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야생동물 고라니가 국제적 멸종위기종?

[함께 사는 길] "사람과 닮은 고라니, 공존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대륙의 끝과 바다의 시작에 위치해 국토 면적에 비해 생물다양성이 높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수많은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늑대, 여우 등의 포식동물과 대륙사슴, 붉은사슴 등의 초식동물, 그리고 부지불식중에 사라진 많은 야생동물들이 존재한다.

다행히 환경부가 2002년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내 종복원기술원을 건립하여 사라져 가고 있거나 이미 사라진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등과 같은 종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종의 대대적인 복원을 위해 2017년 하반기에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개원할 예정이다.

한 종이 사라진 후 다시 그 종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를 우리는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라니다.

▲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고라니. ⓒ최종인

국제적 멸종위기종 고라니

고라니는 토착종으로 한국과 중국에만 서식한다. 고라니는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과 같이 중요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의 취약종)이다. 중국에는 현재 1만여 마리만이 살아남아 있어 자국 내 보호종으로 지정, 10여 년 전부터 상하이에서 복원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복원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생존 개체수가 적은 까닭에 우리나라의 고라니 개체군의 보호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라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야생동물로 민원 요청 시 구제가 가능하며, 도로에서는 차량에 위협을 주는 로드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피해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해야 하지만 인간과의 마찰로 인해 죽여야만 하는 모순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풀 수 있을까? 이에 앞서 우리가 잘 모르고 또 오해하고 있는 고라니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고라니는 사향노루를 제외하고 한반도 내 사슴류 중에서 가장 작은 종이다. 보통 몸 전체 길이가 80~100센티미터, 몸높이가 55센터미터, 몸무게가 15킬로그램 정도이고, 암컷은 수컷에 비해 몸무게가 덜 나간다. 고라니는 노루와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몸집이 작아 '보노루' 또는 '복작노루'라고도 불린다. 고라니란 이름은 한국의 다른 야생동물들처럼 순우리말로 그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에서 '어금니노루'라는 의미를 가진 '아장(牙獐)'이란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영어로 고라니를 '물 사슴'의 뜻을 가진 '워터디어(water deer)'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고라니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이 물가에 노니는 고라니를 보고 붙인 이름이다. 고라니의 학명(Hydropotes inermis)에도 물(Hydro-)을 좋아하는(-potes)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름처럼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여 수영도 잘 하지만, 모든 고라니가 물 주변에만 사는 것은 아니고 물과 떨어진 다양한 서식지에서 살아간다.

한편 고라니의 상징인 한 쌍의 송곳니 때문에 외국에서는 '흡혈귀 사슴(vampire deer)'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라니는 수컷과 암컷 모두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수컷의 큰 송곳니와 달리 암컷의 송곳니는 너무 작아 입술에 덮여 있어 송곳니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몸집이 작은 고라니는 여느 사슴류와 달리 뿔 대신 날카로운 송곳니를 주 무기로 가지고 있다. 고라니는 풀이 무성한 평지와 나무가 많은 산림의 경계 지역에 머무는데, 만약 큰 뿔이 있다면 적과 싸우거나 적을 피해 도망칠 때 갈대나 억새 같은 식물에 걸려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뿔과 달리 작은 송곳니는 적에 대한 방어와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유용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 겨울철 고라니 수컷. ⓒ김백준

사람과 닮은 고라니

그런데 왜 고라니는 한반도와 중국에만 살고 있을까? 고라니의 조상은 과거 한반도와 중국이 서로 연결된 육지였던 황해 주변 서식지에 도달한 후 점차 물과 먹이가 풍부한 초지와 산림의 접경지대에 안착하게 되었다. 이 접경지대는 주로 습지와 하천 같은 물 주변인데, 아마도 고라니에게는 이런 곳이 경쟁자들이 적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빙하기 당시 한반도 및 인근 중국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여 고라니를 비롯해 많은 야생동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고라니는 자신들이 살던 지역에서 계속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고라니가 마치 고대의 동물처럼 송곳니를 유지하는 것도 어쩌면 빙하기 당시의 원시적 모습 그대로가 유지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고라니와 사람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과 같이 고라니도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슴류의 공통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왔는데, 중국과 한반도에서 분화되어 새롭게 고라니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 고라니도 분가를 한다. 사람과 고라니의 평균수명을 100년과 10년이라고 볼 때, 사람은 보통 30세 정도에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데 반해, 고라니는 1세 정도에 어미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사람의 나이로 10세 전후에 분가를 하는 셈이다.

