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는 '만병의 근원', 재난이 시작됐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기는 환경행정, 나는 미세먼지, 위험 대한민국

날씨가 흐리면 새로운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는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기 시작한 미세먼지 또는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세먼지가 공기 중에 많으면 시정거리가 나빠 멀리 있는 건물이나 산이 흐릿하게 보이는 미관 문제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 염려가 앞선다. 미세먼지가 몸에 나쁘다는 것은 어느덧 국민상식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미세먼지가 호흡기뿐만 아니라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 심지어는 암까지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장수하기 위해서는 건강 정보 또한 그렇다. 건강 관련 정보와 지식 쌓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표적 위험이 미세먼지이다.

미세먼지는 이제 코와 호흡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미세먼지는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발암물질이다. 그것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체발암물질로 분류한 위해물질이다.

미세먼지 현실 위협될 동안 정부는 두 손 놓아

미세먼지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올 동안 정부는 그동안 거의 손을 놓았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단기 대책에만 매달렸다. 중장기대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대기오염물질 양산, 그리고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상륙한 황사와 유해물질은 대한민국을 미세먼지의 수렁으로 빠트리는데 일조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은 인도 뉴델리에 이어 세계 주요 대도시 가운데 공기 질이 가장 나쁜 두 번째 도시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불명예에 그치지 않고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대기오염이 엄청난 건강 위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동안 환경부가 얼마나 미세먼지 대책에 소홀히 해왔는가는 21일 미세먼지의 정의를 바꾸겠다고 밝힌 데서도 잘 드러난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미세먼지 또는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이름을 국제사회가 정의한 것과는 전혀 달리 불렀다. 그동안 필자와 일부 학계가 지적한 문제를 환경부는 한귀로 흘려보냈다.

2013년 미세먼지 정의 바꿔야 지적, 환경부 4년 만에 응답해

필자는 <프레시안> 2013년 4월18일자 [안종주의 건강사회] "미세먼지의 건강학-무서운 미세먼지, 폐는 물론 뇌도 공격!"에서 2.5미크론 이하의 입자상 물질을 초미세먼지로, 10미크론 이하의 입자상 물질을 미세먼지로 부르는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정의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글을 잠시 다시 소개한다.

"미세먼지 정의부터 헷갈리는 대한민국


학계나 선진국에서는 1~2.5마이크로미터 입자 크기를 미세먼지(fine particles)라고 하고 1마이크로미터 이하를 초미세먼지(ultra fine particles)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5~10마이크로미터 먼지를 미세먼지, 2.5마이크로미터 이하를 초미세먼지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미세먼지의 정의부터 헷갈린다. 환경부 보도 자료에는 2.5마이크로미터 이하 먼지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오락가락한다."

당시 <프레시안>도 필자의 이런 지적을 존중해 편집자 주를 친절하게 달아주었다.

"<프레시안>도 환경부, 서울시 등의 발표와 PM 10을 기준으로 한 '미세먼지 경보' 등을 염두에 두고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PM 10)를 '미세먼지',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PM 2.5)를 '초미세먼지'라고 써 왔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필자의 지적을 존중해,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부터 '미세먼지'로 칭합니다. <편집자>"

환경부 초미세먼지를 미세먼지로 강등키로, 혼란 자초

환경부는 4년이 지나서야 이 글에 대해 응답했다. 느려 터진 굼벵이 같은 환경 행정을 펼쳐왔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무려 20년 넘게 고집스럽게 불러오던 초미세먼지(PM2.5)를 '미세먼지'로, 기존 미세먼지(PM10)는 '부유먼지'로 그 이름과 정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국제기준과 맞지 않는 용어와 정의를 고집한 탓에 일반시민들만 용어 이해에 헷갈리는 혼란과 불편이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후진적 환경 행정은 선진국보다 무려 12~18년 뒤늦은 1995년 10μm(미크론) 이하 물질(PM10)에 대한 환경기준을 우리나라가 처음 도입하며 부유먼지라고 해야 함에도 미세먼지라고 할 이름을 붙인 탓에 그 뒤 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라고 한 것으로 이어졌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면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하는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한 관료주의 탓이 오늘의 혼란을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출발이 늦었으면 열심히 선진 환경 행정을 뒤따라 잡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예 따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세먼지(PM 2.5) 관리는 일반 먼지 관리보다 훨씬 굼떴다. 미국은 1997년에 이미 관리 기준을 정해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2015년에서야 이 기준을 적용했다. 무려 18년이나 뒤처진 것이다.

미세먼지, 미래 재앙 가져올 침묵의 살인자

과거는 그렇다 치고 앞으로가 더 문제다. 환경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대책이랍시고 고등어구이 미세먼지 주범 운운하다가 동네북 신세가 됐다. 당시 환경부 발표는 동대문에서 뺨 맞고 남대문에 와서 분풀이를 하는 격이었다. 국정농단의 주범 박근혜-최순실은 그냥 두고 안종범-정호성에다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떤 규모의 악영향을 끼칠지 누구도 정확하게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미세먼지는 당장 사람들에게 끼치는 악영향보다는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는 침묵의 살인자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음의 석면먼지처럼.

미세먼지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는 최악의 공해물질이 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사실상 재난이나 다를 바 없다. 그 피해는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호흡기 질환자를 비롯한 각종 만성질환자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날 것이다. 이들에게서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 피해규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별로 쓸모가 없다.

기준 더 강화하고 에너지 대전환 정책 빨리 펼쳐야

따라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조직, 예산, 기술, 그리고 중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까지 총동원해야 한다. 먼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관리 기준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과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우리의 수준은 2배나 더 느슨하다.

기준은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기준을 느슨하게 잡으면 그만큼 미세먼지 저감 대책도 느슨하게 된다. 당장은 기업 등에게 부담이 되더라도 큰 차원에서 보면 강하게 기준을 정해 이를 달성토록 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측정망도 더 늘리고 에너지 정책도 일대전환을 해야 한다. 미세먼지를 내지 않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결단을 정치권과 정부는 해야 한다. 여기에 환경부와 산업자원부, 기획재정부의 생각이 달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현실로 겪고 있는 미세먼지의 위험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대책 또한 하루 이틀 만에 완성돼 1~2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세먼지는 흡연과 더불어 만병의 근원이다. 미세먼지 위험의 해결은 속도전을 펼치되 꾸준함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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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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