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주체는 시민 모두가 되어야 한다

[신지예 칼럼] 적폐와 다시 만난 세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국민을 위로하고 있고, 국민은 그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진보적 노선을 견지한 인사들이 내각과 청와대에 자리를 잡았고,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내몰렸던 사람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 비판으로 일상이 구속될 수 있다는 공포와, 혐오로 가득했던 포털 사이트 댓글이 사라졌다. 경찰은 인권을 이야기하고,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바꿨다. 경찰을 비롯한 권력은 국민의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기만 했던 예전의 그들과 같은 존재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변신술을 보여주고 있다.

보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런 모습은 정치인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 지지 기반인 전라도 지역에서 급격하게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국민의당 구성원들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 다른 행동을 한다. 어떤 의원은 "10년간 여당 하다가 야당 되니 힘이 다 빠졌다. 우울증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아직 말하다 보면 여당, 야당이 자꾸 헷갈린다. '우리 여당'이라고 말했다가 잘못했단 걸 바로 깨달았다."는 의원도 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새로 바뀐 자리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장관 후보자의 위장 전입, 혼인신고 등이 불거지자 과거 본인들이 내세웠던 인사 배제 근거를 스스로 재해석하는 민망한 모습도 보인다.

옛날 같으면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하며 양비론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1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89.4%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을 한참 웃도는 수치다. 집권 여당의 지지율도 53.7%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더불어 사회·경제·문화 등 손 닿을 수 있는 곳은 청소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함이 생긴다. 혹시 '적폐청산'이라는 슬로건 앞에 가려진 괄호가 있고, 그 괄호 안에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닐까. 방을 하나 치우더라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순서가 있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지난 정권이 오염시킨 곳부터 청소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지난 9년 동안의 일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묵은 과거를 벗겨내는 작업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삼아 노루 몰이를 했던 것은 지난 9년 동안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밀양에서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경찰은 평택과 부안에서도 같은 짓을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 노동자가 구속되고, 목숨을 끊는 일 역시 지난 9년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정권에 줄을 대어 몸집을 키우고 비자금을 조성해 사주 일가가 호의호식한 것도, 살던 집에서 쫓겨나도 자기 못난 탓을 해야 하는 시민이 생겨난 지도 오래되었다. 이 땅을 짓누르며 썩은 내를 풍기는 적폐의 근원은 이명박근혜 정권 이전부터 형성되었다.

지금부터 거의 1년 전인 2016년 7월, 당시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는 말로 시민을 모욕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담당하는 교육부 관료 입을 통해서 이런 참혹한 이야기가 나온 것에 시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본인은 영화의 대사를 따라 한 것뿐이라고 강변했지만, 지나고 보니 권력 파탄을 암시하는 징후 가운데 하나였다. 멀리는 4.19혁명에서 시작하는,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피로 세운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는 관료집단의 속마음이 태양 아래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현장의 반대를 무시하며 한국사를 날조한 지난 정권의 태도는 단순히 한 개인과 소수 집단의 일탈이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의 혼은 비정상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약속은 2017년 6월을 살아가는 우리의 상식이다. 다들 알고 있듯, 민주주의의 어원은 '인민'과 '지배'를 합친 그리스어 'δημοκρατία(demokratia)'에서 출발한다. 현 상황에 맞춰서 생각해도 인민 혹은 다수의 지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왕과 귀족이 실체 권력을 지닌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참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민 스스로가 자신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고, 스스로가 대표자가 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원리야말로 현생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을 구축할 수 있었던 주요한 역사적 동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은 가장 심각한 단계의 반사회적인 범죄다.

작년 겨울 스스로 세상의 주인으로 살기를 다짐한 사람들이 광화문 거리를 메웠다. '촛불 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를 통해 민중은 다시금 역사의 주인이 됐다. 이 모든 일이 단지 대통령 하나를 내몰고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는 일만을 위해서는 아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이 나라 적폐청산의 주체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여야 마땅하다. 일부 전문 관료들이 진행해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청산의 큰 틀과 의제설정은 시민에 의해서 제안되고 감시되어야 과정의 공정함과 결과의 정의로움을 담보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권 정치의 무능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치 제도 논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냉정하게 말해 대의제 정당 민주주의는 고장 난 시계이다. 정밀해 보이고 쉼 없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쓸모없는 작동만 할 뿐인 멍텅구리 기계다. 여러 시민단체가 시민의회, 선거제도 개혁 등 민의를 더욱 반영하는 제도를 통해 권력의 고삐를 시민에게 돌리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권력자에게 기대지 않고 시민이 직접적이든 정당을 통해서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때론 덜컹거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훌륭한 통치자를 뽑고 그에 의한 선한 지도를 따라가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롭고 평등한 주인의 자격으로 머리를 맞대 길을 찾아 나갈 필요가 있다.

최근 함석헌 선생의 <인간혁명>(함석헌선집 편집위원회 엮음, 한길사 펴냄)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 중 "이를 갈아 결심하면 그 찌끼들이 갈려 나갈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도 차라리 혼에서 쏘는 빛이 나와 도둑 무리가 눈을 가리고 쫓겨 가도록 까지 마음을 갈고, 지식을 갈고, 힘을 갈아내야 할 것이다. 숫돌이 갈리지 않곤 칼을 갈아낼 수 없듯이 역사를 가는 혁명의 칼도 나를 갈아세우지 않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에 마음이 멈춘다.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과 그저 껍데기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주인은 어지럽혀진 것을 보고 불평하기 전에 저 스스로 치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인의 자리를 남에게 쉽게 맡겨 버리고, 관객으로 살기를 택하는 일을 영리하고 실용적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들사람(野人)들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말씀을 했다. 들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권력의 껍질에 둘러싸이지 않은 상태의 사람, 즉 우리 일반 인민을 칭하는 말이다. 앞서 말했던 민주주의의 요체인, 나를 구속할 수 있는 권력을 내 손으로 뽑을 수도 있고 나 스스로 대표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투표 한 번으로 나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 것만으로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내 종이 되어 일하겠다 약속하던 사람이 금세 돌아서 내 주인 행세를 해버리는 것이 4년마다 반복되는데도 우리는 그 실수를 반복해왔다.

지난해,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내 시위에 몰려든 경찰 권력 앞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그들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손을 잡았고, 학교 안에 깊숙하게 똬리 틀었던 권력의 욕망을 도려낼 수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가 학교의 주인임을 증명해 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권이 교체될 수 있었다.

우리가 다시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정권을 몰아낸 것은 현 여당 정치인과 진보 지식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말의 평온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거리로 나선 우리 시민의 열정과 끈기가 세상을 바꿨다. 우리에겐 좀 더 나은 오늘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미래에 대한 달콤한 약속이 아닌,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세계가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

▲ 적폐를 청산하고 새 시대 정신을 만드는 주체는 시민이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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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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