추악한 모습에선 빠지지 않는 계층인 검찰, 아예 전직 검찰총장까지 등장해 장충기 사장에게 유사한 인사 청탁 문자를 보냈음이 함께 폭로되기도 했다.

부역자들, 공범자들에 이어 청탁자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선 청와대․행정부․재벌․언론․검찰에서 수많은 '부역자들'이 드러났다. 언론노조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발표해온 '언론 부역자 명단'에서 금·은·동메달을 빼앗기지 않은 인물들이, 올해에는 영화 <공범자들>의 주연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이제 우리는 언론이라는 부역자가 재벌이라는 부역자이자 또다른 공범자를 만나자 '청탁자들'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집단들이니, 부역자들이 만나 공범이 되었다면 당연히 뭔가 거래관계가 있음직하지 않은가.

그러나 범죄자들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자주 쓰는 수법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언론 부역자'이자 '공범자' 맨 위에 이름을 올린 MBC 경영진들이 최근에 그런 일을 벌인 바 있다.

MBC PD수첩 제작진이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가제)'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하자, 담당 국장과 편성제작본부장은 이를 불허했는데 그 사유가 참으로 가관이다. "민주노총은 언론노조 상급 기관이고, 당신들은 언론노조 조합원으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방송심의규정에 위반된다"는 게 불허 사유라는 것이다.

저 논리대로라면 기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대한민국과 관련한 일체의 취재나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건을 보는 시각도 편향될 수 있으니 타국 관련 취재나 보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이런 얼토당토 않는 논리를 구사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PD수첩 제작진을 중심으로 항의와 제작 거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MBC는 시사제작국 명의의 성명을 통해 "<PD수첩>이 민주노총의 '청부' 제작소인가?"라고 공격한 것이다. 청탁자들이 엉뚱하게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청부자 운운한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MBC 사측은 이영백 PD에게 2개월 자택 대기발령이라는 보복성 징계조치를 단행했다. 사실 이런 일은 지난 9년간 비일비재하게 벌어져온 것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자본의 보복과 탄압, 이러한 행위는 명백히 노동조합법 제81조에서 규정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모든 카톡 및 문자는 지우세요", "김앤장하고 지시하신대로 …”

신입사원으로 뽑아서 회사에 입사시킨 후 별도의 노조를 설립하여 제1노조인 금속노조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다. 수십 명의 경찰, 특전사 출신이 입사한 뒤 제2노조가 설립되었고, 이들에 의해 생산현장은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노동부가 수사에 나서 갑을오토텍 박효상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은 박효상 사장에게 징역 8월을 구형했는데,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보다 무거운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범행은 노사 간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게다가 이 사건 각 범행은 회사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조직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규모 또한 대규모로 비난가능성이 크다."

당시 1심 재판부가 밝힌 선고 이유이다. 노동부와 검찰이 그동안 얼마나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관대하게 봐주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갑을오토텍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했는데, 노동부와 검찰의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 행위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공개한 수사보고서 내용의 일부

2015년 4월 10일에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관련 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위 수사보고서에 나온 내용은 그 직후인 4월 14일, 박효상 사장과 권기대 노무부문장 사이에 오간 휴대폰 문자메시지들이다. 노동부는 4월 23일에야 갑을오토텍에 압수수색을 실시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권기대 노무부문장의 휴대폰에서 위와 같은 문자메시지들을 확인한 것이다.

"모든 카톡 및 문자는 지우세요. 전화로 합시다."

박효상 사장이 이렇게 문자를 보내자 권기대 노무부문장은 "예. 다 정리하고 있습니다. 김앤장하고 지시하신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9일 전에 사실상 부당노동행위의 핵심 증거를 지우도록 모의하고, 그 과정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김장겸에게는 체포영장 발부, 그런데 신현수는?

갑을오토텍지회가 공개한 압수수색자료에 따르면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2015년 3월 31일부터 4월 22일까지 권기대 노무부문장과 30차례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은 위에 공개된 것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김앤장 변호사들의 증거 인멸 의혹이 충분히 드러났는데도 이들은 기소되지 않았다. 갑을오토텍 사건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들 중에는 신현수 변호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발탁한 바로 그 신현수 변호사 말이다.

아차,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한 박형철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 변호사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직후 갑을오토텍 사측을 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다만, 그는 갑을오토텍 사측이 기소된 이후인 지난해에 법률 대리를 맡았다는 해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증거 인멸 의혹이 제기되는 2015년에도 갑을오토텍 사측 대리인 역할을 했던 신현수 국정원 기조실장은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노동부와 검찰이 그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부당노동행위를 중죄로 다스려야 하는 만큼,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인멸한 것도 중죄로 다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급기야 갑을오토텍지회는 지난 7월 19일, 신현수 국정원 기조실장을 비롯한 김앤장 대리인들을 증거 인멸 혐의로 고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형철 비서관과 신현수 실장을 해임하라는 요구도 함께 담았다. 고소가 이뤄진지 50일이 넘었지만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갑을오토텍지회가 수사보고서를 공개하며 증거 인멸 의혹을 제기한 것은 훨씬 오래된 일인데도 말이다.

