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마구 먹이는 한국

[안종주의 안전사회] 응답하라, 농식품부

"살충제 계란 파동, 남의 일 아니다"(<프레시안> 8월 11일자 칼럼)라고 한 필자의 지적이 사실이 됐다. 충격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4일 한밤중에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양계 농가에서도 유럽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계란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경기도 남양주 한 산란계 농장 계란에서 검출됐다고 밝혔다.

또 피프로닐과 함께 비슷한 용도의 살충제로 닭에 사용되는 비펜트린 성분도 경기도 광주와 전북 순창 등 산란 양계농장 2곳에서 검출돼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생산해온 계란은 적어도 4~5만개가 돼 만약 열흘 동안 유통됐다면 50만 개, 한 달 동안 유통됐다면 150만 개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계란 안전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계란이 안전성 여부와 관계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동안 먹은 계란은 안전한 것인지, 집에 사다 놓은 계란은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지, 아니면 폐기처분해야 하는지 불안에 떠는 소비자들과 네티즌들이 정부에 불만 섞인 항변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살충제 계란을 먹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몸의 이상 여부를 진찰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오기도 한다.

살충제 계란 대란, 농식품부 홈피는 너무나 한가해

국민은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값비싼 계란을 몇 달째 사먹고 있는데 여기에다 유해 계란 생산·유통 문제까지 터지자 축산식품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를 심하게 질책하고 있다. 하지만 축산식품 안전·생산관리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유해 살충제 계란 파문이 터진 지 이틀이 지났음에도 홈페이지는 평소처럼 장관 홍보 코너, 농촌경관사진공모전 소식, '하늘과 맞닿은 목장, 양떼와 함께 걸어볼까' 등 너무나 한가로운 소식으로 가득 채워 놓았을 뿐 살충제 계란 관련 팝업창도 마련하지 않았다.

위기가 발생했음에도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계란 살충제 대책반의 최고책임자도 장관이나 차관이 아닌 실장급으로 했다. 15일 오후 5시 30분 기자회견도 식품산업정책실장이 했다. 이날 오후 4시 김영록 장관 주재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했다는데 정작 기자회견 때는 장관이 보이지 않았다. 나쁜 일로 국민 앞에 얼굴이 비치는 것을 꺼린 것일까? 위기의 규모와 성격, 유해 살충제 계란이 몰고 올 파장을 간과한 것이다.

계란과 계란 가공품이 우리 국민 사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망각한 대응이다. 국민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Q&A도 만들어 팝업창에 올리고 장관이 직접 출연해 국민과 소통하는 긴급 동영상도 제작해 15일 오후 늦게부터는 홈페이지에 올렸어야 하는데 정말 답답하다.

제대로 된 설명과 정보가 싹 빠진, 내용 부실 보도자료

만약 유럽에서 피프로닐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소비자들은 지금도, 그리고 일 년 내내 유해 살충제를 매일 먹었을 터이다. 15일 농림식품부가 내놓은 '국산 계란 안전 관리 대책'은 4쪽짜리로 정보 양이나 질의 면 모두에서 정말 형편없다. 대응조직도 한쪽을 빼면 3쪽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내용의 대부분이 빠져 있다.

첫째,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란 살충제 성분의 독성 정도와 발암성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부족하다. 살충제 성분들의 급성 독성 정도와 증상, 그리고 만성 독성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다. 이 두 살충제 성분 모두 미국 환경청은 발암가능물질(possible human carcinogen), 즉 그룹C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세금을 내어 공무원의 월급을 주며 부리는 국민은 친절한 농림식품부를 원하는데 너무나 불친절하다. 세금 내기가 아깝다. 소비자들은 기준치 이내의 살충제가 함유된 계란은 마구 소비해도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어 한다. 또 어린이나 노약자 등 안전취약계층 별로 살충제 계란 소비 정도와 유해 발생 정도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살충제 계란 3개 농장, 언제 어디를 통해 유해 계란 유통했는지 밝혀야

