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공약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해야 한다"

[인터뷰] 교육평론가 이범 "첫단추 잘못 꿰...체제 바꾼 후 전형 손댔어야"

올해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치르는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이 발표됐다. 수능 전 과목(7과목) 절대평가 도입은 확정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10일 수능 개편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현 2과목인 수능 등급제 절대평가 적용 과목을 4과목(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으로 늘리는 1안과 전체 7과목 절대평가(국어, 수학, 탐구택1) 2안 중 네 차례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한다고 밝혔다.

대입제도는 우리 사회 초미의 관심사다. 크게는 지금의 입시 교육제도로 과연 창의력 있는 학생을 길러낼 수 있느냐는 철학적 물음이 제기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학벌 서열이 공고한 우리 사회 시스템 문제의 온상이 입시제도라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저 출산 문제, 인구의 강남 집중화 문제를 학벌 사회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음은 온 국민의 상식이다.

그간 여러 정부가 교육제도 개선에 나섰으나, 결과는 항상 나빴다. 어떤 입시제도 개편도 심각한 사교육을 막지 못했다. 창의력 평가라는 명목하게 추가된 여러 제도는 학생을 더 옥죄기만 했다. 이제 학생들은 대학마다 차별화되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는 입시 시스템에 대비하기 위해 수능-학생부종합전형(학종)-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빠졌다.

이번 수능 개편안은 절대평가 확대 외에도 고교 1학년 수준의 지식을 묻는 '통합사회·통합과학' 신설, 직업탐구영역 수능 출제, 수능-EBS 연계 개선 여부 등의 추가 입시제도 개선안도 포함했다. 이 같은 변화가 창의력 평가, 사교육 축소, 학생부담 감소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이범 교육평론가를 만나 현 수능 절대평가 방침에 관한 입장을 들었다. 나아가 우리 사회 입시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들었다.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교육 정책을 고민하기도 한 스타 강사 출신의 이범 평론가는 이번 교육부 발표안을 두고 "노무현 정부의 입시제도 개편 실패를 반복하리라는 우려가 크다"고 평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 공약인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취지를 살리되, 변별력을 보완할 대안을 시급히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수능 개편만으로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도 했다. 대학 평준화와 입시제도 선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며, 이를 폭넓게 그리는 교육개혁 대계를 정부가 세워야만 바람직한 개혁이 가능하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에서 있었던 이범 평론가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대학입시는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다.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8일 오전 서울 중구 종로학원 본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실패 떠올리게 한다"

프레시안 : 교육부가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발표했다. 절대평가를 4과목으로 늘리느냐, 전 과목으로 확대하느냐가 핵심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범 : 누가 봐도 저 둘 중에서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1안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1안은 (상대평가 과목이 남아) 변별력이 있지만, 2안으로는 변별력이 없다. (수능을 치르고) 정시로 응시한 같은 등급 안의 수백 명 지원자 중 대학이 무슨 수로 학생을 가려내겠는가.

프레시안 : 언론 기고, 인터뷰 등을 통해 "노무현 정부 실패를 떠오르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범 :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가 2008학년도 수능부터 등급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형관리에 관한 청사진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2008학년도 정시에 수능과 논술, 내신이 전부 포함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완성됐다. 대학이 수능의 부족한 변별력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생의 입시 부담이 커졌고, 사교육 시장은 더 부풀어 올랐다.

이번 수능 개편안도 이를 떠오르게 한다. 전형관리 계획은 전혀 없이, 수능개편안만 냈다. 불길한 조짐이다.

프레시안 : 입시제도 개혁을 단계별로, 즉 1단계 '전형 계획'-2단계 '수능 개편' 순으로 정리해야 하는데, 1단계를 건너뛰고 2단계로 곧바로 가버려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범 : 그렇다. 대입 전형관리의 핵심은 두 가지다. 정시에서 수능을 어떻게 손 볼 것이냐와 수시에서 학종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다. 우선 전형관리 철학을 굳건히 하고, 이에 맞춰 전형관리 계획을 큰 틀에서 세운 후 나머지 방안을 그에 맞춰 정리해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다.

