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배우라

[김윤태 칼럼] 역사적 과제인 '사회 개혁'의 새로운 방향 제시해야

5월 9일, 한국의 역사가 새로 만들어졌다.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 대선을 좌우한 반공주의와 지역주의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낡은 색깔론과 지역감정은 이제 낡은 유물이 되거나 무기력한 주술이 되었다. 사상 최초의 5자 구도는 계층과 세대의 이해를 대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새로운 선거운동을 보여줬다. 보수, 중도, 진보의 다양한 정치적 경쟁은 증가하는 사회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정치가 사회를 대표하지 않으면 정치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2017년 대선의 높은 투표율은 정치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귀환'을 보여준다.

정치를 바꾼 사회 혁명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는 촛불 혁명과 탄핵 정국이다. 이는 정당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만든 ‘사회 혁명’이다. 만약 수천만 국민이 일어난 촛불 혁명이 없었다면 문재인과 민주당의 집권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론의 고발로 촉발한 촛불 혁명은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으며, 이 격랑 속에서 보수 정당의 분열로 선거 구도가 바뀌어 야당의 정권교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이자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혁명이 반동에 의해 패배로 기록되던 어두운 역사는 빛 속으로 사라졌다. 4.19 혁명과 1987년 6월민주화운동 이후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던 역사는 이제 과거의 기억이 되었다.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은 촛불혁명에 동참했지만 자력으로 국가개혁을 추구하기보다 보수이 분열에 편승하려다 역풍을 맞았다. 프랑스의 마카롱 후보는 의석 하나 없는 정당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안철수 후보와 달랐다. 마카롱은 미래와 개혁의 비전을 말했지만 안철수는 정쟁과 갈등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기성 정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도 달랐다. 경제위기, 실업, 이민, 테러리즘에 무기력한 기성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켰던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 탄핵을 주도한 정당은 상당 정도 국민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국민은 무당파 대통령을 선택하기보다 야당의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주었다. 프랑스와 달리 사회의 목소리를 수용한 한국의 정당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사회 개혁의 중요성

이번 대선에서는 촛불 혁명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한 문재인 후보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보냈다. 문재인 후보는 탄핵 정국에서 '적폐 청산'을 내걸고 새로운 '국가 개혁'을 주장했다. 이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탄핵 정국의 바닥에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분열된 한국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촛불 집회에 나온 국민은 권력형 부패에 대한 분노와 저항 뿐 아니라 늘어나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보육대란, 노후 불안, 소득 격차에 대한 불만의 절규를 터트린 것이다. 자신의 삶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절박함은 거리의 분노를 넘어 사회 혁명의 열기를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위한 공직자비리수사처, 특검 상설화 등 제도 개혁의 차원뿐 아니라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사회개혁을 주도해야 하는 역사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사회 개혁이야말로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이 성공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다른 국정 과제를 추진할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일자리, 복지, 보육, 교육 등 사회개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비례대표제 확대와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국민 통합, 남북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 증진의 과제도 성공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루스벨트를 존경한다고 말했는데,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루스벨트의 지혜에서 배워야 한다. 1930년대 루스벨트는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독점 대기업의 규제, 공정거래법 도입, 사회보험의 실행 등 사회경제 개혁에 우선적으로 집중했다. 그는 과거의 지역적 분열을 뛰어넘어 중산층과 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광범위한 계층연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남부의 지역 정당에 불과했던 민주당은 전국적 정당으로 부상했다. 지역의 합종연횡으로 좌우되던 미국 선거는 정책 경쟁으로 탈바꿈하였다. 루스벨트의 사회개혁으로 미국 국민의 정치적 관심이 커졌으며 투표율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루스벨트대통령도 4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대통령의 과제와 생활 정치

1980년 미국 대선 직후 레이건 대통령의 백악관 책상에는 '지도자를 위한 과제(Mandates for Leadership)'라는 제목의 헤리티지 재단 보고서가 올라왔다. 경제 개혁, 복지 개혁, 안보에 관한 구체적 정책 제안이 담겨 있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진보센터(CAP)의 각종 보고서를 신중하게 읽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책상에 그런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은 참모들과 함께 최우선 과제를 우선 선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는 너무나 많지만,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수당으로서 정국 운영을 이끌어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국민의 지지는 매우 필수적이다. 높은 국정 지지도를 통해서만 야당을 설득할 수 있고 여야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내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좋은 일자리 만들기,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험의 확대, 교육과 보육에 대한 사회투자, 연구개발을 위한 미래 투자 등 '5대 핵심 과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외에도 비정규직 차별, 청년 실업, 교육비 부담, 주거 불안, 노후 연금 등 중요한 생활정치 이슈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집권당인 민주당도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국회에서 입법과 예산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 사회의 문제를 정치가 해결해준다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국민의 지지는 급속하게 사라질 수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향후 100일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국정 의제를 제시하는 소통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통 없이 국민의 지지는 없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패자에게는 위로가 있기 바란다. 동시에 승자와 패자가 손을 잡고 국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승자의 앞길에는 무거운 짐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수일 간 많은 사람이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의 승리를 축하할 것이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고 즐기기에는 국민의 삶이 너무 절박하다. 이제 선거 캠페인의 여론조사 전문가와 전략가는 물러나고 공공정책 전문가와 정치 기업가가 등장해야 한다. 대통령은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각료로 임명하고 공약을 실행해야 한다. 대통령의 과제는 이제 험난한 역사적 과정에 올랐다. 대통령의 운명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기에 대통령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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