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공장' 그곳에서는 '소설'이 만들어졌다

국정원 합신센터 허위 자백으로 3년 복역한 탈북자 허우식 씨 이야기②

"북한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하기 싫어서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는데 더 험악한 일을 당하니까 미쳐버릴 것 같더라고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래서 짜증이 나서 그냥 '너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는 식으로 말한 거였는데 그렇게 엮어버릴 줄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관의 압박에 못 견뎌 홧김에 "내가 간첩이라고 하라"고 말했던 허우식(가명) 씨. 그는 이 한마디에 결국 '간첩'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전 기사 : "이XX 간첩이지?" 따귀가 날아왔고 나는 거짓자백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센터(구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대한민국 주민등록증도 없는 놈이 인권이 있겠냐?"

"그래, 내가 간첩이라 하시오. 내가 간첩이라고 해!"

허 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조사실 밖에서 장정 서넛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들어왔다.

방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매우 큰 방이었다. 한쪽 벽면에 시꺼먼 통유리가 있었다. '저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조사관이 들어오더니 "자, 이제부터 시작합시다"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어떤 임무를 받았나?"

허 씨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아까는 제가 좀 짜증이 나서 한 소립니다. 진짜 제가 간첩이라서 한 말이 아닙니다."
"지금 장난해? 너 간첩 맞잖아, 이 XX야!"

젊은 조사관이 폭언을 쏟아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이전에 허 씨를 구타했던 대머리 조사관이었다. 쿵쾅거리며 뛰어들어온 그는 이번에도 다짜고짜 허 씨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놀란 마음에 휙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대머리 조사관은 "뭘 봐 간첩 XX야"라며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놓으라고 소리치며 발버둥 치자 대여섯 명이 들어와 몸을 누르고 팔을 묶었다. 허 씨는 억울한 마음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책상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자해를 시도했다.

"자살 못 하게 막아!"

허 씨의 몸을 결박하던 이들이 급하게 책상 위로 쿠션을 댔다. 허 씨가 울며 소리쳤다.

"나는 그저 자유를 찾아 왔는데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너는 대한민국 주민등록증도 없는 놈이다. 그런 놈한테 무슨 인권이 있겠냐."

이 말에, 허 씨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간첩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힘 없는 개인일 뿐이고 내가 지금 상대하는 건 국가인데, 국가가 나 하나쯤 간첩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저항은 의미 없는 몸부림이란 걸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정보기관은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나 다를 바가 없구나. 자기네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이 희생당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을 떠나 온 걸 후회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허 씨는 조사관들에게 협조하기로 했다. 수염 뽑힌 호랑이처럼 풀 죽어있는 그에게 처음 보는 조사관이 다가왔다.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전 조사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고향이 어딘지, 그곳이 어땠는지를 묻고, '북한의 어떤 것은 좋은 제도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지금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게 무엇입니까?"
"저는 정말로 간첩이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간첩으로 몰려서 감옥에 간다 해도, 만일 제가 가족이 없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에는 제가 데리고 오기로 한 가족이 있습니다. 제가 간첩이 된다면 저희 가족도 간첩으로 몰릴 게 아닙니까."

조사관은 퍽 다정한 말투로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과 어머님은 저희가 책임지고 잘 모셔오겠습니다. 그러니 조사에서 말씀만 잘 해주십시오."
"정말 약속해주시는 겁니까?"
"약속할 수 있습니다."

허 씨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정말로 그렇게 해줄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 겁니다. 말투에 깜빡 속아 넘어간 거죠."

▲휴대전화로 공소장 내용을 보고 있는 허우식 씨. ⓒ프레시안(서어리)

대답 못하면 조사관이 대놓고 힌트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조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가 없었다. 간첩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리 없는 허 씨는 조사관의 물음에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처음에 어떤 임무를 받았지?"
"..."
"그럼 임무를 받기 전에 사전 작업은 뭘 했지?"
"잘 모르겠습니다."
"너 맞고 싶어? 똑바로 안 해?"

조사가 진척이 되지 않자 조사관은 질문을 하는 대신 정답을 넌지시 흘렸다. 허 씨는 그럼 그것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 했다.

"자, 곰곰이 생각해 봐. 간첩이면 본격적으로 임무를 받기 전에 당연히 교육 같은 걸 받을 거 아냐? 사상 검증도 받았을 거고. 그렇지 않아?"
"네, 그랬을 것 같습니다."
"공작원이 됐으니까 윗사람도 소개받고 그랬겠지? 맹세도 했을 거고?"
"그렇습니다."

허 씨가 말문이 막혀 버벅거리면, 벌을 서게 했다.