2021 수능 절대평가 도입, 새로운 대안 제시해야

프레시안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범 :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가 기존 두 가지 안에 매몰되지 말고,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이라는 문 대통령 공약을 기초로 하되 정시 변별력을 보완하는 3안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교육부 발표에 수능 변별력 강화를 요구하는 측은 물론,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을 요구하던 교육 개혁 단체도 반발했다. 핵심은 '교육이 변별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이범 : 물론 교육의 목적이 변별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의 입시 체계가 온전히 살아있는데 어설프게 이상만 갖다 붙인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을 가려야만 한다.

프레시안 : 3안은 어떤 것인가?

이범 : 정시 전형에서 수능 등급제 절대평가 결과에 내신 성적을 더하는 방안, 면접 점수를 더하는 방안, 그리고 국영수 등 핵심 과목 수능 등급제 절대평가와 기타 과목 점수제 절대평가를 병행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를 각각 3-1안, 3-2안, 3-3안이라 하자.

각 방안이 완벽한 건 아니다. 3-1안은 여전히 내신이 불리한 학생은 격차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수시는 물론 정시에도 내신이 중요해짐에 따라) 내신 관리 중요성이 이전보다 더 커져, 극단적으로는 학생들이 대입을 위해 고교 자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측이 아주 쉽다는 장점이 있다. 수능 등급에 따른 변별력 부족을 내신으로 메운다는 깔끔한 구도가 만들어진다.

3-2안은 대입 면접을 잘 관리할 경우 내신이 불리한 아이도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대학이 선행학습금지법을 잘 지켜,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질문은 하지 않도록 규제가 잘 이뤄진다는 전제가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상 대학이 고교 수준 이상의 내용을 면접 시 물어볼 경우, 심하게는 정부가 그 대학의 입학 정원까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사교육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최상위권 아이들, 강남권 아이들은 수능에 더해 면접 사교육을 받을 것이다. 사교육 시장을 잡기에 부족하다.

3-3안은 수능 자체로만 변별력까지 해결하므로 현 정부 공약을 살리면서 변별력까지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3-1안과 3-2안의 단점을 모두 극복 가능하기도 하다. 다만, 점수제 절대평가 대상 과목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학습 부담을 가진다는 부족한 점도 있다.

3-1, 3-2, 3-3안 모두 부족한 점은 있지만, 대통령 공약을 지키면서 여론에도 어느 정도 부합하면서 변별력도 일정 수준 갖춘다는 장점이 있다.

프레시안 : 점수제 절대평가는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아이들을 점수로 평가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올바른 교육 철학이 아니라는 입장과도 배치된다.

이범 : 우리나라에서 이상하게 학생에게 점수를 매기는 걸 나쁘게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선진국 대학입시 대부분이 점수제 절대평가제다. 유럽의 논술형 시험, 미국의 SAT 등이 다 점수로 학생을 평가한다. 다만 우리처럼 전국 석차 등급 등의 상대평가를 하지 않을 뿐이다.

프랑스도 점수를 매긴다. 다만, 20점 만점에 12점 이상이어야 대학 입학이 가능한 P/F 제도다. 대학이 평준화되었기에 가능한 특수성이 반영됐다.

또 하나 중요한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이 고교학점제다. 지금 입시에서만 부분적으로 가능한 선택제를 전면화한다는 내용이다. 선택과목을 확대하려면 수능 절대평가제는 유지돼야 한다. 다만, 그 안에서도 변별력을 추구할 필요는 있다. 점수제 절대평가는 이를 충족하는 방법이다.

프레시안 : 결국 입시 현장에서 변별력은 버릴 수 없는 셈인데, 그렇다면 굳이 지금의 상대평가제를 버리고 복잡한 절대평가 체제로 이행할 필요가 있나?

