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된 노동시장 양극화 구조로 전변했다. 특히 노조조직률이 낮아 노동인권 사각지대가 광범위해지고 비정규 노동자 규모가 1000만 명을 넘어서게 됐다. 촛불시민혁명에 힘입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비정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비정규문제 해결 핵심 과제는 규모 감축과 격차 해소, 노조조직률 제고다. 이 과제 해결을 위해선 우선 최초 계약 시점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는 '입구' 규제 전략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최악의 고용형태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 시정도 중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하기도 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공약이다. 이 핵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선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3권이 국민기본권으로 보장되지 않고선 촛불개혁은 용두사미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과 노조조직력 제고 여부가 관건이다. 한국사회 변혁의 전기가 마련된 만큼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자가 살 만한 나라’로,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통해 1% 기득권층이 독점해온 대한민국을 99%의 노동자 서민이 인간답게 사는 공동체로 뒤바꿔나가야 한다. (필자)
첫 단추 잘 꿴 문재인 정부
출발은 아주 좋다. 촛불시민혁명에 힘입어 출범한 정부답다. 권력의 속성상 초반 개혁의 틀을 제대로 짜지 않으면 위태로운데 고비를 잘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맨 처음 방문한 현장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가장 먼저 당면한 노동 의제인 최저임금을 역대 최대인 시급 1060원(16.4%) 인상하면서 양극화 해소의 물꼬를 텄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적폐가 켜켜이 누적돼 있어 객관적 조건은 만만찮았지만 촛불민심의 열망을 반영해 첫 번째 허들은 잘 뛰어넘은 셈이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일관해온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염두에 둔다면 여전히 힘겨운 상황이다. 아직 낙관은 금물이다.
1997~1998년 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치달았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지체된 채 한국 사회는 가장 나쁜 형태의 불평등 격차사회로 전락했다. 헌법기본권인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내외로 고착화됐다. 특히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이 2%에도 못 미쳐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확대는 더욱 가속화됐다. 비정규직 문제 개선에 소극적인 중앙정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도외시한 국회, 정규직 중심 조직노동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둘러싼 주객관적 조건이 사면초가에 갇힌 형국이 오래도록 지속됐다.
비정규노동 문제는 한국 사회 최대 난제다. 박근혜 정부에서 외주화와 아웃소싱에 골몰해온 기관장들이 계획에도 없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해야 하는 딜레마가 그대로 한국사회 비정규노동 문제 전반에 투영돼있다. 식민과 분단, 군사독재를 가까스로 넘어서자마자 불평등과 양극화의 암울한 함정에 빠져든 한국사회에서 구두선을 넘어선 근본적인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인원 1700만 명이 운집한 무혈촛불항쟁으로 한국현대사에서 비정규노동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지금부터가 진검승부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민주개혁정부의 실패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이전 정부보다 진전된 바람직한 방향과 원칙을 담았지만 문제점도 드러났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 등이 정규직화 유보 대상으로 명기돼 반발과 논란이 커지고 있고 무기 계약직 처우 개선을 어떻게 할지도 구체적인 계획이 모호하다. 서울시처럼 중규직에 불과한 무기계약직 제로 계획 수준의 사이다를 기대한 입장에선 고구마 대책으로 비치기도 한다. 공공기관과 중앙행정기관, 교육기관과 지방공기업 등 중앙정부가 관할하고 있는 방대한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규모와 투여 예산이 지방정부와는 다르고, 박근혜 탄핵과 파면으로 급작스럽게 치러진 대선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기본적인 예산 제약에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과 동거하면서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참여정부의 비정규노동정책 실패를 거울삼아 치밀하고 섬세한 전략과 이행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민주개혁 정부 10년,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을 통틀어 기본적으로 친기업적인 노동정책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특히 2006년 이른바 ‘비정규보호법’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개선할 결정적인 호기였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입법화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지만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한 방식의 무기 계약직 전환과 실효성 없는 차별시정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를 놓쳤다. 비정규보호법은 무기계약직을 양산해 고용안정 효과가 없진 않았으나, 노동계의 우려대로 초단기계약 및 간접고용 비정규직 전환(풍선 효과)을 가져와 부정적 효과가 더 컸다. 당시 참여정부의 2인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뼈아픈 실패 경험을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은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관련 권고
"헌법과 세계인권선언,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LO헌장, ILO헌장의 부속서인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선언, ILO의 제100호 동일가치근로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 및 ILO의 제111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서 인정하고 있는 노동인권의 가치와 차별금지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의 차별적 처우의 판단기준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정립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대표노동적폐 1000만 비정규직
둘러보면 비정규직은 공기처럼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바로 내 가족이고 이웃이다.
