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이제 '차이'가 드러났다

'촛불 대선', 후보들은 이념 지향을 밝혀야

박근혜가 재판에 넘겨진 날, 19대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촛불'로 상징되는 주권이 대선을 앞당겼다. 미증유의 헌정 파괴는 권위주의 시대에 구조화 되었던 정경유착과 체화된 부정의에 기인했다.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법이 선거의 핵심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의와 불평등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하는 적폐청산은 어느 덧 선거의 금기어가 되었다. 어둠과 혹한에 꺼지지 않았던 촛불은 장미대선이라는 신조어로 덮였다. '장미대선'이라는 네이밍은 이번 대선의 시대사적 의미를 왜곡한다. 과거와 미래의 변증법적 화해는 과거와 미래를 대척점에 세우는 어설픈 이분법적 선거공학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선거를 관통하는 굵은 의제가 보이지 않고 대형 이슈 또한 형성되지 않는다. 두 번에 걸친 대선 주자 토론회에서 안보, 외교, 경제, 복지, 교육 등에 관한 공방이 이어졌으나 결정적 쟁점이 제기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꺼리는 보수층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적극적 반대가 얼마나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로 치환될지가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프레임은 비교적 선명하다. 탄탄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의 장점은 결집력이다. 그러나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안철수 후보는 '이념적 모호성'으로 인한 보수 표심의 흡수로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확장성이 강점이다. 그러나 이념지형의 분산투자 전략은 언제든지 보수와 진보 모두의 이탈을 가져올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대별 지지 성향의 뚜렷한 분화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도를 의미한다.
보수 표심의 문재인 기피증은 보수층이 안 후보를 향할 수 있는 동력이다.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승산이 지극히 낮은 상황에서 보수의 사표 방지 심리와 문재인 정권의 등장을 극력 저지하는 전략적 선택이 아우러진다면 안 후보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물론 지지하는 후보를 찍는 투표가 아니고 기피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선택적 지지자'들의 적극적 투표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념 성향이 맞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최악을 피하는 선거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네거티브 투표의 성격을 가진다.
보수표의 유입으로 양강의 한 축을 차지한 안 후보는 안보 변수로 보수를 묶어두기 위해 사드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국민의당의 당론은 여전히 사드 반대다. 이런 모순이 없다. 보수에 구걸하고, 호남을 의식하는 이중적 태도다. 이러한 비난에서 자유로우려면 후보 입장과 당론이 일치해야 한다. 정당의 추천으로 출마한 후보가 핵심 의제에서 정당의 당론과 배치된다면 정당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이념은 가치지향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가늠자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 등에서 이념의 차이는 정책의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어떠한 정책이 나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따라서 후보들은 보편 상식에 입각하되, 이념 지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특히 '촛불'에 의해 치러지는 5·9 대선은 보수 진영이 적폐라는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적폐'를 청산할 의지와 철학의 빈곤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사회경제적 이슈에 따라 형성되어온 보수·진보와 한국의 이념지향은 다르다. 한국의 보수는 10년의 보수 정권에서 공고화된 기득권 집단이다. 산업화 과정의 압축성장에서 형성되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블록화된 사회계급을 의미한다.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사회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와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양극화 해소와 불공정 구조를 혁파하는 데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권이 어느 계층의 지지를 받느냐는 선거 이후의 정책 지향과 과거의 '적폐'를 척결하는 데 정치적으로 결정적 함의를 갖는다. 현대정당은 망라형 정당(catch all party)의 성격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즉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취함으로써 보수와 진보 양 측의 유권자의 지지를 지향하는 정당을 말한다. 후보도 정당과 마찬가지로 양측의 지지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정당의 발달의 역사가 다른 한국적 정치현실은 보수와 진보가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이념적 변별력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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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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