"이 XX, 몸이 편하니까 말이 안 나오지?"

벽을 보고 하루종일 서 있게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양발 사이가 벌어지면 조사관들이 떼로 몰려와 억지로 발을 모으게 한 뒤 감시했다.

조사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거나 다름없었다. 진작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래서 "간첩 일을 하지 않았다"며 진술을 뒤집었다. 그럴 때마다 귀싸대기가 날아들었다.

"차라리 빨리 감방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제가 해본 게 아닌데 어떻게 하나하나 다 지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쥐어짜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조금만 뜸을 들이면 짐승처럼 때렸습니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조사관을 잊지 못할 겁니다."

여섯 번째 진술을 번복했을 때, 허 씨는 조사관들에게 씩씩거리며 말했다.

"당신들도 알지 않습니까.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간첩이 될 수가 있습니까. 지금 CCTV 다 찍히고 있는 거 압니다. 당신들이 나를 강제로 협박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간첩이라고 말한 게 저기에 다 찍혔을 겁니다. 그걸 나한테 보여주십시오. 그 전까지 나는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사흘 간 허 씨는 입을 다물었다. 조사관들이 CCTV가 저장된 CD를 가져왔다. 그걸 본 허 씨는 더욱 기가 막혔다.

"제가 조사관들한테 폭행당하는 장면은 다 삭제되고 저들한테 유리한 것만 남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더는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자포자기하게 됐습니다."

▲허 씨가 합신센터에서 거짓 자백한 뒤 지장을 찍은 진술서. ⓒ프레시안(서어리)

"너 이제 소설 써도 되겠어"

그때부턴 조사가 마치 토의하듯 진행됐다. 내용이 앞뒤가 안 맞으면, 허 씨가 먼저 나서서 수정하는 게 좋겠다며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허 씨는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입국한 위장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쓴 진술서는 한마디로 왜곡‧날조의 결정체였다. 진술서 속에서 허 씨는, 제대 1년 전 가족과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 보위부 비서에게 자신을 형처럼 부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비서가 허 씨에게 '제대하고 돌아오면 공작원을 시켜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제대 2개월 전 제대 명령을 받으러 평양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은 보위부 청사에 가서 충성 맹세를 하고 온 것으로 둔갑됐다.

증거 가운데에는 공작원이 된 허 씨가 읊었다던 맹세문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맹세문이란 것은, 북한 군에서 김일성 부자의 생일 아침에 하던 선서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북한에서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모두 다 아는 내용이 보위부 공작원 맹세문이 된 것이다.

조사관들에게 협조하자 대우가 달라졌다. 침실이 바뀌었다. 침대는 크고 넓었고, 벽면에는 TV가 있었다. 족발, 초밥 등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조사관들이 다 사다 줬다. 종종 옷도 새 옷도 가져다줬다.

그렇게 거의 반년이 흘렀다. 조사가 끝날 무렵 조사관들은 "너 이제 진짜 소설 써도 되겠어"라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어이가 없었어요.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본인들도 인정한다는 거겠죠. 조사를 한 게 아니라 소설을 만들었다는 걸."

ⓒ프레시안(최형락)

"진술 번복하면 감옥에서 썩는다" 끝까지 협박

2012년 1월, 합신센터를 나와 국정원 본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거기 조사관들도 합신센터 조사관들과 똑같은 말을 했다.

"말을 번복하면 안 된다. 잘못하면 감옥에서 10년이든 20년이든 썩는다. 똑바로 생각하고 대답해라."

합신센터나 본청이나 어차피 똑같은 국정원 사람이었다. 번복할 것도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고 서둘러 조사를 마쳤다.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조사관들은 마지막까지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검사도 다 알고 있다. 검찰 가서도 허튼 소리 안 해야 집도 주고 정착금도 줄 거다."

이후, 검사의 호출을 받았다. 사복 차림의 검사를 본 순간 살짝 마음이 편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실을 털어놓아 봤다. '나는 간첩이 아니라 간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번복하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어차피 이길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좋게좋게 갑시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 끊어졌다. 이제는 정말로 믿을 데가 아무 데도 없다고 확신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허 씨 변론을 담당하게 된 국선 변호사를 만났지만, 정작 변호사에게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국가가 지정해준 변호사라면 당연히 국가 편이겠거니' 하고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변호사에게 간첩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고, 결국 변론 방향은 재판부의 선처를 바라는 식으로 정해졌다.

'보위부 공작원이었던 것은 맞지만, 적화 통일을 바라서가 아니라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대한민국에서 정착하길 원한다.' 허 씨는 법정에서도 눈물을 머금고 결국 거짓을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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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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