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출판문화를 정글 논리에만 맡기지 말아 주세요

[작은책] "도서 정가제는 사라져 가는 지역 서점의 생명 연장 수단이 아니다"

달님,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서점에서 책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열여덟 해.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제가 몸담은 지역(동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합니다. 이미 공룡이 돼 버린 인터넷서점과 엄청난 자본을 앞세운 대형 서점의 지역 진출로 제 일터와 같은 지역 서점은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미 문을 닫았거나 폐업 위기에 놓인 곳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언제까지 서점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언론에서 달님이 책을 좋아하신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이렇게 용기를 내 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2014년 11월 21일부터 3년 한시법으로 시행되었던 현행 도서 정가제가 개정되는 해입니다. 당시 통과된 도서 정가제는 막대한 할인을 앞세워 시장을 집어삼키던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의 공격적인 지점 확장으로 제 일터와 같은 지역 서점이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던 시기에 시행되었습니다. 정가 1만 원짜리 책이 있으면 인터넷 서점에서는 정가의 35퍼센트에 공급받아 반값 할인으로 판매하는데, 저희와 같은 서점에서는 7~80퍼센트에 공급받아 9000원에 판매합니다.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은 저와 동료들에게 '반값에 팔리는 책을 제값 다 받고 파는 도둑놈들'이란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곡된 시장 질서를 바로잡자는 도서 정가제 논의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도서 정가제 논의는 부분적인 할인을 허용하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결론 나고 말았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대형 서점의 지역 진출과 인터넷 서점의 중고 오프라인 서점 확대로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면 완전 도서 정가제에 힘을 실어 줄 거라 기대했지만, 장관님마저도 할인 없는 완전 도서 정가제는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지역 서점의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료들과 광화문 1번지에 가자는 이야기도 하고, 청와대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3년 전에는 반값 할인만이라도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도서 정가제(사실상의 부분 할인제) 시행에 따라 반값 할인이 없어지고 할인율은 10퍼센트 할인에 5퍼센트 마일리지 적립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주던 경품도 제한을 받았고, 최저가 입찰을 하던 도서관이나 관공서 납품도 할인율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반값 할인만 없어졌지 각종 편법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할인율 제한이 있지만, 인터넷 서점은 각종 카드사, 통신사 제휴 할인이라는 방법을 동원해 도서 정가제를 교묘히 피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들을 혹하게 하는 굿즈(판촉 상품)나 지역 서점에선 구할 수 없는 한정판 단독 판매와 같은 방식으로 여전히 불공정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 서점과 동네 서점을 찾는 독자들은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도서 정가제가 시행될 때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선전용 구호가 나왔었습니다. 반값 할인을 받아 책을 구매하던 독자들에게 지역 서점은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과연 지역 서점이 살아났을까요? 단언컨대, 아닙니다. 현행 도서 정가제의 최대 수혜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입니다. 여전히 그 서점들은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할인(행사)을 전제로 한 낮은 공급률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왔는데 정가제 시행으로 10퍼센트 할인에 묶이게 되자, 오히려 수익률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출판사들이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공급률을 올리는 시도를 했지만, 이미 출판 유통 시장 매출의 80~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서점들과 출판사의 싸움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출판 유통 시장을 장악한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들은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어 하는 출판사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진열, 노출의 대가로 터무니없이 비싼 광고비를 받고 있습니다. 매대 장사를 하는 서점도 문제지만 베스트셀러만 만들 수 있다면 시장 왜곡은 상관없다는 출판사의 과욕이 부른 결과입니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 중에는 자본력이나 영업력이 없어 새 책을 내고도 진열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서가에서 사라지는 책이 부지기수입니다.

완전 도서 정가제는 사라져 가는 지역 서점의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1981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에서는 자크 랑 문화부장관의 이름을 따서 '랑법'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도서 정가제를 제정했습니다. 랑법의 취지는 이렇습니다.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다른 일반적 상품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장 원리를 수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도서 정가제의 목적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해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적 목적으로 한다. 또 도서가 도시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 전국적 서적 유통망을 유지하고 어려운 작품들도 출판할 수 있도록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한다"입니다. 랑법을 시행하기 전 프랑스의 도서 유통 시장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출판 유통 시장은 마치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시장 논리만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반에서 정신문화의 결정체인 출판문화가 꽃필 수 없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왜곡된 출판 유통 시장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지금 대한민국 지역 서점들은 왜곡된 출판 유통으로 인해 절멸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부디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정글의 논리에만 내맡기지 마시고, 인터넷 서점과 지역 서점, 대형 서점과 동네 서점이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은평구 불광동에서 서점일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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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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