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 다시 물으려 한다. 참담한 사고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으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호의 진실과 함께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고 국가적 대응이 있었다고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초대형 재난이었던 메르스 사태와 경주 지진이 부정의 증거다. 최근 일인 구제역과 AI는 또 어떤가. 혼란과 부실, 무능력을 다시 경험했고 시스템의 부재를 확인했다.
시민이 체감하는 (무)변화는 설문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 경향신문과 국회의장실이 의뢰하고 갤럽이 조사한 결과, 세월호 참사 후 안전이 얼마나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1.3%가 '변화 없다'고 답했다. '악화된 편' 8.3%, '매우 악화된 편' 6.6% 등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한 사람도 14.9%였다(☞관련 기사 : 국민 "세월호 이후 안전, 변한 게 없다").
비난과 비판을 듣는 당사자, 특히 정부 당국은 억울할지 모른다.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유명무실한 상태로 있던 '재난관리체계'를 많이 정비하고 개선했다고 항변한다. 공무원들이 위기관리 시스템, 매뉴얼, 훈련을 실적으로 내놓는 이유도 지난 3년의 성과를 알아달라는 뜻이 아닌가.
아마도 맞는 말이겠지만, 옳은 답변은 아니다. 해경이 해체되고 중앙정부 부처가 하나 새로 만들어질 지경이었으면, 그 정도 성과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3년에 걸쳐 '뼈대'를 갖추었다고, 토대를 구축했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노고를 알아달라고 하면 염치없는 일이다.
일반 시민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실을 무엇보다 아프게 받아들이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체감하는 안전 또는 안심 정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15%가량은 더 나빠졌다고 했다니, 국가와 정부가 위험과 불안이 늘어나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의 요구, 기대, 희망과 정부 대응 사이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국민안전처가 만든 매뉴얼이나 대비훈련, 정보체계, 무슨 무슨 위원회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력이 부족하고 부처 조직이 허술하다는 것도 작은 부분일 뿐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예산을 많이 써도 낙관할 수 없다.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실무가 아니다. 좀 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한 기본 원리가 튼튼하지 못한 것이 진짜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열거한다.
첫째, 예방보다는 사후 대응과 복구가 우선인 시스템.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 않지만, 한국의 재난체계는 대응과 복구 패러다임을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려는 의지, 목표가 아예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정책과 노력, 투자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예방에 대한 인식과 문화도 희미하다.
사례 하나. 국민안전처는 황사를 '자연 재해'의 하나로 포함한다. 이 재난에 대한 '국민행동요령'은 가령 이런 것이다(☞바로 가기).
- 창문을 닫고 가급적 외출을 삼가되, 외출 시에는 보호안경, 마스크 착용
- 노출된 채소, 과일 등 농수산물은 충분히 세척 후 섭취
- 식품제조, 가동, 조리 시 철저한 손 씻기
- 기계, 기구류 세척 등 위생관리 2차 오염방지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심하면 긴급재난문자도 보낸다고 한다(☞관련 기사 : 수도권 심한 미세먼지 예상되면 긴급재난문자로 알려준다). 이런 대비는 얼마나 허무한가. 과연 대비라고는 할 수 있을까. 예방 없는 사후 대비와 복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재난관리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 많은 인위적 재난(예를 들어 핵발전소나 테러, 전쟁, 교통사고 등)은 물론이고, 많은 자연재해도 예방과 무관하지 않다. 지진이야 분명 자연재해지만,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예방에 달려 있다. 핵발전소와 같은 위험요인이나 취약지의 주거를 그냥 둔 채 긴급재난문자를 '효과적' '효율적'으로 보내는 재난관리체계란.
둘째, 구조보다는 현상, 사회보다는 개인을 다그치는 체계.
재난을 대비하는 데에 개인의 인식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식과 문화가 같이 가야 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국민안전처나 질병관리본부가 각 사람이 바로 할 수 있고 효과를 볼 방법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실용으로서의 개인적 접근이 아니라, 원리와 이념으로서 재난의 '개인화' 모델이 관리와 정책을 압도하는 것이다. 집단적, 사회적, 구조적 대비는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어가야 하며, 무엇보다 기존의 이해관계를 위협한다. 지금 사회경제체제의 모델(예를 들어 신자유주의)과 결합하면 개인을 넘어 구조에 이르기는 어렵다.
'개인화' 모델은 실용적으로도 한계가 있다. 방송이나 긴급재난문자를 듣고 대피해야 하는 개인은 구조와 사회의 맥락 안에 있다는 것, 모두 잘 안다. 스마트 폰이 없는 개인, 있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사람, 돌보는 이 없는 독거노인이 재난에 처한 개인이 자리 잡은 사회적, 구조적 맥락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그친다고 무엇이 얼마나 나아질까.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부는 앞서 예방을 말하면서 다루었으니, 모든 예방은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해도 좋다. 예방뿐 아니라 대응과 복구, 사후관리도 개인의 책임과 행동을 훌쩍 뛰어넘는다. 요즘 유행하는 개념인 회복성(레질리언스)도 구조로서의 사회경제와 문화, 지역사회를 빼고는 무의미하다.
셋째, 다시, 약한 리더십을 걱정한다.
메르스 이후 지카 바이러스 유행 때 경험한 것이지만, 메르스 대비 매뉴얼은 다른 감염병에는 무용지물이다. 외래 감염병 매뉴얼로 다른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매뉴얼은 백과사전이 아니며 만능도 아니다. 한 가지를 훈련한다고 모든 재난에 그대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예 새로운 형태 또는 여러 분야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재난에서는 기존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렵다. 기존 체계와 매뉴얼, 정형화된 훈련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시스템과 대비태세가 '유동화'되면, 보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갖춘, 리더와 리더십에 기댈 수밖에 없다.
리더십을 강화하고 체계를 갖추는 일은 다른 분야 준비와 비교해도 더 부진하다. 얼마 전 겪은 구제역과 AI 사태 때의 리더십 부재와 부실은 더 말하지 않는다. 그리 낯설지 않은 문제에다 어느 정도의 경험과 표준 절차가 있는데도 그랬다. 조금 달라지는 조건에도 대응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민낯.
리더십은 전형적인 정치적 과제다. 정치라면? 대선 공약과 대선 후보들의 이해는 국가적 차원에서 리더십을 강화하는 둘도 없는 기회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국가재난관리체계까지 다시 불려 나오는 때, 재난관리의 국가 리더십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직까지는 실망스럽다. 재난, 안전, 안심에 대한 관심은 뜨뜻미지근하고 패러다임 전환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후보는 재난을 부를 수 있는 '규제프리존'에 앞장서겠다고 할 정도다(☞관련 기사 : 안철수, 박근혜-재벌 숙원사업 해결사 자임하나?, "규제프리존법 찬성하는 안철수, '이명박근혜 정권' 계승자 증명한 셈").
시민이 기억하고, 호명하며, 요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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