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지난 2일 저녁 8시 뉴스에서 다룬 "차기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란 타이틀의 보도에서 해양수산부가 제2차관 신설 등 조직 확대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한테서 약속 받고 그동안 세월호 인양을 2년 여 미뤄왔으며 문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4월 갑자기 세월호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는 식의 단독 보도를 대문짝만하게 내보냈다.
SBS는 익명의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발언을 근거로 이런 방송을 했다. 그의 발언이 신뢰성이 높다고 보았으니 방송사의 명운이 걸릴 수도 있는데도 이런 보도를 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 보도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야말로 전형적인 '기레기 보도'이다. 결국 SBS는 '기레기 방송'이 돼버렸다.
3년차 하급 관료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말만 믿고 차기 정권과 거래 끝에 세월호를 지연 인양했다는 보도를 내보내는 행태는 정말 무모한 용감성이 극도로 발휘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보도가 나가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라는 점은 기자 생활 몇 달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반인이라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SBS가 단독 보도임을 자랑스레 내세우며 한 이 보도는 완전한 오보이며 가짜 뉴스이다. 대한민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불명예가 된 것이다.
SBS 희희낙락 7시간 만에 창사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빠져
SBS는 이 방송을 내보내면서 엄청난 대어를 낚았다고 희희낙락했을 터이다. 대선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었다고 여겼을 터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과 기쁨은 몇 시간 가지 않았다. 보도 뒤 민주당 쪽이 크게 반발하는 등 엄청난 파장이 일자 보도본부장은 다음날 3일 새벽 이 가짜 뉴스를 홈페이지에서 급히 삭제했다. 3일 방송사는 아침방송에서 오보임을 인정하는 해명·사과 방송을 했으며 저녁 8시 뉴스 등에서 김성준 앵커 겸 보도본부장이 방송 시작과 함께 5분 가량 해명을 곁들인 사과를 세월호 유족,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했다.
오보이자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는데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 쪽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등 문 후보 경쟁 상대 쪽은 SBS의 방송 내용을 사실인양 말하거나 언론 탄압이라며 가짜 뉴스로 인정하지 않고 유세 또는 기자회견, SNS를 통해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일부 언론은 SBS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아니라 이를 경마중계식으로 다루고 있다. 보수 진영을 옹호하는 일부 방송 출연 패널들은 가짜뉴스일지라도 SBS 쪽이 신속하게 기사를 삭제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벌이며 문재인 후보 쪽 비판에 열을 올렸다.
SBS 노조가 보도 경위를 조사해 밝힌 바에 따르면 보도내용이 간부들에 의해 심하게 왜곡된 것을 드러났다. SBS가 보도의 근거로 내세운 해수부 공무원은 3년차 7급 공무원이라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해당 공무원이 "세월호 인양일정이나 정부조직 개편 등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할 위치가 전혀 아니"라고 4일 밝혔다. 병원에서 이루어진 수술의 문제점을 다루면서 집도한 의사에게는 묻지도 않은 채 어느 간호사한테 수술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묻고서 그것이 진실인양 보도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SBS가 다룬 세월호 인양 음모론과 역음모론
SBS가 애초 다룬 것은 일종의 음모론이다. 음모론을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이번 사건은 2012년 문재인-박근혜 후보가 대결을 벌였던 대선 막판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NLL 포기 발언 논란을 떠올리게 만든다. 박근혜 후보 쪽은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하지도 않은 NLL 포기 발언을 실제 한 것인양 가짜 뉴스를 만들어 기자회견과 유세 등에서 마구 유포했다. 당시 기레기 언론은 정확한 검증 없이 이를 마구 퍼트렸다.
선거 때마다 북풍이든 마타도어든, 정치 공작이든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과거 이런 것으로 재미를 본 정당들은 그 못된 버릇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는다. SBS 방송 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쪽에서 내지르는 강성 발언들을 보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갈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시청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뉴스 보도의 생명이 정확성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중파방송에서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가이다. SBS가 보도의 기본, 즉 ABC가 갖추어지지 않은 기사를 무리하게 보도한 까닭은, 그것이 궁금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위해 그 내막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뉴스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모든 방송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도 마찬가지다. 보도하는 기자가 제멋대로 취재 방향과 취재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장과 부장 등의 데스크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편집부 등 많은 경험이 풍부하고 책임 있는 기자들이 이를 검증(게이트키핑)한다. 여기서 걸러지고 검증된 것만이 방송된다. 더구나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대선후보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충격적 음모론을 폭로하는 보도가 아닌가.
그런데도 SBS는 왜 이를 게을리 했을까? SBS가 3일 해명에 이은 사과방송에서 보도본부장이 게이트키핑(gatekeeping, 일선 기자가 취재해 써온 기사에 대해 간부, 즉 데스크가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이 기사를 내보낼지 말지 결정하거나 내용의 진실 여부를 사전에 걸러내는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게이트키핑은 데스크라면 일상적으로 수없이 해온 일인데 왜 여기서는 작동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방송사의 행태-반문 정서? 특종 욕심? 정치 공작?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공작 성격 또는 반문 정서를 강하게 지닌 한 공무원의 멘트에 기자와 SBS 간부가 판단력을 집단으로 상실한 채 가짜 뉴스에 엄청난 무게를 실어 보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취재를 하다보면 기자는 취재원한테서 별별 이야기를 다 듣게 돼있다. 이 가운데 가치가 없는 것은 즉각 버려야 되는데 특종 욕심 또는 정치적 지향 때문에 쓰레기를 금은으로 생각하게 되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다. 이게 사실이라면 SBS는 집단 지성을 내팽개친데 대해 집단 반성을 해야 마땅하다.