이범 : 상대평가제가 살아있는 와중에 선택과목제를 전면 시행한다면 아이들이 특정 과목을 듣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자.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학문은 물리인데, 선택제 하에서 학생들이 물리를 듣지 않는다. 물리 과목을 잘 하는 아이 대부분은 다른 공부도 잘 하는 아이다. 다른 아이들은 굳이 어려운 과목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이 과목을 기피하게 되는, 일종의 선택의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다양한 교육이 불가능해진다. 실제 현재도 수능 선택과목 중 물리 비율이 가장 낮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사회계열에서는 경제 선택 비율이 가장 낮다. 제2외국어 중 선택률이 가장 큰 언어는 아랍어다. 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다 중국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제가 잔존하는 한, 선택과목은 오히려 교육의 취지를 훼손한다.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박춘란 차관이 2021학년도 수능개편안 시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종이 진짜 문제

프레시안 : 현재 정시 체제의 수능 못잖게 교육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건 수시 전형의 핵심인 학종이다. 강남권에는 학종 관리 사교육 학원이 성행한다. 학종의 폐단은 무엇인가?

이범 : 일부 교육 개혁론자 중 학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수능과 달리 정성평가 방식이라 서열화를 흐트러뜨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해가 너무 크다. 내가 이명박 정부 시기 입학사정관제를 반대한 이유다.

학종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학생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 학종으로 대학에 가려면, 학생은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를 전부 준비해야 한다. 내신에 더해 진로활동, 독서, 소논문, 경시대회 등 학생부에 기재할만한 '스펙'을 열심히 쌓아야 한다. 고교 생활이 지옥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둘째로, 불공정성이 크다.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교육 일선에 있는 사람들, 특히 학생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낀다. 비교과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한다. 부모의 직업, 소득, 문화자본 등이 학생의 비교과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눈앞에서 학종의 폐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 아이가 특정 학원을 다니더니, 전략적으로 어떤 경시대회에서 상을 쓸어간다. 그 꼴을 다른 아이들이 다 본다. 특별히 내신이 좋지 않던 한 아이가 300만 원짜리 소논문 컨설팅을 받더니 버젓이 학생부에 기록할만한 자료를 제출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이 느끼는 불공정성의 정도가 매우 크다.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창의적 교육을 추구한다는 명목의) 비교과가 지금 사교육 시장을 부풀리는 온상이 된다는 뜻이다. 대학 선발에 비교과를 반영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을까?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미국은 입학사정관제 100%다. 영국이 비교과를 아주 조금 반영한다. 우리나라 교육학자 대부분이 미국에서 유학했기에 이처럼 보편적이지 않은 대입 제도가 만들어졌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대학교 전부 성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한다. 대입에 비교과를 반영하지 않는다.

셋째, 학종은 교사에게도 매우 큰 업무 부담을 준다. 우리나라 학생부 기재 항목이 너무 많다. 다른 웬만한 나라보다 훨씬 많다. 입시가 인생을 가른다는 인식이 짙은 우리 실정에 교사는 학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써야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특히 학종 지원자가 늘어남에 따라 교사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

프레시안 : 학종의 문제점은 학부모라면 누구보다 심각하게 느낄 것이다. '차라리 본고사 부활이 낫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EBS의 6부작 다큐멘터리 <대학 입시의 진실>도 학종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수능 절대평가 도입 논란으로 현재 학종은 그리 이슈화되지 않는 듯하다.

이범 : 정부가 전형 관리 밑그림을 그렸다면, 학종 개편안부터 꺼냈어야 한다. 아쉬운 건 문 대통령 대선공약집에는 학종에 관한 입장이 있다는 점이다. 대선공약집을 보면 '사교육 유발하는 수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말이 있다. 수시 제도가 바로 학종이다.

그런데 왜 학종과 관련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을까. 현 정부가 대입 전형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시야를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재고·과학고 손보고,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해야

프레시안 : 앞서 전형관리 밑그림을 먼저 그린 후, 학종과 수능 개편안을 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형관리 계획을 그린다는 건 결국 우리 입시 체계를 전면 손질한다는 뜻이다.

