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병원에서 결핵에 감염됐어요!"

[안종주의 안전사회] 병원감염에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해야

병을 옮기는 병원이 무섭다. 최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신생아와 영아가 무더기로 아기들을 돌보던 간호사한테서 결핵에 감염되면서 병의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아니라 외려 질병을 감염시키는 감염기관이란 오명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치명적 집단 병원감염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데도 예방은커녕 더욱 확산되고 있고 감염되는 질병의 종류 또한 확대되고 있어 병원은 물론 보건당국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12일 서울 노원구 모네여성병원 신생아실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결핵에 걸린 채 아기들을 돌보다 신생아와 영아들에게 결핵균을 퍼트려 현재 80명 가량이 잠복결핵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문제의 간호사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신생아실에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불거진 최근까지 이 신생아실을 거쳐 간 신생아와 영아만 무려 800명이나 된다. 현재까지 결핵 환자로 드러난 아기는 없다. 하지만 결핵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잠복결핵감염검사(피부반응검사)를 646명(80.8%)에 대해 벌여 이 중 533명을 판독한 결과 80명(15.0%)이 양성으로 드러나 치료 중이다.

신생아와 영아가 결핵균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접촉한 지 8주가 지나야 잠복기가 끝난다. 이 때문에 태어난 지 4주 이내 영아는 실제로는 감염 양성이더라도 음성으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음성인 경우에도 8주간 예방약 복용 후 2차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받아야 한다. 생후 4주 이하 영아는 12주 동안 예방약 복용 후 잠복결핵감염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독한 결핵약 먹이는 부모 심정 아나요?

갓난아이한테 그 독한 결핵약을 먹여야 하는 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아기가 결핵에 감염됐을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1세 미만 영아의 경우 결핵균에 감염되면, 즉 잠복결핵감염이 되면 실제 결핵으로 진행될 위험이 성인에 비해서 높고 중증 결핵인 결핵성 수막염과 속립성 결핵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아기에게 간 독성 등 결핵약의 부작용이 생긴다 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약을 복용케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모네여성병원 신생아실 근무자 가운데 결핵환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뒤 질병관리본부가 신생아실 나머지 종사자 15명을 대상으로 잠복결핵감염 검사 결과 2명이 양성자로 드러났다. 신생아실 근무 간호사 등에 대한 건강검진이나 감염병 환자 여부를 게을리 관리한 데서 비롯한 면도 있고 해당 간호사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안이한 판단을 한 탓도 있다.

병원에서 환자 또는 방문객이 각종 감염병, 때론 치명적 감염병에 걸리는 병원감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년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메르스(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도 대다수가 병원에서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한테서 옮았다. 항생제내성균감염이나 사스 등도 병원에서 걸릴 위험성이 높은 대표적인 감염병들이다. 병원감염의 특징 중 하나는 의사, 간호사 등 한 명의 의료인이 너무나 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돈 몇 푼 아끼려다 자살하고 감옥에 간 의사, 간호사들

사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사이 서울과 원주 등에서 일회용 주사기와 의료키트 등의 재사용으로 인해 C형간염의 병원 내 감염이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2015년 다이어트·갱년기치료·피로회복·감기치료 등의 명목으로 환자들에게 비타민 주사 등 기능성 영양주사를 처방하는 비만 치료 전문 의원을 표방했던 서울 목동 다나의원에서 C형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주사기를 버리지 않고 재사용해오다 무려 97명에게 C형간염을 퍼트렸다.

다나의원은 2011년부터 5년간 일회용주사기를 재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의료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해 병원장과 그 부인인 간호조무사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나의원 C형간염 피해자들은 민사소송을 걸거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신청을 통해 치료비와 위자료 등을 받았다.

당시 재판에서 원장 부인과 다나의원에서 일한 간호조무사들도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간염에 감염돼 이들이 병원감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다나의원의 이런 실태는 내부고발에 의해 드러났다. 이들의 제보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피해자가 지금까지도 생겼을 수 있다.

목동 다나의원 사건이 한창 시끄러울 무렵인 지난해 2월 강원도 원주에서도 매우 유사한 성격의 C형간염 병원 내 집단감염 사건이 터져 나왔다.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문제를 일으킨 원주 한양정형외과의원 원장은 자살했다.

당시 경찰 수사와 보건당국의 감염 역학조사 결과 이 병원에서 자가혈시술 등을 받은 내원객 8600여 명 가운데 놀랍게도 210명 가량이 감염 환자로 확인됐다. 하지만 원장의 사망으로 보상 받을 길이 막막해진 피해자들은 최근 정부 차원의 피해 지원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벌이는 등 아직까지 미완의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다.

병원감염 피해자들 위로가 아닌 사회적 낙인으로 이중 고통

한편 이들 피해자는 대부분 C형간염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질병이나 감염병(전염병) 환자들이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거나 낙인이 찍혀 생계와 생활 현장에서 고통을 겪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소설·수필가이자 영화감독, 문화평론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자신의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결핵, 두창(천연두), 한센병(나병), 암, 에이즈 등의 질병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이런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질병은 단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과 외침에 응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사회적 편견과 질병에 대한 낙인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타인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신적·육체적 외로운 섬에 갇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병원감염에 대해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해야

우리 사회에서 비극적이고 불행한 병원감염 사건들이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멈출 줄 모르고 잇달아 터져 나오는 까닭은 앞서 일어났던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병원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병원감염은 형식적인 의료인력 보수교육 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먼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주사기를 재사용하거나 의료인으로서 의당 지켜야 할 기본을 외면한 의료기관의 장이나 의료인, 병의원 종사자에 대해서는 면허취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할 필요가 있다.

또 병원 종사자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의료인한테서 환자나 내원객이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병원감염에 투자하지 않거나 게을리 할 경우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병원감염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병원에서 병원감염을 걱정하지 않는 안전사회가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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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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