둘째, 취재 기자는 큰 무리 없는 기사를 내보내려 하는데 데스킹 과정에서 개악이 되어 완전히 엉뚱한 기사가 나오는 수가 있다. SBS노조는 여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보도본부장도 사과 방송에서 취재 기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해당 기자가 정확하게 취재 보도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하면 풀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데스크의 개악이 사실이라면 문 후보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타격을 가하겠다는 방송 간부의 의도가 짙다고 보아야 하고 그렇다면 방송사는 되레 자신들의 도덕성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재난이든, 대형오보 사건이든 철저한 진상이 중요하다. 그래야 두번 다시 유사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대형 오보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내외 대형 언론 오보를 살펴보면 특종 욕심에, 기자가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에 보도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취재를 게을리 하거나 조작을 하거나,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대중을 놀라게 하는 보도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보도들은 그 순간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지만 나중에 실체가 드러나면서 보도 당사자가 구속되거나 기자와 사장이 회사를 관두어야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6살짜리 흑인 꼬마가 마약에 찌들어 방황하는 세계를 그려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지미의 세계' 보도(1980년)는 나중에 기자가 꾸며낸 가공의 인물임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독일 <슈테른>은 히틀러의 일기장이 오스트리아 농가에서 발견됐다며 이를 특종 보도했으나 실은 가짜 일기장이었고 기자가 가짜임을 알고도 사기꾼에게 돈을 주고 산 것으로 드러나 망신살을 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오키나와섬 인근 산호초 훼손 실태를 취재하면서 훼손된 산호가 발견되지 않자 사진기자가 마구 훼손한 뒤 이를 찍어 보도했다가 들통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경남 함안에서 바둑이가 저수지 물에 빠진 주인을 구출했다는 미담 기사를 언론들이 앞 다퉈 다루었으나 알고 보니 사람을 물고 나올 수 없는 자그마한 몸집의 개였음이 드러났다. 취재를 게을리 한 전형적인 '기레기 보도'였다. 1986년에는 김일성 피격 사망설을 우리 언론들이 일제히 다루었으나 일본에서 정보기관 공작원이 일부러 퍼트린 가짜 뉴스에 한 조간 신문사 특파원이 낚인 것으로 밝혀져 국제 망신을 당했다. 이밖에도 1994년 3백 명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서해 위도 페리호 침몰사건 때 선장이 승객을 내팽개치고 홀로 보트를 타고 위도로 탈출했다는 오보 때문에 수백 명의 경찰들이 이틀 동안 섬 구석구석을 수색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선장은 나중에 배 안에서 숨진 채 승객들과 함께 발견됐다.
선진국처럼 SBS 관계자 사표 등 중징계와 함께 공무원 수사해야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회를 뒤흔든 이런 오보에 대해서는 관련자를 엄중하게 문책해왔다. 기자의 사표를 받는 것은 물론 보도책임자, 심지어는 사장까지 물러나기도 한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기자를 구속까지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껏해야 보직 사퇴나 한직으로 보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간부에 대해서도 감봉 등의 경징계를 하거나 보직사퇴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한다.
SBS의 이번 가짜 뉴스 보도처럼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에서 보직사퇴나 감봉과 같은 경징계로 그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도 경위를 따져 사표 등 중징계를 해야만 그나마 땅에 떨어진 방송사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볼 할 길이 열리 것이다. 가짜뉴스가 나오게 된 근원인 해당 공무원에 대한 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비교적 최근의 적폐이다. 이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방안을 언론계 내부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가짜뉴스는 언론만이 아닌 네티즌과 정치인, 에스엔에스 사용자 등이 만들거나 확산시키는 주요 역할을 한다. 이번 대선 때 우리는 그 폐해의 심각성을 보고 있다. 어느 후보는 동성애가 에이즈의 주범인 것처럼 가짜 뉴스를 방송 토론에서 전 국민에게 퍼트렸고 4대강 사업이 녹조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가짜 뉴스를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가짜뉴스 판치는 비정상사회를 정상사회로 바꾸어야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가짜뉴스는 대한민국을 불안사회로 만들 수 있다. 어린이 예방접종이 자폐증 등 각종 질환의 원인이라거나, 유전자변형식품이 각종 암과, 아토피, 과잉행동증후군, 자폐증, 성조숙증 등 거의 모든 질환의 원인이라는 주장, 전자레인지에서 한 음식을 먹으면 각종 암과 질병이 생긴다는 놀라운 주장, 에이즈와 에이즈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며 에이즈 치료제 복용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 SNS를 통해 마구 퍼트려지고 있다.
실제로 이를 믿고 실천했다가 국가가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음베키 대통령 집권 시절 에이즈 관련 가짜뉴스에 정치 지도자들이 속아 에이즈 감염 임신 여성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수천 명의 에이즈 감염 아기들이 태어나는 비극이 벌어졌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예방접종을 거부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중국 발 사스, 즉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 수백 미터 떨어진 사람에게도 바람을 타고 전파된다는 어느 약사의 가짜 뉴스 때문에 서울시립 동부병원 인근 주민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감염자나 의심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도록 막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대중들에게 먹히는 사회는 분명 정상사회가 아니다. 가짜뉴스 자체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런 가짜뉴스를 호기심으로, 자신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퍼트리는 것 또한 안심사회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비정상 행위이다. SBS의 세월호 인양 가짜뉴스 방송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떤 세력이 가짜뉴스를 만들고 또 퍼트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그런 정치세력에겐 한 표도 주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부추기는 세력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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