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고리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으로 가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하지만 이 길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들은 벌써부터 문 대통령의 탈핵 정책을 흔들고 심지어 가짜 뉴스를 만들어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전 없으면 전기요금 폭등한다' 식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들이 제대로 된 수치도 계산식도 공개되지 않고 검증도 되지 않은 오류투성이 자료들이며 이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요금 인상? 팩트 체크해보니…
찬핵 정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탈핵정책으로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연달아 냈다. 그중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산업통상자원위, 인천부평구갑)은 문 대통령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전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측에 전기요금 영향을 검토하게 한 결과, 지난해 전기요금에 비해 가구당 31만4000원을 더 부담할 것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한전이 제공한 자료를 잘못 이해한 오류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산업통상자원위, 부산 남구을)에 따르면, 한전에 확인한 결과 한전은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영향 내역을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대신 정유섭 의원실에서 2030년 전력구입비가 2016년 대비 31.1조 원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따른 전력구입비 변동 단가를 한전에게 산정할 것을 요구해서 계산해주었고 정 의원이 그걸 계약 호당 연간 31만4000원이 인상된다고 다시 계산해서 주장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유섭 의원이 제시한 전력구입비가 2030년에 31.1조 원가량 늘어난다는 주장의 근거다.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얼마로 예측하느냐에 따라 전력구입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계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20퍼센트일 때 재생에너지 비용은 현재의 1킬로와트시(kwh)당 170원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만약에 현재 단가를 적용한 것이라면 이 예상치는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정 의원이 주장한 31만4000원은 대규모 기업과 마트 등에 적용되는 산업용, 일반용을 포함한 금액이므로 '가구당' 31만4000원이 아니라, '계약호당' 31만4000원이며 연간 수치다. 가정용의 경우에는 1계약호가 고압 아파트의 경우 1000세대에 해당한다.
원전 경제성을 강조하면서 원전 확대정책에 힘을 실어주던 정부 출연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도 11조6000억 원의 발전비용 증가 운운하며 탈핵 정책을 흔들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6월 20일 '신정부 전원구성안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원전과 석탄발전이 줄고 고비용의 LNG와 신재생발전이 증가하면서 발전비용이 7차 계획의 2029년 대비 약 20퍼센트(약 11조 원)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박주헌 원장은 23일 '저탄소경제 전환기의 신정부의 에너지자원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이를 주장하면서 원전과 석탄 축소 시나리오의 파급영향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역시 기존의 원전과 석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먼저, 보고서는 '틀린' 예측이라고 평가받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전력수요 전망을 전제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29년 목표 전력수요량인 65만6883기가와트시(GWh)는 2015년 2.5퍼센트, 2016년 4.1퍼센트 전력수요 증가율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2015년과 2016년 전력수요 증가율은 각각 1.3퍼센트, 2.8퍼센트로 낮아졌다. 앞으로 증가율은 정부 예상대로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과다 예측한 목표 전력수요량보다 더 많은 값인 발전량 71만5643GWh를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재생에너지 경제성을 반영하지 않고 2016년 재생에너지 단가를 2029년까지 동일하게 적용했다. 원전과 석탄에는 추가 환경비용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원전과 석탄을 옹호하고 재생에너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보고서를 이런 시기에 왜 냈을까 의심스럽다.
원전과 석탄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은?
독일은 1998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7퍼센트에서 2014년 25.8퍼센트로 16년간 다섯 배 늘어나는 동안 1kwh당 전기요금은 17.11센트에서 29.13센트로 두 배가량 올랐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내는 총 전기요금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에너지효율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전기소비량이 줄었고 그에 따라 총 전기요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했을 때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20년 전 냉장고와 지금의 냉장고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된다. 예전보다 용량은 더 커졌지만, 전기효율이 좋아져서 총 소비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산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 모터들 대수는 늘었지만 전체 모터가 쓰는 총 전기량은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전기가 필수적이지 않은 데에도 사용하는 전기의 열 소비다.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 보니, 공장에서 전기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고 고철을 녹이면서 낭비하고 있다. 이런 전기의 열 소비가 제조업 전기소비량의 절반가량이다. 산업용 전기소비는 전체 전기소비의 60%를 차지한다.
