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中 왕이의 '투트랙' 제안을 다시 주목하자"

[인터뷰] 고려대학교 임혁백 명예교수 ②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하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사드 배치 문제와 중국과 관계 회복 문제, 무엇보다 6차 핵실험을 앞둔 것으로 판단되는 북한 문제 등은 문재인호(號)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역으로 생각해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는 국제 정치의 '문법'에서 자주 일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전문가들이 지겹게 입에 올려 왔던 수사는 바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다.

예측은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간 국제정치는 셀수 없는 사건이 더께처럼 쌓여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뤄왔다. 이 경험의 축적에서 여러 법칙들이 도출됐고, 그에 따라 국제정치의 문법이 생성돼 왔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자가 나타났다. 과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툭툭 말을 내뱉는 인물, 외교적 수사라고는 도저히 사용할 줄 모르는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면 '격변'도 가능할 수 있다. 물론 그 격변이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격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맞아 차기 정부의 과제 및 국제 정세와 관련된 조언을 듣고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임혁백 선생을 찾았다.

임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미국 조지타운대·듀크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고, 1998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경제론, 국가와 시민사회 등을 강의했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로 미국의 정치 시스템 등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다음은 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편집자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 : 대북 정책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향후 문재인 정부는 어떤 대북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보나?

임혁백 : '스마트 포용정책(Smart Engagement)'이다. 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와 번영정책'을 계승하되, 대북 포용정책을 새로운 한반도 안보환경 변화에 맞추어 스마트하게 재조정하여 '햇볕정책 2기' 또는 '스마트 포용정책'으로 변환하여 좀 더 실현가능하고 유효한 포용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정책은 미중이라는 경쟁하는 두 강대국으로부터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실현 불가능한 모순적인 정책이었다. 이는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배제당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본 지주로 삼아서 안보를 보장받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나 우리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경제분야에서 지속적인 협력과 교환을 원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바탕위에서 중국과 안보와 경제에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한다. 일본과는 공유된 이익(shared interests)에 기초한 근린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베가 군국주의 외교 (위안부배상, 소녀상, 독도, 역사교과서 등)를 포기하는 것을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한다.

이를 위해서 미국의 여론 주도층을 설득하는 워싱턴 외교를 펼쳐야한다. '전쟁은 워싱턴에서 결정되었다'를 항시 잊어서는 안된다. 아베가 군국주의 외교를 포기하면, 개방과 협력이라는 포지티브한 김대중 대통령 시대의 개방적 한일관계 정책을 부활시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한류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무력에 의한 북한체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폈으나 성과는 없고 남북 관계는 악화되기만 했다. 이를 폐기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임혁백 : 북한 체제 붕괴론은 1989년, 혹은 1991년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근 30년동안 북한은 여전히 끈질긴 생존 능력을 과시하고 3대 세습을 성공시키고 핵능력을 키웠다. 앞으로도 북한 체제 붕괴론의 가정에 근거한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도, 트럼프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한다는 가정하에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워싱턴 외교를 통해 북한 붕괴론을 폐기하게 하고 스마트 포용 정책에 따라 실용주의적으로 북한과 미국간에 북미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교환하는 빅 딜을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프레시안 : 스마트 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 2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임혁백 : 지금까지 대북 포용정책은 전략적이지 못했다. 무조건적, '묻지마 포용정책' (unconditional engagement)'은 이제 안된다. 하드 파워의 비중을 줄이고 소프트 파워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그것이 외교다. 북한의 체제를 고도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제적 지원과 북한의 IT화 지원을 통하여 북한이 스스로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도와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권력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지능정보사회 (intelligent information scoiety)의 외교는 스마트 외교가 되어야 한다. 똑똑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경분리가 필요하다. 정경연계, 즉 MB의 "비핵개방 3000달러"와 같은 전형적인 정경연계형 조건부적 포용 정책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실패로 판명됐다. 앞으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문제 해결, 한반도횡단철도를 TSR과 TCR과 연결하여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를 완성하려는 프로젝트 등 정치, 군사적 변화에 상관없이 경제적 논리를 가지고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바탕에는 한미동맹 우선주의가 있어야 한다. 북한과의 협약도 한미동맹이 튼튼해야 준수, 이행될 것이다. 북한의 협약 이행은 미국의 협약준수와 한국의 추가 지원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동시에 워싱턴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일단 당장 문재인 정부의 눈앞에는 대미 외교 현안이 있다. 가장 큰 게 사드 문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앞서 언급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면?

