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국가가 채식을 권리로 보장하다

[함께 사는 길] 동물 착취 없는 '비거니즘'이 확산되고 있다

채식 선택권이 포르투갈 공공기관을 필두로 법적 보장이라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세계적으로 채식은 국가별로 용이함이나 확산 정도에 있어 편차가 존재하지만, 개인의 신념 내지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 선택 사항으로서 일부 커뮤니티에서 채식 선택권을 배려해 주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헌데 이번을 계기로, 이제는 채식이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에 채식 선택권 보장한 포르투갈

지난 3월 3일 포르투갈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모든 공공기관 구내식당 메뉴에 있어서 엄격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6개월 이내에 포르투갈의 모든 학교, 대학, 감옥, 병원 등에서부터 채식 메뉴가 의무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번 포르투갈의 진일보는 시민사회가 일궈낸 쾌거다. 비건 운동 단체인 '포르투갈 비건 소사이어티'는 윤리적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비건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2015년 채식 선택권 보장에 대한 청원운동을 펼쳤다. 1만50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의 청원은 빠르게 달성되었다. 이에 2016년 초 포르투갈 의회에서 채식 선택권을 공공기관에서 보장하자는 내용이 논의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번 법안 통과는 좌파 블록인 녹색당과 인간-동물-자연 등 3개 좌파 정당이 합심하여 다수의 동의를 얻어낸 결과였다. 3월 3일 본회의에서 몇몇 우파들만 기권했고, 대부분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 누노 알빔(Nuno Alvim) 포르투갈 비건 소사이티 대변인은 "과거 포르투갈에서 채식주의를 언급한 어떠한 법도 없었기에 이번 법안의 통과는 비건 운동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할 것이며 사람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한편, 동물과 환경에도 장기적 관점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비건식. ⓒ김현지

비건(vegan)은 대중적으로 '엄격한 채식' 정도로 이해되지만, 단순히 먹는 것에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비거니즘(Veganism)'은 동물성 제품을 일절 사용하지 말자는 것으로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입는 것, 신는 것, 꾸미는 것 등 일체의 상품에 동물에 대한 착취를 거부하는 철학과 연관된다.

'비건'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비건 운동 단체인 비건 소사이어티가 1944년 처음 사용했다. 도널드 왓슨(Donald Watson)은 초창기 비건 소사이어티를 잉글랜드에 공동설립하면서 비건을 '유제품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정의했다. 이어 1951년 무렵부터 비건은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신조로 정의되어 자리 잡게 되었다.

일상으로 확산되는 비거니즘

비거니즘은 2010년대 들어 점점 주류화되고 있다. 비건 음식이나 비건 상품을 판매하는 비건 가게가 생겨나는가 하면, 일반 가게에서도 비건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한두 가지는 있도록 바뀌고 있는 추세다.

▲ 유럽의 한 비건슈퍼마켓에서 판매 중인 비건제품들. ⓒvegan feast catering
2011년 유럽의 첫 번째 비건 슈퍼마켓이 등장했는데, 독일 도르트문트의 '베길리시우스(Vegilicious)'와 베를린의 '베간쯔(Veganz)'가 그것이다. 2010년에는 네덜란드의 '베기타리쉐 슬라거(De Vegetarhische Slager)'가 동물 희생 없는 가짜 고기(mock-meats)를 파는 첫 채식 정육점으로 문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초식 정육점(The Herbivorous Butcher)'이라는 이름의 채식 정육점이 2016년 미니아폴리스에서 개업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2010년 식품 상표로서 비건의 의미를 수용하고, 2015년 이를 시행해 비건 상표를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유럽에서는 최근 체인 음식점의 메뉴에서도 비건 아이템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마트에서도 비건 공정을 거친 식품들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비건 선택권이 일상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와 같은 공신력 있는 시민사회의 비건 트레이드마크 역시 이 같은 비건 선택권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다. 비건 소사이어티의 비건 트레이드마크는 엄격한 비건의 기준점을 제시함으로써 비거니즘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다.

비건 트레이드마크 제품은 일체의 동물 소재 및 동물 성분을 함유해서는 안 되는데, 여기서 동물의 범주는 척추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다세포 무척추동물 등을 아우른다. 또한 동물, 동물의 부산물, 동물 파생물 모두가 동물성분으로 간주된다.

GMO일 경우 동물 유전자를 포함하거나 동물 파생물질이 들어 있으면 안 되고 성분표시를 꼭 해야 한다. 식품 공정에 있어서도 음식 준비 과정이 비건이 아닌 음식물과 분리되어야 한다. 비건 조리 도구 일체는 따로 쓰는 것을 권장하되 이것이 어려울 시 비건 조리에 앞서 최소한 조리시설 표면과 도구가 철저히 씻겨야 하고 교차오염의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지난 3월 27일 영국의 거대 소매상 'ASDA'에서도 비건 소사이어티의 비건 트레이드마크를 쓰기로 결정했다. ASDA는 영국에서 비건 트레이드마크를 사용하는 첫 슈퍼마켓이지만, Sainsbury's와 The Co-op 등은 이미 자체 브랜드 비건 제품을 유통해 왔다. 이와 관련해 비건 소사이어티의 조지 길(George Gill) 사무처장은 "비건 쇼핑이 편리해지는 만큼 비건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미국의 뉴욕 시의회는 지난 4월 만장일치로 '브루클린 구 전체에서 2017년 말까지 모든 동물성 제품들을 삼가고 피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브루클린 구의 육류 음식점 가운데 세계 비건일(World Vegan Day)인 11월 1일까지 자체 채식화 계획을 제출하지 않는 업소는 2018년 초 스태튼 섬(Staten Island)으로 이전해야 한다. 비건의 메카로 알려져 있고 윤리적 기업이 많은 브루클린이 일보 전진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영국에서도 비건 선택권에 대한 청원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청원은 모든 학교, 단과대학과 종합 대학, 병원, 감옥의 구내식당 메뉴를 대상으로 3월 15일 기준 1만6000명 서명에 도달했다. 포르투갈의 청원보다는 이미 1000명이 더 많은 셈이지만, 영국 의회에서 논의가 이뤄지려면 최소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동물 착취 없는 양심적 선언 존중받길

영국에서는 인구 2%에 해당하는 128만 명 정도가 2007년 정부 조사에서 비건이라고 대답했지만, 비건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영국의 비건은 약 54만2000명 정도이다. 독일에는 2013년 기준 약 80만 명의 비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비건은 적게는 159만 명에서 많게는 638만 명 정도로 추산 편차가 크다.

채식 선택권 보장은 동물 착취 없는 양심적 삶을 실천하려는 비건 시민운동의 일환이다. 따라서 육식에 대한 억압으로 치부하지 말고 긍정적인 의미와 그 권리 보장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격한 비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체인 음식점과 마트에서 채식 메뉴와 비건 아이템이 널리 퍼지고 있고 비거니즘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거니즘의 대중화와 비건 확산은 국가가 법으로 공공기관에서부터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있다. 비거니즘 정신과 비건 시민들의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즐겁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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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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