독일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당시는 재생에너지가 비쌀 때였고 그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재생에너지 단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이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01년 1330원이었던 태양광발전단가(원/kwh)가 2015년이 되면 255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170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원전은 30원대에서 2016년에 68원까지 올랐다. 심지어 재생에너지는 '한계비용 제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발전설비를 설치해 놓으면 수십 년간 바람과 태양이 에너지를 충분히 공짜로 제공해준다는 얘기다. 우리는 좋은 시기에 에너지전환을 시작하는 거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고 에너지효율과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시대적 대세다. 지금 당장 변화에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 언론에서 소란스러운 전기요금 인상 주장은 정도가 심하다. 전기요금 몇 배씩 증가한다는 건 과장이다.
우리와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선택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워낙 싸다. 그래서인지 1인당 전기소비도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높은 나라들보다 전기를 많이 쓴다. 전체 전기소비의 60%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소비 때문이다. 가정용소비는 OECD 국가들 중 낮은 편이지만 산업용 소비는 OECD 국가들 중 최고인데 비정상적으로 매우 높다.
전기요금이 싼 것은 우리가 쓰는 전기에서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원전과 석탄발전이 생산하는 전기는 우리나라 발전량의 거의 80퍼센트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 비용이 싼 것은 핵폐기물 100만 년 보관, 방사성물질 오염, 원전사고 위험, 미세먼지, 온실가스, 중금속 오염, 사회 갈등 비용 등을 발전단가에 넣지 않은 까닭이다. 싼값이 싼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싼 전기요금만 찾다가 무책임하게 1만6000톤(t)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후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시설을 짓는 비용을 최소로 잡아도 53조 원인데 이마저도 적립해 놓지 않았다. 매년 750톤의 고준위핵폐기물은 계속 늘어난다.
변화는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의 싼 전기요금을 담당하던 원전을 없애겠다고 하니 '원전 없으면 전기 어떻게 쓰냐. 촛불 켜고 살라는 얘기냐'는 협박에 불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우리와 같이 30퍼센트 원전 전기를 쓰던 독일은 15년 사이에 재생에너지 전기가 30퍼센트가 되었고 원전 전기는 13퍼센트로 떨어졌다. 비용은 곧 투자의 의미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산업에 독일 사회가 한 해에 투자하는 비용이 2011년 기준으로 30조 원이 넘는다. 우리가 내는 비용은 청년들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로 사용되고 후대 삶의 질로 되돌아온다. 매월 몇천 원의 전기요금을 더 내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닐까.
■ 에너지전환비용? 맥주 한 잔 안 마시면 된다
지난 6월 20일 환경운동연합은 독일의 탈핵을 결정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를 초청해 '독일의 탈원전, 성공비법을 나누다'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가 전한 독일의 탈원전과 에너지전환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확대하고 있는가?
- 재생에너지 확대는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독일에는 4개의 큰 전력회사가 있다. 이전에는 이 회사들의 전력생산 100퍼센트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80퍼센트로 줄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전력생산은 개인이 35퍼센트, 협동조합 프로젝트 14퍼센트, 농민 11퍼센트 등으로 주도하고 있다. 대형 전력회사들은 재생에너지의 5퍼센트만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최근에는 발전차액지원제도가 변화하면서, 대형회사에게도 좋게 제도가 변화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의 재생에너지 투자 경향이 줄긴 했지만, 최선의 제도는 큰 회사도 할 수 있고, 작은 프로젝트로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같이 가져가는 것이다. 한국 역시 큰 회사 역시 참여를 이끌기 위해 금리와 기준가격 등을 잘 설계해야 한다.
- 독일은 전력소비가 많이 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90년보다 2012년까지 가정에서 사용하는 총 전기요금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체적인 전력소비는 줄고 있다. 에너지효율이 훨씬 높아졌고, 휘발유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독일 평균 가정이 미국보다 훨씬 적게 전력을 사용한다. 효율이 더 좋고, 집도 미국보다 작기 때문이다. 산업계의 전력사용이 문제인데, 2002년 2013년에 비중의 차이도 별로 없고 총량도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이 기간에 경제성장을 상당히 했는데도 전력소비가 같이 증가하지 않았다.
- 탈핵에너지전환 필요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우려도 있다
2016년 발표자료를 보면 가계소비 중 전기요금 지출 비중은 3퍼센트인데 그 안에 재생가능에너지 지원금 0.7퍼센트가 들어가 있다. 그에 반해 술과 담배의 지출 비중은 4퍼센트다. 나는 재생에너지로 인한 비용부담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맥주 한 번 안 마시면 된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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