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범'(?) 강용석, 이들을 벤치마킹하라"

[프덕프덕] 정치생명을 걸겠다구요? 가카도 있는데‥

솔직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요. 지난 6월 국회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등이 백주대낮에 그것도 준엄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 개탄하면서 '거시기'를 거시기하자고 할 때, 솔직히 제 눈앞엔 일부 의원 나리의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불길한 예언은 꼭 현실이 되더라구요.

이번에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의혹을 최초 보도한 게 이제 막 수습을 뗀 햇병아리 여기자라고 하더군요. 강 의원은 햇병아리 기자라서 기사의 신뢰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언론 짬밥이 십년이 넘은 중견기자는 초년병 시절 높은 분들의 '아랫도리 문제'는 보도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 시절 의원 나리들의 '밤 생활'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화려했죠. 술 한 잔 앞에 두고 여대생을 상대로 허심탄회(?)하게 진로 상담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죠, 암요. 시절이 변해 이제 햇병아리 기자들에게 이런 '묵계'를 가르쳐 주지 않는가 봅니다.

▲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성희롱 파문이 일어난지 하루 만에 한나라당에서 제명당했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때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강용석

게다가 파문이 터진지 불과 하루 만에 같은 당 의원들이 '전광석화'와 같은 결정을 내렸으니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또 강 의원을 당에서 쫓아내는 '제명' 결정을 주도하고 이 사실을 발표한 이는 "대구 밤문화"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주성영 의원이었더라구요.

강 의원은 성희롱 보도를 다 부인하면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강 의원의 정치생명이 이미 끝났다고들 보는 거 같은데, 저는 솔직히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화려한 성희롱사(史)를 보면 강 의원이 낙담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2006년 2월, 돌이켜보니 그때도 선거를 앞두고 있었네요. 한나라당 최모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파문이 터졌습니다. 이 분은 간 크게도 저녁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기자를 건드렸습니다. 입을 잘못 놀린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손'을 쓰셨더라구요. 이건 성희롱이 아니라 성추행이죠. 그리고선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고 해명하셨습니다. 기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삼십년 넘게 살면서 '술집 마담'으로 오인 받은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명색이 의원 나리시더라도 '특정 여성'의 가슴은 주물러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기라 최모 사무총장도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습니다. 그때도 당 차원에서 출당과 의원직 사퇴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고가 터진 직후 최모 총장은 본인의 결백을 주장한 뒤 홀연 잠적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두문불출한 가운데 국회는 최모 의원의 사퇴촉구 결의안을 표결에 붙였습니다.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표결 결과 57%의 찬성률에 그쳤습니다. 반대(84)-기권(10)-무효(17)의 111명은 사실상 최모 총장에게 '면죄부'를 줬지요. 무기명 투표였으니 아마 내심 최모 총장이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시는 '밤 생활'을 보내시는 의원 나리들이 꽤 있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그 최모 총장은 아직도 금배지를 달고 계십니다. 사퇴 촉구 결의안 따위는 '생까고'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2008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물론 '여기자 성추행' 사건만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여당 4선 의원으로 한 자리 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정치생명이 끝난 건 절대 아니지요.

최모 총장이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는 아닙니다. 강 의원 덕분에 어제 오늘 한나라당을 '성(性)나라당'이라고 신나게 두들겨댄 민주당에도 못지 않게 정치적 생명력이 질긴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의 범행은 더 대담합니다. 본인의 집무실에서 업무 차 방문한 여성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여성이 성추행 사실에 대해 따지면서 사과를 요구하자 "늙은 오빠가 그러는 건 나쁜 게 아냐"라면서 다시 한번 포옹을 시도하려 했다고 합니다. 이 피해자에게 도청 관계자는 "미친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라"며 적당히 넘어가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라고 보기 힘든 행동이긴 합니다만, 자신이 모시는 상사를 "미친 개"에 비유하는 센스는 "대통령도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를 땄을 것"이라는 드립을 날려주신 강 의원에 버금간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사께서도 얼마전 지방선거에서 5선 도전에 성공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정치인들 중에 그깟(?) '성희롱'으로 정치생명이 절단난 분이 계시던가요? 없습니다. 암요, 없구 말구요. 공식 회의석상에서 당 대표가 인기리에 연재되던 모 신문의 연재소설을 거론하면서 "조철봉이 요즘엔 왜 섹스를 안 하냐. 너무 안 하면 철봉이 아니라 낙지"라는 민망한 발언을 하셔도, 또 다른 대표가 동행 취재한 여기자의 빰을 만져도 다 용서가 되는 게 한국 정치판입니다.

게다가 강 의원과 사돈지간이라는 가카께서도 성희롱하면 빠질 수 없는 분입니다. 대선 과정에서 '마사지걸', '관기' 등 화끈한 과거를 고백하셨는데 무사히 '큰집'에 입성하지 않았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많은 의원나리들께서 화려한 '밤 생활'을 보내시고 계실 겝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강 의원이 최모 총장을 벤치마킹해 잠시 잠적한 뒤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질 때 쯤 다시 나타나 정치생명을 연명할 수 있을지요? 참고로 제가 의원님 지역구 주민인데 저에게 '한표 꾸욱' 기대하진 마십시오.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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