건설일용노동자, 자동차와 제철소/조선소 등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와 사외하청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지하철 청소노동자, 환경미화원, 편의점/PC방/주유소 알바노동자,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채권추심원, 골프장 경기보조원, 화물트럭 기사, 덤프트럭 기사, 레미콘트럭 기사, 타워크레인 기사, 펌프카 기사, 굴삭기 기사, 포클레인 기사,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기사, 셔틀버스 기사, 택배 기사, 물류배송 기사, 수도가스검침원, 방송시나리오 작가, 외주카메라감독, 연극배우,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헤어디자이너, 화장품 방문판매원, 음료 판매배달원, 정수기 방문점검원, 관광가이드, 미싱객공, 헬스강사, 골프레슨강사, 행사도우미, 심부름기사, 케이블방송 통신 설치수리 기사,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 KTX 승무원, 재택 집배원, 간병인,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조리사, 영양사,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사서, 돌봄전담사, 유치원방과후전담사, 방과후강사, 기간제 교사, 스포츠강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예술강사, 다문화강사, 학원강사, 대학시간강사, 직업상담사, 자동차 판매원, 마트 현금계산원, 마트 판매원 등 다종다양한 직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아틀라스처럼 떠받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1000만 명이 넘고 점증하는 임금 격차로 차별받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6년 8월 기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전체 임금노동자 1963만여 명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전년 동월(2015년 8월) 대비 7만여 명이 늘어난 870여만 명으로 사상 최대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44.3%로 지속적으로 소폭 하향 추세이지만 비정규직 규모는 2011~2013년 감소한 후 2014년부터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 정책의 영향으로 시간제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 2016년에는 전년 대비 24만6000명(14.7%)이나 증가했고 간접고용도 최근 2년 연속 확대돼왔다. 게다가 최소 100여만 내외가 누락된 간접고용 비정규직(불법파견 등 포함)과 150여만 명 이상이 통계에서 빠지는 것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을 염두에 둔다면, 실제 한국 사회 비정규직 규모는 1000만 명을 초과한다.
<그림 > 비정규직 비율 추이
역진 불가 양상의 임금 격차 심화도 심각하다. 전체 임금노동자 월평균임금은 237만원, 정규직 월평균임금은 306만원, 비정규직 월평균임금은 150만원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48.9%에 불과하다. 2010~2012년 임금 격차가 감소하다 2014년 이후 3년 연속 다시 격차가 점증하는 추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월평균 임금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기는 하지만, 두 고용형태 간 임금격차는 2001년 78만원에서 2016년 156만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그림 > 정규직과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 추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 전략과 해법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규모 축소와 함께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노동조건 격차 해소,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 제고다. 이를 위해선 전략을 잘 수립해야 한다.
첫째, 출구 전략에서 입구 전략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재벌 편익 중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권익 중심으로 근본적인 정책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한정 없이 늘려놓고 줄여나가겠다는 ‘출구’ 규제 전략인 기간제한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실패한 만큼, 최초 계약 시점에서 비정규직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는 ‘입구’ 규제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가장 나쁜 비정규직 고용형태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부터 시정해야 한다. 직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왜곡되고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하향 평준화된 요인도 최악의 노동권 박탈 고용형태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이 늘어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돼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셋째,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전복 위기의 대한민국 노동시장 구조에서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 제고는 공생을 위한 필수적인 평형수다. 중앙정부와 국회, 노사가 함께 비정규직 및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노조 조직률 제고에 합력해 대등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해야 한국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비정규직 핵심 해법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담겨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노동 관련 공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노동 입법화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은 상시지속 업무인 경우 최초 취업단계에서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원칙으로 비정규직 규모 감축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차별시정의 대원칙으로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줄이는 핵심 방편이다. 양대 공약은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노동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서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화를 실현하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차별시정의 원칙을 정립하는 초기업 단위 동일가가치노동 동일임금 입법화가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다.
이 두 핵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선 재벌과 관료, 보수언론 등 수구세력의 조직적 반발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과 정부 각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동력도 순식간에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노동조합 바깥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익이 중요하다. 노동3권이 국민기본권으로 보장되지 않고선 촛불개혁은 용두사미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과 노조조직력 제고 문제다.
관건은 노조 할 권리 신장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 간 대등한 역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갑을관계 혁파는 불가능하다. 노조혐오가 노골화된 사회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시로 침해되고 전체사회 노동인권은 하향평준화가 필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는 헌법기본권인 노동3권으로 보장돼 있지만 한국 사회에선 심각한 수준으로 제약돼왔다. 특히 노조가입률 2% 내외로 무권리 상태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신장이 화급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각성한 대단위로 조직된 노조운동이 없다면 몽상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취약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보완되어야 한다.
87년 6월 시민항쟁을 이어간 것은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대거 결성된 노동조합의 힘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계급인 노동자들이 시민권을 얻었고 민주노총 결성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지 못한 채 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노조운동은 총자본과 권력의 위세에 기 눌리고 포섭됐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전 방위적인 사회복지와 기업복지 차별에 시달리는, 전체노동자의 과반이 넘는 비정규 문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한 불평등 해소 대안은 분명하다.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되고 합당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 비로소 한국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성패의 열쇠는 대통령의 차질 없는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의지와 함께 파트너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노조운동의 올바른 강화 여부에 달려있다.
정글을 공동체로
누구도 예기치 못한 촛불시민혁명이 열망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일상의 노동이 바뀌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거리와 광장의 촛불이 일터와 골목으로 확산돼야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대폭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한국사회 일대변화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새 정부의 개혁동력이 유지되고 있을 때 강력하고 끈기 있게 현실을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실패 경험을 밑거름 삼아 초심을 유지하며 공약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한국사회 변혁의 전기가 마련된 만큼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노동자가 살 만한 나라'로, 재벌 편익 중심 사회경제구조에서 다수의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서민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경제구조로 바꿔가야 한다. 무엇보다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통해 1% 기득권층이 독점해온 대한민국을 99%의 노동자 서민이 인간답게 사는 민주공화국으로 뒤바꿔나가야 한다. 정글이 된 승자독식 천민자본주의를 함께 상생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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