이범 : 입시 체제 개편을 위해 필요한 방안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하려면, 우선 고교 교육 체계 개편안부터 발표한 후 전형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입시제도 개혁을 추진하려면, 우선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손봐야 한다.

자사고, 외국어고보다 이 학교(영재학교, 과학고)가 입시 사교육의 진정한 온상이다. 1인당 입시 사교육비가 가장 크다. 대치동 학원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재학교와 과학고 입시 준비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입시를 준비하지 않으면, 천재가 아닌 한 입학이 불가능하다. 입시 사교육 폐단의 뿌리인 영재학교와 과학고부터 손본 후 자사고와 외국어고 문제를 다뤄야 한다.

어떻게 이들 학교를 개혁할 것이냐. 우선 선발 방식을 손보는 방안이 있다. 사교육으로 수학올림피아드를 일찌감치 준비하지 않으면 입시 문제를 풀 수 없는 현 방식을 바꿔야 한다.

학교 운영 방식을 바꾸는 근본적 방법도 있다. 쉽게 말해 영재학교와 과학고 개념을 위탁교육 기관으로 바꾸자는 뜻이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일선 학교에서 연구 능력이 뛰어난 아이를 교사추천과 면접 등으로 선발해 1년 단위로 연구 집중 교육을 하되, 졸업장은 본래 학교에서 주자는 얘기다. 소속은 일반 학교이지만, 일반 고교가 불가능한 연구 지원만 하는 전문 기관화하자는 뜻이다.

다음으로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시범학교) 부분 도입 공약을 그대로 따라선 안 된다. 전면 도입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상대평가제가 유지되는 한 고교학점제(선택과목제 전면화)를 도입하면 어려운 과목은 학생들이 기피하게 된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일부 학교에만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연구학교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수학을 필수이수단위(10단위) 이상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을 계속 선택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2, 3학년이 됨에 따라 내신이 떨어질 것이다. 기존 성적 하위권이던 아이들이 전부 수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수학을 잘 하는 아이들 내신이 더 불리해진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것이다.

실제 사례가 있다. 성공적 자율형공립고로 꼽히는 학교가 서울 구로구의 구현고와 중랑구의 원목고, 부산 영도의 부산남고 등이다. 이 학교가 노무현 정부 후반에 개방형자율학교로 설립됐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율형공립고로 바뀌었다.

구현고가 학생들에게 교과 선택권을 줬다. 부분적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내신 상대평가제가 유지되니 아이들의 대입 실적이 매우 떨어졌다. 결국 구현고가 지난해 아이들에게 줬던 선택권을 회수했다.

내신 상대평가제가 유지되는 한 연구학교는 입시 기피 학교가 된다. 심한 경우, 연구학교에 배정된 학생 중 상위권 일부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거나 자퇴하는 정도의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현 내신 상대평가 체제에서 도입하려면 전면적으로, 보편적으로, 하지만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국영수사과 등 주요 과목에 한해 모든 학생에게 매 학년마다 수강하고픈 과목을 선택할 권한을 주는 1단계, 선택 과목을 제2외국어로 확대하는 2단계, 미술 등 특정 대학에 진학할 학생에게 필요한 과목까지 선택 대상에 포함하는 3단계로 나눠 도입할 수 있다.

이렇게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어찌됐든 전국 모든 학교에서 수포자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특정 학교 학생만 불리하지 않다. 특정 과목 내신은 자연히 이 같은 점이 반영되어 대학 입시에도 고려된다.

이 같은 두 가지 방안에 관한 정부 개혁안을 발표한 후, 전형관리 계획을 공표하고 그에 따른 수능 개편안과 학종 개선안을 발표했어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프레시안

'인 서울' 사립대, 국·공립 네트워크에 포함하자

프레시안 : 교육 개혁 논란이 매 정부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사회가 대학 간판에 따라 서열화되었고, 이 같은 구조가 사회 전반에 부작용을 낳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평준화 목소리가 더는 일부 진보 지식인의 주장만이 아닐 정도다.

