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조화가 틀어져서인지 자면서 꿈도 많이 꾸고 숙면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쾌하지 못한 아침을 맞는 날이 많아지고,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무거워서 자꾸만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엉킨 실타래를 어디에서 풀어야 하는지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별로 길이 보이질 않아 결국 조금은 가혹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몸이 상쾌한 상태가 될 때까지 저녁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를 '삼초(三焦)이론'을 빌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음식은 어떻게 소화되고 흡수되는가
동아시아 전통의학에는 '삼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삼초는 격막 위 가슴에 해당하는 상초(上焦)와 격막 아래에서 배꼽에 이르는 중초(中焦), 그리고 배꼽 아래 하복부에 해당하는 하초(下焦)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초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먹은 음식은 크게 네 과정을 거쳐 몸에 흡수됩니다. 먼저 입에서 침과 섞여 잘 씹혀진 상태로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간 음식은 보통 위에서 두 시간에서 네 시간 동안 머무르는데 이때 음식은 술이 익듯이 삭습니다. 음식이 삭는 동안 우리 몸에서는 술이 익어갈 때 술 내음이 생기듯이 위에서 음식이 삭으면서 기화된 어떤 것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생겨난 것 중에서 맑은 것이 격막 위로 올라가, 격막 위 인체의 상부에 해당하는 곳, 즉 상초에 필요한 진액으로 맺히게 됩니다. 이 진액의 상태를 삼초이론에서는 '맑은 이슬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술이 익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술 익는 냄새와 이 기화된 술기운들이 온도 변화에 따라 방울로 맺혀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삼초이론에 따르면, 상열하한(上熱下寒)은 아주 좋지 못한 병리적인 상태입니다. 이유는 상초의 진액이 이슬 같은 상태이므로 열에 쉽게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과정은 위에서 잘 삭혀진 음식이 소장으로 전해지면서 발생합니다. 잘 삭혀져서 소장으로 전해진 음식 중에서 상대적으로 맑은 것이 먼저 몸으로 흡수됩니다. 현대적으로 설명을 더 하면, 삼투압으로 인해 혈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혈관 안으로 들어간 맑은 것을 곡기(穀氣)라고 부릅니다. 이 곡기가 혈관 안에 있는 산소, 이를 전통의학에서는 청기(淸氣)라고 부르는데, 이 산소와 만나서 혈액이 된다고 봅니다.
세 번째의 과정 역시 소장에서 발생합니다. 먼저 상대적으로 맑은 것이 흡수된 뒤에 남겨진 상대적으로 탁한 것들이 몸에 흡수되는데, 이 상대적으로 탁한 것들은 주로 피부와 살, 근육으로 흡수되어 필요한 진액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위의 하부에서부터 소장까지를 중초라고 부르는데,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과정과 세 번째 과정을 하나로 합쳐서, 맑은 것과 탁한 것을 구별해서 흡수한다는 의미로 비별청탁(比別淸濁)이라고 부릅니다.
네 번째 과정은 대장에서 발생합니다. 소장에서 맑은 것과 탁한 것이 각자 차례로 흡수된 후에 남은 것이 대장으로 전해지는데, 이때 대장은 남겨진 진액들을 몸속으로 흡수해서 체액으로 받아들입니다. 삼초이론에 따르면, 대장이 하초의 영역이 됩니다. 이 대장에서 흡수되고 남은 것들을 술지게미라는 뜻으로 조박(糟粕)이라고 부릅니다. 조박이 직장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출되면 음식을 먹은 후에 몸에서 생기는 일이 끝나게 됩니다.
봄에 몸이 힘들면 저녁을 굶어라
삼초이론의 특징은 몸 전체의 대사를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유했다는 점이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점을 던져줍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운과 진액, 혈 등이 우리 몸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 사용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 몸에 필요한 기운, 진액, 혈 등이 어떤 조건에서 좀 더 좋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먹은 음식이 우리 몸에 필요한 기운, 진액, 혈 등으로 되지 못하고 독소나 찌꺼기로 변하는 이유 또한 알 수 있게 합니다. 힘든 봄을 위한 대안으로 저녁 굶기가 등장하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와 주로 관련이 있습니다.
봄에 힘들면 저녁을 굶으라고 하는 이유는, 겨울을 잘 쉬고 맞는 봄의 생기보다는 못하지만 조금은 더 나은 생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굶는 것은 첫째, 우리 몸에 있는 익균들을 쉬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향기로운 술을 위해서 좋은 누룩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먹은 음식들이 향기로운 기운과 혈, 진액으로 바뀌려면 음식을 분해해서 몸속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균들이 건강한 상태여야 합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음날 아침까지 보통 열일곱 시간 정도의 간격이 있는데, 이 정도 시간이면 컨디션이 좋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도 몸속에 균들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몸의 진액을 맑게 할 수 있습니다. 진액은 술을 담는 과정에 비유하면 맑은 물에 해당합니다. 저녁을 굶고 나면 신장이 밤새 쉬게 됩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는 우리 몸속에 있는 진액들은 신장이 관장합니다. 그래서 신장이 잘 쉬고 건강한 상태가 되면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진액들 또한 맑아집니다. 진액이 맑아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아침에 입안에 맑은 침이 고이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입안에 맑은 침이 고이는 것은 술을 담글 맑은 물이 준비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숙면을 가능하게 합니다. 숙면하게 되면 기가 아래로 내려가서 술통에 해당하는 위, 소장, 대장 등이 따뜻한 상태가 됩니다. 위는 우리 몸에서 소화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을 주관합니다. 위가 편하면 어깨도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집니다. 기운이 아래로 잘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두통이나 목이 뻐근한 것도 대부분 위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굶으면 위가 편해지고, 위가 편해지면 기가 아래로 내려가서 머리는 시원해지고 배는 따뜻해집니다. 배가 따뜻해진 것은 술을 담기에 적당한 온도가 확보된 것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명력을 가진 음식을 천천히 오래 씹어 먹자
이런 이유들로 저녁을 굶으면 우리 몸은 음식을 먹어서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만들기에 적합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술을 담그기에 필요한 누룩과 맑은 물과 적당한 온도가 확보된 것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조건이 확보되고 나면 두 가지가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는 좋은 음식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가진 생명의 힘으로 성장한 것들, 겉으로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생명력이 제대로 간직된 것이 좋은 음식입니다. 일본에서는 좋은 술과 발효 빵을 만들기 위해 자연 재배한 밭벼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위적인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잡풀들과 싸우면서 성장한, 그래서 생명력이 왕성한 벼에서 만들어진 쌀을 최고로 칩니다. 이런 생명력이 있는 쌀이 아니면 천연 누룩의 힘을 견디지 못해서 산패(酸敗)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식과 더불어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천천히 오래 씹어서 먹는 것입니다. 침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진 진액입니다. 침은 우리 몸속에 있는 여러 가지 소화 효소나 균들과 친화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침으로 잘 비벼진 음식이 몸에서 잘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이 침이 음식에 잘 버무려지려면 일정한 시간 동안 씹는 게 필요합니다. 씹으면서 분쇄되는 음식물의 작은 단위까지 침으로 버무려져야 우리 몸이 잘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또 침이 음식물과 섞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 씹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물과 누룩, 적합한 온도에 생명력이 왕성한 쌀을 잘 버무려서 술을 담그면 거의 대부분 술은 향기롭게 빚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저녁을 굶고 생명력이 왕성한 음식을 잘 씹어서 먹게 되면 우리 몸에서도 좋은 기운과 진액, 혈이 만들어집니다. 좋은 기운과 진액, 혈이 만들어지면 봄날의 생기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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