임혁백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사드 배치를 유보하는 대신 주한미군 분담금의 획기적 증액과 국방비 증액을 교환하는 딜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새로운 ABO(Anything But Obama, 오바마가 한 것 빼고 다)에 따라 오바마의 작품인 사드를 많은 비용를 지불하면서 추진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사드 문제는 정권 교체 후 미국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장은 트럼프의 외교의 특성을 파악한데서 도출한 혜안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트럼프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해 만약 사드 배치 의지가 강하다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피해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트럼프가 일단 사드 가동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에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철회하도록 설득해줄 것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드가 완전 배치돼 가동되려면 한국에서 공론화과정과 국회 비준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사드를 대체할 요격 미사일인 SM-3(레이더 탑재 이지스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로 사드보다 요격거리와 고도가 더 높음.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에는 배치됐으나 우리나라는 SM-2만 장착돼 있음)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미사일방어체계로 사드보다는 SM-3 해상요격미사일체제를 선호한다는 신호가 있다. 따라서 사드는 배치냐, 철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상 발사 사드를 해상 발사 SM-3로 대체하고 한국은 미군 주둔비나 국방비를 인상하는 방향의 딜이 실용적이고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SM-3가 배치되려면 지금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3년부터 차기 이지스함 3척이 가동된다는 점에서 5년간의 공백이 있어 그 사이는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커버해야 한다. 또한 SM-3로 대체하면 미사일방어체계가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완성되고 한국이 미일 미사일 방어체제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정리하면 사드 문제는 트럼프의 주요 외교 주제가 아니며, 사드는 기본적으로 미중간의 외교현안이라는 것 같다.

임혁백 : 그렇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배치 지역 주민들의 인권, 재산권과 환경권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배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입장은 중국과 미국이 사드를 해결하게 놓아두고 우리는 뒤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대신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 국가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 주민들의 이익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인식은 매우 위험한 사고다. 하찮은 국민의 생명도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이 세월호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이지 않나.

왕이 중국 외교부장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근본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임혁백 : 오바마 정권 말기인 2016년 미국의 케리와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사실상 합의한 투 트랙 병행정책 (Two-Track)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한미가 받아들이도록 하면 좋다. 투 트랙 병행 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미북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병행추진한다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제안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정책을 고집함으로써 투 트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된 후 왕이는 계속 투 트랙의 유용성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투 트랙 협상이, 이제는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핵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에도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은 한국,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그런데 비핵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전쟁, 압박, 제재 등의 방법도 있지만 협상, 타협, 빅딜 등 다른 방법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1975년~1978년 제5해역사 해군장교로 근무하면서 최근에 벌어진 것같은 연평도에서 충돌을 겪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유화주의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전쟁의 위험과 참상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느꼈다. 우리에겐 강경론자로 알려진 박정희는 그러한 충돌때마다 판문점에서 협상으로 해결했고, 나포된 북한 선원과 수병, 장교를 판문점에 잘 차려입혀서 바로 북으로 보냈다. 전쟁까지 고려하면서 북한비핵화를 생각해 볼수는 있다. 그러나 루터와 동시대의 에라스무스가 이야기한바와 같이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경구를 상기해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고 권고했다. 평화를 돈 주고 사더라도 전쟁의 비용과 참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조언을 한다면?

임혁백 : 거듭 강조하지만 문 대통령은 먼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승격시켜야할 것이다. 한미동맹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동맹' (New Era New Alliance), 스마트한 동맹으로 재창조하고, 이를 지지대로 해서 북한문제, 중국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 평화구축에 전기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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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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