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은 왜 촛불을 들었나?

[하승수 칼럼] 정치개혁으로 진화하는 촛불

지난 8월 8일 저녁 제주시청 앞에서는 다시 촛불이 불을 밝혔다. 50여 명의 제주도민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는 제주의 시민이며, 지역 정치인들을 믿고 책임과 권한을 빌려준 주권자이다. 또한 행복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했던 촛불 시민이다."

이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최근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도의원 비례대표 축소 발표 때문이었다.


지난 7월 20일 제주도지사, 제주 지역 국회의원 3명, 제주도의회가 합작해서 제주도의회 의원 41명 중에서 7명이던 비례대표 의석을 5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었다. 여기에 대해 제주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비례대표 축소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던 오영훈 국회의원이 법안발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비례대표 축소는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방안이기에 여당 내부에서도 지지 의원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비례대표 축소 방침은 보류되었지만,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근본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정치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시 촛불을 든 것이다.

이것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지방선거제도는 표의 등가성을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투표할 때에 '1인 1표'라는 착각에 빠져서 투표하지만, 실제로 내가 던진 표가 의석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지방선거는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표의 등가성을 완전히 깨뜨리는 선거제도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의회 선거의 경우에, 새누리당이 55.46%를 득표했는데, 의석은 22석중에 21석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는 상승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한 표의 가치는 5분의1로 떨어졌고, 통합진보당, 노동당, 정의당을 지지한 표는 전부 사표가 되었다.

<표> 2014년 울산시의회 선거 결과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역구에서 승자독식의 방식으로 대부분의 지방의원, 국회의원을 뽑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는 30%를 얻든 40%를 얻은 1등만 하면 당선이 되고, 나머지 후보를 찍은 표는 전부 사표처리가 된다. 그래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울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일들은 늘 일어나왔다. 제주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2014년과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새정치민주연합과 민주당이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많이 얻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45.3%의 득표율로 36석 중 22석(의석비율 61.1%)을 차지하여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많이 얻었다.

선거 때마다 이득을 얻는 정당은 바뀌지만, 거대정당이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많이 획득하는 현상은 늘 반복되어 왔다. 반면에 소수정당은 상당한 득표를 해도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2석에 그치는 결과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20.1%를 득표했지만, 제주도의회 내에서 의석은 2석(의석비율 5.56%)을 얻는데 그쳤다.

이제는 이런 방식의 불공정하고 표심을 왜곡하는 선거는 그만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선거는 결국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채워, 의회를 특권집단으로 만들고 있다. 대안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만약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30%를 얻은 정당은 30% 의석을, 20%를 득표한 정당은 20% 의석을, 5% 득표한 정당은 5% 의석을 배분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회와 지방의회가 표심 그대로 구성될 것이다. 정당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을 개발하고 정책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누적되어 있는 삶의 문제를 푸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제주의 촛불은 8월 8일에 시작해, 8월 11일, 8월 15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저녁 7시반에 제주시청 앞마당에서 시민들이 정치변화를 바라는 촛불을 밝힐 것이다.


제주에서는 비례대표 축소 사태 때문에 촛불이 먼저 시작되었지만, 내년 6월의 지방선거는 전국 어디에서나 치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20년에는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그냥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려면, 내가 던진 표가 어떻게 계산되는지를 챙겨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주권자'가 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여성은 여성의 정치, 청년은 청년의 정치, 노동자는 노동자의 정치, 농민은 농민의 정치, 장애인은 장애인의 정치를 하는 진정한 특별자치도에서 살 것이다. 제주 시민이 지핀 불씨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8월 8일 제주 촛불 기자회견문 중에서).

▲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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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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