둘째, 문제가 된 산란계 농가(경기도 남양주·광주, 전북 순창)에서 언제부터 피프로닐 살충제와 비펜트린 살충제를 사용해왔는지, 여기서 생산된 계란은 그동안 어디 어디를 통해 얼마만큼 유통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유해 살충제 계란 최종 판매처를 파악해 이곳에서 특정기간 동안 유해 계란을 구입해 먹은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정부가 양계 농장주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또 살충제는 방제업자가 닭 사육장에 뿌렸는지, 아니면 농장주인이 직접 살충제를 구매해 뿌렸는지, 구매했다면 어디에서 언제부터 얼마만한 양을 구매했는지에 대한 조사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보도자료와 대책에서 이번 파문과 관련한 알맹이는 죄다 빼고 껍데기만 늘어놓았다. 보도자료에 이런 내용을 모두 담기 어렵다면 보도참고자료를 통해서라도 소비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문제가 된 3개 산란계 농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피프로닐와 비펜트린 계란 잔류 검사를 한 적이 있는지, 안 했으면 왜 하지 않았는지, 했으면 언제 했는지에 대해 농림식품부는 지금이라고 밝혀야 한다. 아울러 올 들어 실시했다고 하는 계란 피프로닐 잔류 검사는 전체 산란농가와 육계 농가를 대상으로 했는지, 선별적으로 했다면 어디를 했으며 왜 선별적으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넷째, 살충제를 산란계 농가에서 주로 뿌려왔다면 일 년 내내 뿌리는지, 아니면 여름철에 주로 뿌리는지, 즉 계절과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또 살충제를 제조·판매하는 곳에 대한 조사를 벌여 이들이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같은 살충제를 언제부터 어디에 얼마만한 양을 팔아왔는지 추적 조사해야 한다. 이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검찰이나 경찰 수사를 통해서 따로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사건과 사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에서는 이미 본격 수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다섯째, 계란뿐만 아니라 이들 유해 살충제를 사용해온 산란계 농장에서 직접 또는 중간도매상을 통해 계란가공품이나 난단백 등이 들어가는 각종 식품과 과자 가공업체 등에 직간접으로 유통한 일은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계란을 전수 조사하고 그 많은 계란가공품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보다 이런 식의 조사가 행정 낭비와 시간·비용 낭비를 줄이고 훨씬 더 신속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유럽에서 들여오는 수입 난가공품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조사한 뒤 이를 국민에게 안전 여부를 알려야 한다.

부적합 농장 처벌과 함께 조사 늑장 부린 직무유기 농식품부도 감사해야

여섯째, 농식품부는 15일 이번에 드러난 3개 농장을 포함해 앞으로 부적합 양계 농장을 적발하게 되면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에서 지난 7월 하순부터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기 시작했음에도 왜 농식품부는 즉각 산란계 농장 살충제 잔류 검사를 벌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검찰 또는 감사원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 피프로닐 등 살충제 성분이 국산 계란에서 검출되고 나서야 농림부는 부랴부랴 전수조사를 벌이기로 하고 3천 마리 이상 기르는 양계 농장에 대해서는 사흘 안으로 모두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사흘 만에 할 수 있는데도 왜 이를 지금까지 게을리 한 것일까? 유럽에서 일대 파문이 일어난 8월초에 축산안전당국이 지금처럼 총력을 기울여 조사를 했더라면 적어도 열흘 이상 일찍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터이다.

농식품부는 이상과 같은 6가지 질문에 대해 응답할 책임이 있다. 국민은 기업이나 축산 농가를 믿고 계란이나 닭 등 육류를 소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축산식품 안전관리를 믿고 식탁에 오르는 계란이나 닭, 난가공품 등을 먹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응답하라! 농림축산식품부"를 외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을 얼마나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느냐는 얼마나 잘 응답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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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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