이범 : 문재인 정부는 대학 평준화와 입시제도 선진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학 서열화를 손보지 않는 한, 어떤 창의적 교육도 사교육 부풀리기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한국이 유럽처럼 대입 시험을 논술형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없다. 바꾸는 순간 사교육이 폭발한다. 미국처럼 SAT를 공교육과 분리하는 방안도 있다. 미국의 SAT는 간단히 말해 우리 토익과 같다. 학생이 아무 때나 알아서 응시하면 된다. 여러 차례 봐도 된다. 공교육이 SAT를 커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수능도 SAT처럼 바꿀까? 안 된다. 역시 사교육이 폭발한다.

대학 평준화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국·공립대학을 네트워크화해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도입하자는 게 후보 시절 문 대통령 주장이었다. 하지만 최종 공약에서 빠졌다. 서울-수도권에 국립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인구의 절반이 서울-수도권에 몰려있는데, 국립대 입학 정원은 법인화한 서울대를 포함하더라도 1만여 명밖에 안 된다.

이에 관해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의 밑그림을 그린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공영형 사립대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간단히 말해 정부가 사립대를 인수해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핵심 권한을 내주면서 공영 학교가 되려는 대학이 수도권에 있겠나? 재정이 취약한 지방 대학뿐이다. 이 모델로는 대학의 네트워크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내 주장이다.

나의 대안은 사립대의 핵심 권한인 재정운영권과 인사권을 보장하고, 대신 학생선발권을 정부가 가져오되 그 급부로 재정지원을 늘려주자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국·공립대뿐만 아니라 서울 사립대까지 네트워크에 끌어들여야 한다.

학생선발권과 재정지원을 맞바꾸는 건 사립대로서 매력적 제안이다. 정부 연구비 지원이 늘어나면 세계 대학 순위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방은 특히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서울-수도권은 그에 더해 사립대까지 끌어들여 전국 네트워크화해야 한다.

다만 이 모델도 연·고대와 같은 사립대 서열의 정점 학교는 반드시 끌어들여 네트워크화해야 성공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채 서울대와 나머지 국·공립대, 서울 일부 사립대만 네트워크에 포함한다면 연·고대가 새로운 서열의 정점이 될 뿐이다.

미국이 이런 경우다. 아이비리그가 서열의 최정점이고, 그 바로 아래에 주립대가 있다. 잘못하면 사립대가 최고 서열을 유지하고, 국공립대와 수도권 일부 사립대 네트워크가 다음 서열을 유지하는 식의 새로운 서열 체계가 만들어진다. 서울 지역 핵심 사립대를 끌어들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곧 고교 졸업자 수가 40여만 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 중 15만 명 정도만 공동선발 체제에 포함시킨다면 사교육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입시 경쟁 부담이 덜해지니까.

앞서 얘기한 2021 수능개편안에 관한 대안 모델 등은 결국 급한 불을 끄는 수준의 입장이다. 근본적으로는 입시 선진화와 대학 평준화를 추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이런 교육 개혁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프레시안 : 이건 국가 수준의 과제인데, 쉬울까?

이범 : 어느 나라나 국가적 어젠다는 있다. 한국에서 고교 교육까지는 대체로 평준화가 내셔널 스탠더드인 듯하다. 매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실시하는 여론 조사를 보면, 고교 평준화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서너 배 큰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 고교 평준화 찬성 학부모 비율이 73.0%고 반대는 17.3%다.

대학은 다르다. 우리는 서열화에 익숙하다. 이를 바꾸려면 국가 어젠다 수준에서 논의해야 한다. 대학 평준화 공론을 만들 지렛대로 나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꼽는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려면 대학 평준화 정도의 과제를 꺼내들어야 한다.

이런 고민이 대선 시기 문재인 캠프 내에서도 많이 논의되었지만, 공약 차원으로 무르익지는 못했다. 지금이라도 논의해야 한다. 앞서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말했지만, 바꿔 생각하면 겨우 첫 단추다. 지금은 쉽게 수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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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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