"불법노동행위에 엄정한 법 집행"...청탁한 정몽구는?

지난달 25일,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세기의 재판’ 선고가 이뤄졌다. 수많은 언론인들의 청탁을 받았던 주인공 장충기 사장에게도 실형 4년이 선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사법적 판단이 중요한 고비를 넘은 것이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박근혜-최순실에게 부역한 재벌 그룹이 삼성뿐이던가?

▲ 한겨레신문 2016년 12월 5일자

지난해 12월 5일, 박근혜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소속 윤소하 의원(정의당)이 재벌 총수들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많은 재벌 총수들이 박근혜를 독대한 자리에서 ‘청탁’질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위 기사 참조)

특히 삼성에 이어 국내 2위 재벌인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전기차나 신사옥 등 ‘민원성’ 청탁만이 아니라 ‘불법 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청탁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10월에 이기권 노동부장관은 합법적인 현대차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으니 ‘청탁’의 인과관계도 확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왜 정몽구 회장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을까?

부당노동행위는 다뤄지지도 않았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주요 간부들에게 90억을, 그리고 이 파업에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상급단체와 정규직노조 간부 등 수십명에게 20억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다. 이들 중에 투쟁을 포기하고 노조를 탈퇴하거나,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한 노동자가 있으면 그들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해준다.

처음에 수십 명 내지 수백 명의 간부들에게 제기된 소송은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많은 이들이 늘어나며 4~5명만 남게 된다. 회사는 마지막까지 버틴 4~5명의 간부들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 결국 회사의 탄압을 온몸으로 견뎌온 4~5명의 간부들에게 90억과 20억의 손해 전액을 물어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다.

이게 바로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투쟁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그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상급단체와 정규직 노동자들이 2017년 현재 겪고 있는 현실이다. 처음에는 수백 명의 주요 간부들에게 90억과 20억을 물어내라고 했으나, 나중에 대다수 간부들에게 소를 취하한 뒤 4~5명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누가 봐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에게 손해액을 받아내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목표가 아니다. 투쟁을 포기하고, 노조를 탈퇴하고, 소송을 포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굴복시키는 것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의 목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소송’을 수단으로 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 아닌가?

'불법파견'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불법에 엄격한 법 집행을 '청탁'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런 부당노동행위가 묵인되고 있는 것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파업에 동참한 것을 이유로 기자와 아나운서, PD들을 비제작부서로 전출시킨 행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행위가 아니지 않은가. (☞ 관련기사 바로가기 : 회사에 항의한 값, 60년치 노동자 연봉)

진정한 '노동' 존중사회를 위해, MBC․KBS 파업 승리를!

MBC·KBS 노동자들의 파업이 1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12년에도 공정방송을 내걸고 공동파업을 전개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특징을 한 가지 갖고 있다. 키워드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파업이라면 당연히 노동자, 노동조합이 하는 것이니 '노동'이 키워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파업이 시작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노동'은 가장 결정적인 쟁점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우선 PD수첩 제작진이 아이템으로 선정해 사측과 갈등을 빚은 주제는 '한상균'이었다. 전통적으로 언론노동자들과 사측의 갈등은 '4대강'이나 '국정원 댓글', '세월호' 같은 이슈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주노총 최초의 직선제로 선출된 위원장, 그리고 2015년에 '노동개악 폐기'를 내걸고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이끌었던 한상균 위원장이 쟁점이 된 것이다.

아울러 정권과 방송사 사측이 갈등을 빚어온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언론사의 탈세 혐의가 쟁점이 되거나, KBS 정연주 전 사장의 경우 배임 혐의가 쟁점이 되며 갈등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MBC 김장겸 사장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노동'은 결정적인 쟁점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PD와 기자들의 ‘제작 거부’는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전문직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문제 해결의 수단을 거머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줍게 선거 슬로건의 하나로 차용했던 ‘노동존중’이라는 단어는,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사회 전면에 실질적인 의제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사태 전반을 ‘정권의 언론 장악’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다. MBC·KBS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다시는 언론이 정권의 도구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며, 그 정권에는 당연히 문재인 정부도 포함된다. 황우석의 사기행각을 파헤치고 진실을 알렸던 일이 어느 정권에서 벌어졌던지 떠올려보라.

<인사이드 경제>는 MBC·KBS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응원하며 승리를 기원한다. 그들의 승리가 우리 사회 적폐를 청산하고, 지배자들이 불편해하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빛과 소금'이 되어줄 것이다. 공정방송을 가로막는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언론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된다면, 갑을오토텍과 현대차그룹의 부당노동행위 같은 사건들이 메인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갈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김장겸 체포영장으로 본 '노동판'의 불편한 진실)

민주노조에 살충제를 뿌리는 부역자·공범자·청탁자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 위해 독자들도 함께 응원하자. “꼭 승리해서 좋은 기사와 뉴스로 보답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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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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