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소위 '잘 나가던' 검찰 간부들이 무더기로 좌천됐다. 검찰 내 이른바 '우병우 라인'이 초토화된 셈이다. '돈 봉투 만찬' 사건 연루자들 면직에 이은 인사 조치로, 문재인 정부의 '1호 개혁' 대상으로 꼽혔던 검찰이 개혁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는 8일 오전 이례적으로 사전 공지 없이 인사 이동 결과를 발표했다. 고검장·검사장 급 4명을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보직이나 비지휘 보직으로 내보냈다. 지난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윤갑근 대구고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이 가운데 윤 고검장은 우 전 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19기)이며, 정점식 부장‧전현준 지검장은 대학 동기다. 김진모 지검장은 우 전 수석과 대학·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로, 이들 모두 우 전 수석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보직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하는 인사 및 그에 따른 일부 보완 인사를 단행했다"며 사실상 문책성 인사임을 분명히 했다.
좌천 대상자 면면 살펴보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윤 고검장은 우 전 수석과 연이 깊다. 그는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을 파헤치는 특별수사팀의 팀장을 맡아 수사를 맡았다. 윤 고검장은 수사에 앞서 "살아있는 권력이 됐든, 누가 됐든 정도를 따라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으나 '우병우 황제 소환' 비판과 함께 부실 수사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결국 불기소로 결론 내고 넉 달 만에 팀을 해산했다.
윤 고검장은 우 전 수석과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고 이후 우 수석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윤 고검장은 대검찰청의 요직으로 이동했다. 윤 고검장은 연수원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고검장으로 승진했는데, 우 수석은 고위직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정윤회 사건 이외에도 2010년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 연임로비',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이른바 '유우성 씨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수사를 통해서는 조작된 증거로 유 씨를 기소하고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이시원, 이문성 검사를 불기소하고,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국정원 3급, 4급 등 하위 직원들만 기소하고 사건을 끝내 '부실 수사' 논란을 초래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권의 위기로 번질 만한 아주 큰 사건들을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잘 처리했다"며 "정권의 소방수로도 불리는 그런 분"이라고 비꼬기도 한 바 있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은 우 전 수석의 대학·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로, 우 전 수석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우 전 수석의 세월호 수사 외압과 관련돼 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참사 당시 허술한 구조로 인명피해를 키운 해양경찰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막으려 했다. 우 전 수석은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었던 김진모 지검장을 통해 수사를 총괄했던 변찬우 당시 광주지검장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우 전 수석과 대학 동기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힌 그는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 수사에 이어 정당해산 심판 때 법무부 측 대리인으로 나서 통진당 해산을 주도한 바 있다.
전현준 대구지검장 역시 우 전 수석의 대학 동기로 가까운 사이다. 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으로 있을 당시 광우병 논란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이 허위 보도를 했다며 기소했다.
이 외에도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팀장이었던 유상범 창원지검장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문건 내용 진위 등을 수사했던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각각 발령 났다. '돈봉투 만찬' 참석자로 감찰 받은 뒤 경고 조치를 받은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대구지검장으로 옮겼다.
이틀 만에 절단난 '우병우 사단'
전날 '돈 봉투 만찬' 연루자 징계 처분에 이어 이날 깜짝 문책성 인사가 단행되면서 검찰 내부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어제오늘 이어진 인사를 요약하면 '우병우 사단'의 청산이다.
앞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이른바 '우병우 사단' 12인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김주현 대검차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전현준 대구지검장, △유상범 창원지검장, △김기동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이동렬 서울중앙지검 3차장,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등이다.
박 의원이 지목한 '우병우 사단' 12명 중 10명이 검찰 조직을 떠나거나 좌천됐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은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7일 면직 처분을 받았다. 김주현 전 대검 차장은 지난달 22일 스스로 물러났다.
이같은 물갈이식 인사 단행은 검찰 개혁에 대한 청와대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검찰청법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검찰 개혁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 대상 1호는 검찰이라며 직접 검찰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수차례 드러낸 바 있다. 법무부도 이날 인사의 배경에 대해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를 직접 언급하며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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