셋째, 고라니도 자식을 아낀다. 엄마와 아이의 밀착 관계처럼 고라니도 새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출산 직후 새끼 몸에 묻은 이물질을 혀로 핥아 닦아내며 어미는 새끼를 정성스레 보살핀다. 넷째, 고라니도 결혼 상대자를 고른다. 사람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 성격, 재력, 종교 등을 보듯이 고라니도 배우자를 고른다. 상대의 당당한 체구나 건강상태 등이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고라니도 편식을 한다. 고라니는 여러 형태의 식물을 다 섭취하기보다는 주로 나무나 초본의 넓은 잎을 선호하는 집중형 채식자로 알려져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좋아하는 음식만 집중적으로 먹는 편식자인 셈이다. 여섯째, 고라니도 마실을 나간다. 고라니는 밤에 주로 활동하는데, 낮에는 보통 보금자리 주변 평지지역을 가볍게 마실 나가듯이 잠시 돌아다니다 들어오곤 한다.

일곱째, 고라니도 한 끼는 푸짐하게 먹는다. 고라니는 낮에 주로 먹이식물이 제한적이고 가까운 초지지대에서 몇 종류 되지 않는 식물을 먹지만, 밤에는 먹이식물이 많은 먼 산림지대에서 다양한 먹이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점심에는 가까운 분식집에 가서 간단히 김밥으로 때우고 저녁에는 멀리 떨어진 레스토랑에 가서 다양한 메뉴로 배불리 식사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마찬가지로 X, Y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반면, 고라니는 그보다 많은 70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최종인

한해 20만 마리 이상 사라져

고라니의 개체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전후로 불과 몇 십 년 되지 않았다. 이는 호랑이를 포함한 많은 포식자들과 대륙사슴을 포함한 많은 경쟁자들의 멸종 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라니 개체 수는 최소 10만에서 최대 75만 마리 정도이고, 현재 개체수가 현상 유지 혹은 조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고라니가 흔하고 더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는 논과 밭, 과수원 등이 산지로 확장되고 단편화된 서식지 사이에 도로들이 건설되면서 고라니가 노출된 곳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개체 수 산정이 없는 상황에서 고라니의 개체 수는 서서히 감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라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불법 밀렵과 더불어 현행 수렵제도 상에서의 합법적 사냥과 유해야생동물 구제, 로드킬 속에서도 다행히 고라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 번에 3~4마리 정도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다산의 번식능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수렵과 유해야생동물 구제로 한 해 약 10만 마리의 고라니가 사냥되고 있다. 또한 한 해 6만 마리 이상이 로드킬로 죽는 것으로 나타나 종합적으로 보면 최소 16만 마리에 이른다. 여기에 밀렵으로 죽는 고라니 수를 추가한다면 아마도 한 해 20만 마리 이상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농작물 피해로 인한 유해야생동물 구제가 갈수록 증가하고, 도로가 지속적으로 건설되고 있어 고라니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고라니는 생태계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이 종이 급감하거나 멸종하면 이 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종의 안정적인 구조가 깨지고, 향후 종 다양성 및 유전적 다양성, 나아가 생태계 다양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 고라니의 적정 개체수 산정 등을 통한 합리적인 관리로 인간과늬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함께사는길(이성수)

공존이 필요한 시기


이유야 어쨌든 현재 고라니의 개체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이 산림에 미치는 피해와 더불어 인간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고라니 연구는 로드킬 현황 및 저감, 농작물 피해 현황 및 방지 등에 그치고 있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더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북미의 경우 흰꼬리사슴의 개체 수가 적정하게 유지될 경우 산림의 식생 천이(식물군집의 구성과 특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현상) 과정에 도움을 주고 이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타 동물들에게도 혜택을 준다고 한다. 더 나아가 개체 수가 적정하게 유지될 때, 타 서식지로의 이출 혹은 타 서식지에서의 이입되는 개체들이 적어 주변 도로에서의 로드킬 발생 빈도와 농지에서의 농작물 피해 빈도가 감소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라니의 적정 개체 수를 산정하여 어느 정도의 개체 수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합리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현재 약 5000만 명 정도다. 이에 비하면 고라니의 개체 수는 0.2~1.5퍼센트에 불과하다. 지금껏 인간은 원래 주인인 고라니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집을 빼앗아 도로나 농지를 조성해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지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는 것은 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인간과 고라니의 공존이 필요한 시기로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고라니, 또 고라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많은 야생동물, 이들은 후세에 우리가 물려줄 귀중한 자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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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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